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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석, 미국의 실패한 1조 달러 주택 정책 (2003년)
작성일 : 2013-04-04 10:35조회 : 2,940


하워드 휴석, 미국의 실패한 1조 달러 주택 정책 (2003년, 이반 디, 140쪽, 19.95달러)

Howard Husock, America’s Trillion-Dollar Housing Mistake
(2003, Ivan R. Dee, 140 pages, $19.95)

캐서린 바우어는 1936년에 펴낸 <현대 주택>(Modern Housing)에서 시장(市場)은 빈곤한 미국인들에게 적절하고 위생적인 주택을 공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바우어의 주장을 받아드려서 1937년에 국가주택법(The National Housing Act)을 제정했다. 그 후 미국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공공주택을 지어서 공급했고, 또 그런 주택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미국 도시 곳곳에 지어진 공공주택 단지는 예외 없이 범죄와 마약으로 물든 슬럼이 되고 말았다. 맨하튼 연구소에서 주택정책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가 2000년 전후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펴낸 이 책은 공공주택이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은 실패한 정책임을 잘 보여준다.

시장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수 없다는 전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실제로 주택업자들은 남북전쟁 후 1937년까지 저렴한 주택을 개발해서 많이 공급했다. 시카고에선 2가구용 주택 211,000채가 건설되었고, 뉴욕 브루클린에는 1층은 상가이고 상층은 2가구용으로 설계한 저가 주택 120,000채가 건설되었다. 보스턴에도 전체 인구의 40%가 저렴하게 건설한 3층 주택에 살았다. 이런 주택에는 근로계층이 살았으며, 거주민 중  2/3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맨하튼 하부 이스트사이드의 주거사정은 매우 열악했지만 이런 곳에서 살던 근로자들은 점차 브루클린이나 브롱크스로 옮겨 갔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좋은 뜻을 갖고 주택 기준을 강화해서 새로운 저가 주택 공급을 차단했다. 대신에 정부가 재정 보조를 통해 보다 나은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곤층은 이런 주택의 임대료와 관리비용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또 다시 보조를 해야만 했다. 주택을 개인이 소유하면 유지관리를 잘 하지만 정부가 유지관리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부가 보조하는 값싼 공공임대주택에 살게 되면 타성이 생겨서 빈곤이 체질화되고 만다. 정부 보조는 성과에 대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필요에 대해 주어지기 때문에 빈곤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 마련이다. 공공임대주택 외에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미혼모, 알코올 중독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2차 대전 후에 미국 경제가 좋아지자 근로계층은 다른 단지로 나가고 흑인 빈곤층, 특히 아이를 혼자 기르는 미혼모가 공공주택에 많이 모여 살게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서 공공주택은 위험한 우범지대가 되고 말았다. 2000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의 저소득 편부모 가정의 40%가 130만 채에 달하는 공공주택 중 507,000 채와 주택 바우처 같은 보조금을 받는 주택 270만 채 중 100만 채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흑인 편모가 혼외 자식을 데리고 사는 이들 결손 가정은 미국 전체 빈곤 가정의 26%를 차지한다. 흑인 편모 혼외자식은 학교를 그만두고 마약과 범죄에 빠져 빈곤과 범죄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공주택 단지는 일종의 게토가 되어서 주민들의 발전을 제약할 뿐 더러 도시 발전 자체를 제약하게 되었다. 뉴욕 시 맨하튼에는 미국 전역에 있는 공공주택 100만 채 중 20만 채가 이스트 할렘 등에 있는데, 이로 인해 맨하튼에 새로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가 고갈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모든 미국의 대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부부가 각각 일을 하면 그 부부는 주택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주택을 시중가격 보다 싸게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애당초 근거가 박약했다. 그러나 이 신화는 끈질기게 오래 갔다. 존슨 대통령이 임명한 도시주택에 관한 카이저 위원회(Kaiser Commission on Urban Housing)도 그런 신화에 사로 잡혀 있었다. 공공주택단지 관리가 방만하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닉슨 행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택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빈곤층이 민간 주택에 세(貰)를 들어 사는 경우에 월세의 일정부분을 정부가 보조하는 제도가 주택 바우처이다. 시장개입이 적다는 이유로 공화당 의원들도 바우처 제도에 찬성했지만 곧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주택이 낡거나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일반 주택을 갖고 있는 소유자들이 바우처를 갖고 오는 세입자를 환영하고 유치하게 되어 공공주택에 살고 있는 빈곤한 흑인들이 일반 주택가로 넘어 오게 됐고, 그러자 직업을 갖고 있는 일반 세입자들이 그런 지역을 대거 탈출해서 슬럼이 확장되는 효과를 초래했다. 바우처 때문에 시카고의 남쪽 교외지역, 메릴랜드 주 프린스 조지 카운티 등 대도시 주변이 슬럼화했고, ‘바우처 세입자’라는 단어는 경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빈곤계층의 주거 문제는 주거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 중퇴, 마약, 알코올, 근로의욕 상실 등이 문제이기 때문에 바우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 행정부 때 제정된 공동체 재건법(The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강화해서 도시주택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저소득층도 주택을 소유할 수 있어야만 도시 공동체가 발전한다면서, 금융기관이 저소득층에 주택구입자금을 융자하도록 했다. 금융기관은 소수인종에게 융자를 우선적으로 제공했고, 재무부는 은행의 이런 실적을 신용등급 평가에 포함시켰다. 당시는 은행 합병이 왕성하게 이루어 지던 시기였는데, 합병을 추진하는 은행은 소수인종에 대한 주택자금 융자 실적이 좋아야 정부당국의 승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융자를 방만하게 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공동체 재건 전국연합(The National Community Reinvestment Coalition)이란 흑인 단체가 탄생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로 급진적 흑인 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은행에 압력을 넣어서 그들이 직접 융자금을 분배하고 자신들의 조직을 운영했다. 이들은 또한 다운페이먼트(down payment)가 없이 은행이 소수인종에게 융자하도록 했다. 정상적으로 주택을 구매할 수 없는 흑인들이 대거 주택을 구입해서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1996년에 의회가 통과시킨 복지개혁법(The Welfare Reform Act)은 복지 수당을 감축하는 등 복지병에 걸린 빈곤층에 근로 동기를 불어 넣어 주었지만 공공주택이 안고 있는 문제는 건드리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의 빈곤층이 안고 있는 문제의 씨앗은 게토가 되어 버린 공공주택단지이기 때문에 공공주택 문제를 손보지 않는 복지개혁은 공허한 노력이지만 공공주택을 비판하면 흑인 시민운동가들로부터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기 때문에 감히 나서는 정치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주(州) 샬롯 시(市)가 공공주택 문제의 개선에 나서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뉴욕이나 시카고에 비하면 작은 도시인 샬롯도 공공주택단지가 도시 발전에 장애물이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샬롯 시 당국은 낙후된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공공주택으로 이전하도록 권하면서 그 대신 새 주택 주거기간은 5년이며 그 기간 동안 고등학교나 직업학교에 다니거나 직업훈련을 받는다는 조건을 부과했다. 이렇게 해서 공공주택이란 게토에 살던 주민 중 상당수가 사회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샬롯 시의 성공에 힘입어 델러웨어 주가 공공주택 주거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샬롯 시와 델러웨어 주에 있는 공공주택은 미국 전체 공공주택의 1% 밖에 안되지만 두 지역의 시도는 공공주택이란 실패한 정책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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