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윌리엄 아이작, 센스 없는 패닉 (2010년)
2013-09-13 08:42 1,802 이상돈


윌리엄 아이작, 센스 없는 패닉 (2010, 윌리, 218쪽, 16.95 달러)

William M. Isaac, Sensless Panic (2010, Wiley, 218 pages, $16.95)

2008년 경제위기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새로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기 부실자산구제계획(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 TARP)을 통과시켜 7,000억 달러를 지출했다. 하지만 국민세금 7,000억 달러를 투입한 이 조치에 대해선 비판 여론이 높았고, 그 효과를 두고 논란이 많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아이작은 1978년에 35세란 젊은 나이에 카터 대통령에 의해 연방예금보험공사(The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 FDIC)의 이사로 임명됐고,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이사장으로 임명되어 1985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임기 중 연방예금보험공사는 고(高)이자와 석유시장 붕괴로 인한 금융권 부실과 부도사태를 감당해야 했다. 사상 유례없이 크고 작은 금융기관이 부도로 쓰러졌던 1980년대 전반기의 금융위기를 미국이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The Federal Reserve Board) 폴 볼커 의장과 이 책의 저자 윌리엄 아이작 덕분이라고 평가된다. 이 책에서 아이작은 1980년대 전반기 미국을 휩쓸었던 금융위기를 회고하고, 부시 행정부 말기와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취한 미국 정부의 조치는 잘못된 처방이었고 공연히 패닉을 조성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

1979년 8월,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는데,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볼커는 이자율을 인상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프라임 이자율이 21.5%까지 올랐다.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FDIC 이사장 후임에 이사였던 저자를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저자는 혼란스러웠던 금융권을 안정시키는 일을 책임지게 됐다. 실제로 1980년-91년 간 미국 전역에서 은행과 저축대출회사(savings and loans) 3,000개 이상이 문을 닫았다. 특히 석유 거품이 심했던 텍사스에서는 10대 대형은행 중 9개가 문을 닫았다. 저자는 이런 폭풍우 속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FDIC에서 자신이 겪었던 1980년 전반기 격동기를 회고하고, 그런 경험에 기초해서 오바마 행정부의 조치를 비판하고 있다.

1980년에 퍼스트 펜실베이니아 은행이 무너져서 FDIC는 구제금융을 해주어야만 했는데, 이는 본격적인 은행 도산의 전조(前兆)였다. 1981년 가을, 자산 30억 달러를 자랑하던 그리니치 저축은행이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계기로 고정금리로 주택대출을 해 준 저축대출회사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저축대출회사 업계는 대출과 투자에서 총 1,000 억 달러 규모로 지급부족 상태에 빠졌다. 저축대출회사들은 정부의 규제를 별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안일한 경영을 하다가 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연방저축대출보험회사(The Federal Savings and Loan Insurance Company : FSLIC)는 쓰러진 저축대출회사들을 뒷감당하다가 자체가 부실화되어서 결국 조지 H. W. 부시 행정부 들어서 정부자금 1,500 억 달러가 투입된 후 해결됐다. 1984년에 이들을 일제히 정리했더라면 정부 추가자금 지원이 없이 FDIC 자체 자금 150억 달러를 투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근원적인 처방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1982년 7월, 오클라호마 시티에 자리잡은 펜 스퀘어 은행(Penn Square Bank)이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자본금 5억 달러 밖에 안 되는 은행이었지만 30억 달러에 달하는 융자를 체이스 맨해튼, 컨티넨탈 일리노이 등 큰 은행에 팔아 넘겼기 때문에 이 은행이 넘어지면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우려됐다. FDIC는 펜 스퀘어 은행에 사기행태가 많다고 판단하고 이 은행을 다른 은행에 합병시키지 않고 문을 닫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예금자 보험에 의해 보호되는 예금자만 보호를 받게 됐다.  폴 볼커는 펜 스퀘어가 파산하면 전 금융시장이 흔들릴 것으로 우려했지만 저자가 이끄는 FDIC는 폐쇄로 방침을 정했고 결국 펜 스퀘어는 문을 닫았고, 보호되지 못하는 예금상품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돈을 잃어 버렸다. 펜 스퀘어가 문을 닫자 시중에는 FDIC에 폐쇄 대상 은행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에 떨었다.

