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제이슨 마놀로풀로스, 그리스의 추악한 부채 (2011년)
2013-05-11 23:26 4,726 이상돈


제이슨 마놀로풀로스, 그리스의 추악한 부채 (2011년, 앤섬 프레스, 287쪽, 29.95달러)

Jason Manolopoulos, Greece’s ‘Odious’ Debt (2011, Anthem Press, 287 pages, $29.95)

유럽 문명의 발상지라는 그리스는 지금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 투자회사의 신규시장 분석가인 저자는 오늘날 그리스 경제가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역사 문화 및 정치적 배경을 들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는 1990년대 초에 국가부도 상황을 맞았던 아르헨티나와 유사한데 두 나라의 정치 사회적 배경도 유사하다. 그리스에도 아르헨티나를 망친 페로니즘 현상이 있다. 페론 대통령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부와 군사독재를 거친 후에 들어선 아르헨티나의 라울 알폰신 대통령은 경제에 무능하고 이익단체에 굴복하여 국가부채 급증과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리스에는 1974년에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간정부가 들어섰고, 1981년 선거에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회당(PASOK)이 정국을 주도하게 됐다. 1981년 ~ 89년간 집권한 파판드레우는 노조와 각종 이익단체에게 유리한 기득권을 부여하고 또 자신을 지지한 세력에게 각종 이권을 나누어 주었다. 공공분야의 낭비와 부패가 심화된 것이다.

그리스는 1981년에 유럽공동체(EC)에 가입했다. 유럽공동체는 마스트리히 조약으로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고, 2001년에는 단일 유럽통화 유로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유럽연합의 구성원이 된 그리스는 유럽연합을 도피처로 생각하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유럽연합이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으로 믿었다. 과두(寡頭)체제가 지배하는 부패한 경제 시스템은 계속 악화되었고, 산업 클러스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그리스는 관광업과 조선으로 약간의 호황을 누렸고, 유로권의 저(低)이자에 힘입어 부동산 경기가 일었다. 그러자 그리스인들은 빚을 내서 고급 자동차를 사들이는 등 과소비를 했다. 자동차 산업이 없는 그리스에게 자동차는 자체가 무역적자 요소였다. “그리스는 도마도를 길러서 루이 비통을 산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고도 산업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저임금 국가인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터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유로를 사용하고 있으니 외국인 투자가 들어 올 리가 없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으로 인해 재정적자가 가중되었지만 그러면서도 공항, 고속철 등 인프라 건설에 많은 돈을 투입했다. 2000년 중반 들어서 공공부채는 GDP 의 100%를 넘어섰고 계속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리스는 20세기 들어서 발칸 전쟁과 그리스-터키 전쟁을 겪었고, 2차 대전 중 연합국의 일환으로 나치 독일에 항거해서 싸웠으며, 종전 후에 정부군과 공산무장 세력간의 치열한 내란을 겪었다. 내란의 후유증으로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인구가 많으며, 농업인구가 많은 특성으로 인해 인적 연고주의가 강한 전근대적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1974년에는 터키가 시프러스를 침공해서 그리스는 섬 전체의 37%를 상실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같은 역사적 이유로 그리스는 국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어 국방비 지출이 비정상적으로 많으며 외국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5개 국가 중 하나이다.

그리스 정치는 파판드레우 가문과 카라만리스 가문이 주도하고 있어 연고주의와 부패가 극심하다. 오늘날 그리스는 부패한 정치, 무능한 관료주의와 방만한 정부 지출, 강력한 공공노조, 클로스드 숍 체제 등 나라가 망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유로권에 편입되어서 외국인은 그리스 관광을 외면하고 그리스인들은 낮은 이자율을 믿고 방만한 소비활동을 해 왔다.

오늘날 그리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통계는 끝없이 많다. 100세 넘어도 연금을 타고 있지만 사실은 오래 전에 사망한 사람이 321명이고, 2004년 올림픽에 소모된 돈은 무려 110억 유로이다. 부유층이 사는 북부 아테네에 수영 풀이 있는 집은 324채로 신고되어 있지만 항공사진으로 확인해 본 결과 16,974채로 드러났다. 재산세를 적게 내기 위해 수영 풀이 없다고 허위로 신고했으며 이를 확인할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도무지 그리스에 공무원이 몇 명이 있는지를 알 수 없었는데 2010년에 처음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 숫자가 무려 768,009명이었다. 그리스 경찰은 한 벌이 4,000 유로인 제복을 입고 있는데, 그리스 정부는 아르마니 양복 보다 더 비싼 복장을 경찰관에게 입히는 것이다.

1950년대에 코파이스 인공호수에서 물을 빼고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코파이스 호수 기구라는 정부조직을 만들었는데, 1957년에 호수는 물을 완전히 빼고 없어졌지만 이 기구에는 아직까지 공무원 3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대표는 전속 운전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타고 있다. 파산상태에 이른 국영 올림픽 항공의 승무원과 가족은 이 항공사가 운행하는 세계 어디로든 무료로 여행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공공인프라부의 한 직원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버려진 영수증을 수북이 모아서 자기가 출장을 갔다면서 톨 게이트 비용을 청구해서 타먹었고, 그 영수증을 받은 상사는 영수증을 이용해서 출장을 갔다고 허위서류를 꾸며서 출장비를 청구해서 착복했다..

그리스에는 공무원 공채제도가 없어서 장관이 적당히 자기 자식과 친척 친지를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공무원이 너무 많아서 할 일이 있는 공무원이 적고, 공무원들은 자신이 일하는 건물의 위층에 갔다 와도 특별한 일을 했다고 수당을 청구해서 타먹었다. 공무원은 58세에 은퇴할 수 있는데, 그러면 자신이 받았던 평균 임금의 95.7%에 달하는 연금을 평생토록 받았다. 의사 등 고소득층은 연소득이 1만 ~ 3만 유로라고 신고해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지만 국내외 은행 구좌에는 수백 ~ 수천만 유로 예금을 갖고 있다. 

유로 때문에 북유럽인들은 그리스 대신에 이집트와 터키로 휴가를 가며, 국경지대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국경을 넘어서 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로 생필품 쇼핑을 간다. 유로 덕분에 그리스는 통화가치가 고평가 돼있고, 그리스는 주변 국가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화폐공급이 풍부해져서 거품이 형성되어 그리스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렸다. 2008년 들어서 서브 프라임 위기가 미국과 유럽에 불어 닥쳤고, 2009년 말부터 남유럽 국가 위기설이 유포됐고, 2010년 4월에 그리스 국채는 정크 본드 수준으로 격하돼서 그리스는 더 이상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됐다.

그리스는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에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마스트리히 조약이 구제금융을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구제금융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5월 4~5일간 그리스 전역에서는 구제금융에 따른 고통분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5월 6일 그리스 의회는 유럽연합이 1400억 유로 구제금융 조건으로 요구한 구조조정 계획을 승인했다. 5월 7일 독일 의회는 메르켈 총리가 약속한 300억 유로 출연을 승인했다. 5월 9일, 유럽연합 재무장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협력해서 총 72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조조정 금융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5월 18일 그리스는 145억 유로를 지원받아서 만기가 된 국채를 변제해서 국가부도 위기를 넘겼다. 그리스는 위기를 넘겼지만 유로에 대한 비판과 저항감이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등에서 커져가고 있다. 구제금융을 지원 받는 조건으로 그리스는 노동시장과 클로스드 숍을 개혁하고 공공분야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되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미래는 불확실하며 유로의 미래도 또한 그러하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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