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로저 파일런 (엮음), 클린턴에 흔들린 법치주의 (2000년)
2013-04-11 23:02 2,687 이상돈


로저 파일런 (엮음), 클린턴에 흔들린 법치주의
(2000년, 케이토 연구소, 240쪽, 9.95 달러)

Roger Pilon (ed.), The Rule of Law in the Wake of Clinton
(2000, Cato Institute, 240 pages, $9.95)

클린턴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 해에 나온 이 책에서 필자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크게 훼손했다면서 차기 대통령은 훼손된 법치주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 기고한 필진은 나중에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내게 되는 시어도어 올슨, 한국계 헌법교수로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부 법률특보를 지내게 되는 존 유 등 법학교수와 변호사들이다. 

2차 대전 전후 세대 첫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병역을 회피한 대통령이며 섹스 스캔들로 탄핵심판을 받은 대통령이기도 하다. 클린턴 대통령 8년 동안 백악관은 ‘법치주의’(Rule of Law)를 적당히 편리하게 해석하고 운영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클린턴은 행정명령권을 남용했는데, 입법사항에 해당하는 행정명령을 자주  발동했다. 연방공무원을 채용할 때 동성애 같은 성적(性的) 성향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 행정명령, 환경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에 연방정부기관이 대처하도록 한  행정명령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클린턴은 불법행위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인 미국 재판 변호사 협회(American Trial Lawyers Association)로부터 선거자금을 얻어 썼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벌어진 담배와의 전쟁은 이와 관련이 있다. 변호사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연방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는데도 법무부는 담배회사들이 니코틴의 중독성 등 흡연의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은폐해 왔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의료비용회복법(Medical Care Recovery Act)과 조직범죄단속법(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 RICO)에 근거해서 연방정부도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근거가 박약할 뿐더러 담배회사를 조직범죄집단으로 간주한 것도 무리였다. 클린턴 행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와 벌인 반(反)독점소송은 법리적으로 논쟁이 있으며, 나중에 연방항소법원은 소송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클린턴은 재닛 리노(Janet Reno)를 미국 최초로 여성 법무장관을 임명했고 또 그녀를 8년 동안 그 자리에 있도록 했지만 리노가 법무장관으로 있던 8년은  법무부의 암흑기였다. 리노가 법무장관이 된 후에 힐러리와 고어의 측근들이 법무부 고위직에 대거 임명되었다. 힐러리의 아칸소 로펌 동료였던 웹스터 후벨, 힐러리의 대학 룸메이트였던 엘리노어 애치슨, 역시 힐러리의 로펌 동료이자 그녀와 깊은 관계라는 소문이 있던 빈센트 포스터의 누이동생 셀라 앤소니, 그리고 앨 고어의 처남 프랭크 헝거가 법무부 고위직에 취직을 했다.

리노는 취임 직 후 연방검사장(US Attorneys) 93명을 일시에 파면했다. 이들은 10일 내에 사무실을 비우라는 지시를 받아 제대로 짐을 꾸릴 시간도 갖지 못했다. 연방검사장은 정치적 임명직이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를 채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조치였다.

1993년 7월 22일, 백악관 보좌관 빈센트 포스터가 공원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자 백악관 보좌관실의 버나드 누스바움은 포스터의 사무실을 조사하려던 법무차관 필립 하인만을 방해했는데, 리노 장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얼마 후 하인만은 사임했고, 포스터의 사무실에 있던 서류는 힐러리가 가져갔다. 법무부는 힐러리가 갖고 있는 서류가 변호사와 의뢰인간의 관계로서 보호된다고 힐러리를 감쌌다. 1994년 3월, 웹스터 후벨이 의혹 속에 법무부를 사임했는데 리노 장관은 그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후벨은 나중에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리노 장관은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를 조사했는 데, 당시는 클린턴에 대한 탄핵절차를 앞 둔 때였다.

대통령이 불법을 저지르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여론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하지만 클린턴 시절에는 이런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논의되던 1974년엔 공화당 내부에서도 닉슨에 비판적인 의원이 많았다. 하지만 클린턴 시절 민주당 의원들은 클린턴 탄핵을 당파적 입장에서 반대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클린턴 시절에 경제가 좋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반면 닉슨은 인기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고 경제도 좋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 때 법무부는 법을 지키기 위해 백악관을 압박했으며, 백악관과의 갈등 때문에 리차드슨 법무장관과 러클샤우스 법무차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리노 법무장관은 철저하게 백악관을 수호했다. 법무장관이 미국의 법을 수호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불법적 행동을 옹호한 형상이었다. 공화당 의원들도 클린턴의 불법행위에 대해 확실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클린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저지른 불법행위를 사적(私的) 문제로 치부해 버렸다. “대중은 건전한 도덕적 판단을 상실했다”고 갈파한 앨런 블룸(Allan Bloom, ‘The Closing of American Mind’)의 말이 실감이 난다.

법조계와 법학계도 클린턴의 불법을 묵인하는데 일조를 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미국변호사 협회(ABA)는 클린턴을 비난하는 한 건의 성명서도 발표하지 않았다. 법학교수의 다수는 클린턴 탄핵에 반대했다. 법학교수 430명은 클린턴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탄핵을 주장하는 성명서는 교수 100명과 전직 공무원들이 서명했을 뿐이다. 미국 변호사협회(ABA)의 도덕적 무감각은 더욱 심각했다. 1999년 수전 라이트 판사가 클린턴을 법정모욕죄로 판결하고 난 후 얼마 안 돼서 ABA는 클린턴을 연차대회에 초청했으며, 사기죄로 복역한 전 법무차관보 웹스터 후벨을 역시 연차대회에 초청했다. 2000년 연차대회에선 화이트워터 스캔들로 복역한 수전 맥두걸을 연사로 초청했다. 수전 맥두걸은 사기죄로 복역한 범죄인인데, 클린턴이 사면해서 석방된 상태였다.

(c) 이상돈


앤드류 바세비치, 워싱턴 법칙 (2010년) 
하워드 휴석, 미국의 실패한 1조 달러 주택 정책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