1982년 말, FDIC는 테네시에 근거를 둔 부처 은행 그룹(The Butcher Banking Group)이 위태로움을 알게 됐다. 부처 형제는 다른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뱅크 등 12개 은행을 세워서 운영했는데, 이자율이 급등해서 부처 그룹 은행들이 도산위기에 빠진 것이다. 부처 그룹은 FDIC에 허위 경영보고서를 냈지만 FDIC는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고, 결국에는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뱅크 등 부처 그룹의 은행들은 다른 은행에 매각되었다. 나중에 부처 형제는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했으니, FDIC가 큰 혼란을 막은 것이다.

저자는 머니 브로커들에 의해 예금자 보호가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도널드 리건과 충돌했다. 저자는 예금자 보호는 소액 예금자를 보호하는 것이지, 투자금을 모아서 은행에 예치하고 은행으로부터 높은 이자를 받는 메릴 린치 같은 머니 브로커를 보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릴 린치 출신인 리건 재무장관은 그런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FDIC와 재무부가 이런 갈등을 빚고 있을 때 큰 사건이 터졌다.

1984년 5월,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위험에 처했다. 이 은행은 펜 스퀘어 은행이 무너질 때에 큰 손실을 보았고, 이후에 머니 마켓에서 단기 자금을 조달해 버텨왔으나 한계에 달한 것이다. 컨티넨탈 일리노이로부터 예금이 인출되는 뱅크 런(bank run) 사태가 벌어졌는데, 대공황 시대에 보던 것과는 달리 전자인출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40억 달러를 컨티넨탈 일리노이에 빌려주었지만 그것으로 은행을 구할 수는 없었다. 이에 FDIC는 컨티넨탈 일리노이에 대한 채권을 보증하겠다고 발표할 것을 제안했다. 컨티넨탈 일리노이는 도산하기는 너무나 큰 (too big to fail) 은행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FDIC는 컨티넨탈 일리노이에 정부 자금을 투입하고 새 경영진을 구하기로 했다. 새 경영진을 맞아 은행을 정상화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컨티넨탈 일리노이의 기존 주주들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고, 임원과 고위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 만일에 당시 컨티넨탈 일리노이가 도산하도록 했더라면 금융시장에 패닉을 조성해서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그 후에도 은행 도산은 계속됐다. 석유 붐을 타고 성장했던 텍사스와 오클라호머에서 은행 파산이 연이었다. 1985년에는 120개 은행이 문을 닫았고, 1987년에 200개가 도산해서 기록을 세웠다. 1989년에 의회는 FSLIC를 FDIC로 통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저축대출은행에 대한 예금보험마저 관장하게 된 FDIC는 1989년 한해 동안 534개 은행의 도산을 책임져야만 했다.

저자는 자신이 FDIC에 왔을 때 은행의 지급준비율은 기껏해야 3% 정도였다면서,정상적으로 그것은 5%는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규제에서 벗어난 금융시장은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예금자 보호의 대상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금보험제도가 너무 많은 은행의 너무 많은 채권자를 너무 오랫동안 보호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전에 없었던 금융 혼란기를 헤쳐 올 수 있었던 데는 폴 볼커의 지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2008년 금융위기

2008년에 미국은 또 다시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았는데,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첫째, 1980년대에 저축대출은행이 무너진 원인은 장기 고정이자율로 주택대출을 해준 저축대출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부의 고이자 정책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금융회계기준이사회(FASB)는 저축대출은행들이 회계기준을 잘못 적용해서 도산한 것으로 보고 대공황 시절에 포기한 시장가치회계기준(mark-to-market accounting rules)을 적용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은행 등 금융기업들이 가상적 회계를 해서 보이지 않는 부실이 더 심각해 졌다. 둘째, 증권거래위원회는 바젤 자본협정(Basel Capital Accords)라는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도입해서 호황기에는 큰 은행들이 더 많이 대출을 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장했고, 베어 스턴스나 레만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에도 이를 적용토록 해서 거품을 조장했다. 셋째,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주택 모기지, 신용카드 대출 등을 증권화해서 투자자한테 파는 관행이 성행해서 조(兆) 달러 규모의 자산이 은행의 회계장부를 떠났고, 이로 인해 은행은 이에 대한 자본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는데, 이것이 결국 폭탄으로 돌아왔다. 셋째, 상업은행을 투자은행과 구분해서 규제하도록 한 글라스-스티걸법(The Glass-Steagall Act)이 점차 완화되더니 1999년에는 폐지되었는데, 이로 인해 위험하고 복잡한 투자영업을 하는 초대형 투자은행의 도래를 촉발시켰고, 이것이 결국 화근이 되고 말았다. 넷째, 연방정부가 투자한 공기업인 주택 모기지 회사인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을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서 주택 거품을 키웠고 결국 거품이 터지게 됐다. 다섯째, 연방준비제도위원회가 2001년 경기침체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화폐공급을 너무나 오랫동안 확대해서 2008년 위기를 조장했다.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 경제의 지표는 건전했다. 그러나 그 후 2년 동안 주택시장 거품이 터지고 베어 스턴스, 레만 브러더스, 메릴 린치 등이 무너지고 이어서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이 무너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는 위와 같은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8년에 정부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2008년 가을에 위기가 발생하자 행크 폴슨 재무장관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장을 압도하면서 상황을 지휘했다. 하지만 이는 독립적 지위를 가져야 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더구나 폴슨 재무장관은 골드만 삭스 출신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폴슨, 버냉키 등 정부 규제자들과 월가(街),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팀 가이스너는 자주 접촉을 해가면서 상황을 이끌었는데, 이런 현상은 전에 없던 것이었다.

2008년 9월, 미국 정부는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을 국유화하기로 하고 우선주(優先株)를 전액 소각했다. 당시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의 우선주는 미국 정부 채권처럼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서 많은 은행들이 투자를 했었는데, 정부의 소각 조치로 인해 은행권은 총 100억 달러에서 15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 이런 손실은 불필요한 것으로,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의 채무를 정부가 잠정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켰다면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대형 투자은행인 레만 브러더스는 부동산 투자에 따른 손실로 곤경에 처했는데, 폴슨 재무장관은 레만 브러더스에 대해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권했다. 시장은 정부가 레만 브러더스를 구제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벵크 오브 아메리카가 레만 브러더스 대신에 메릴 린치를 합병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9월 12일에 레만 브러더스는 파산을 신청했고 이는 전세계 금융권을 충격에 빠뜨렸다. 저자는 레만 브러더스를 파산토록 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고 평가한다. 9월 16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AIG에 주식의 79.9%를 정부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850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AIG는 사실상 국유화된 것이다. AIG를 구제함으로써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지만 AIG 주주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AIG가 국유화되고 난 후 9일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저축대출은행인 워싱턴 뮤추얼이 무너졌고 예금보험공사는 JP 모건으로 하여금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도록 했다. 워싱턴 뮤추얼에 예치한 예금은 보호됐지만 채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전액 손실을 보았다. 이처럼 필요 이상 정부가 과잉대응함으로써 은행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자금경색이 심화됐다. 그러자 폴슨 장관과 버냉키 이사장은 7,000 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마련해서 금융기관을 구제하자고 의회에 호소했다.

7,000억 달러 구제금융

2008년 9월 23일, 벤 버냉키와 행크 폴슨은 의회에 출석해서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악성 자산(toxic assets)을 사들이기 위해 세금으로 7,000 억 달러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금융 시스템과 미국 경제를 아마겟돈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라고 부르는 7,000 억 달러가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세금 낭비로서,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월가(街)의 이익을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은행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실자산을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액수 보다 적게 받고 팔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방안은 무의미했다. 또한 미국 전체 금융자산 14조 달러에 비한다면 7,000 억 달러는 양동이에 물 한방울이나 마찬가지여서 경제에 의미있는 충격을 줄 수도 없었다. 버냉키와 폴슨은 예금주들이 패닉해서 은행으로부터 인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7,000 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은행 예금주들이 인출을 하는 사태는 문제 은행과 관련해서 발생하지 모든 은행으로부터 발생하지는 않는다. 7,000 억 달러라는 국민세금을 쓰지 않더라도 예금보험공사(FDIC)는 잠정적 유동성 보장(Temporary Liquidity Guarantee)를 통해 예금자들에게 신뢰를 심어 줄 수 있으며, 이런 조치에는 의회 동의가 필요하지도 않다.

따라서, 7,000 억 달러 규모 국민세금은 처음부터 필요치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의회는 TARP 입법을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은 이에 서명을 했다. 이 법은 재무부로 하여금 7,000 억 달러 기금을 사용해서 금융기관의 불량 모기지와 기타 자산을 사도록 했고, 예금자 보호의 1인당 한도액을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상향조정하고, 증권거래위원회가 논란이 많은 시장가격 회계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10월 14일, 재무부는 악성 자산을 매입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에 7,000 억 달러 기금을 은행에 투자해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재무부는 2500 억 달러를 금융기관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모가 가장 큰 9개 금융회사 중 몇몇은 정부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재무부는 정부 자금을 받으라고 강요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은행들이 원치 않는 정부 돈을 빌려야만 했고, 또 다른 많은 은행들은 정부 자금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정부 돈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정부 돈을 필요로 했던 작은 은행들은 정부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어서 돈을 빌릴 수 없었다. 

재무부는 악성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7,000 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법률이 통과되고 나니까 악성 자산 매입은 불필요하다고 말을 바꾸었다. 폴슨 재무장관은 7,000 억 달러 자금 중 일부를 크라이슬러와 제너럴 모터와 이들이 운용하는 자동차 할부금융회사에 구제금융으로 빌려주었다. 특히 의회는 7,000 억 달러 기금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만 쓰도록 하고 자동차 회사에 대한 구제를 거부했음에도 폴슨 장관은 자동차 업계에 대한 구제금융을 위해 이 자금을 지출했다.

실제로 7,000 억 달러 부실자산 프로그램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증권규제위원회가 단기 주식매도를 규제하고,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을 추가로 보호하는 등 그 후에 취한 조치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다. 따라서 7,000 억 달러 기금은 처음부터 불필요했던 것이다. 의회가 이 엄청난 돈을 재무장관이 마음대로 지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큰 문제였다. 대통령과 재무장관이 위기를 부풀려서 이런 막대한 돈을 지출하도록 의회에 강요했다는 점도 역시 큰 문제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2008년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저자가 1984년에 재무부 장관에게 저축대출은행 업계를 정리하자고 제안했지만 당시 재무부는 이를 거부하고 영업을 계속하도록 했다. 1989년에 부시 행정부 들어서 재무부는 1,500 억 달러를 들여서 재축대출은행 업계를 정리했다. 1984년에 150억 달러를 들여 해결했을 일을 5년 후에 10배 들여서 뒤처리를 한 것이다. 금융기관이 탐욕스럽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행기가 중력 때문에 추락했다고 비난하는 격이기에, 금융기관은 원래 탐욕스럽다고 보고 적절하게 규제를 해야 하는데 1995년 이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출담보채권, 파생상품 등 온갖 금융상품이 개발되어서 비즈니스와 금융권 그리고 소비자가 과다한 신용경제를 흥청망청 누렸다. 이에 비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현저하게 뒤떨어져 있었다.

2008년 위기는 단순히 베어 스턴스 같은 회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2008년의 패닉은 정부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발생했다. 흔히 대마불사(大馬不死 : Too Big To Fail)를 비난하지만, 큰 금융회사가 파산하면 그 파급력은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예금보험공사와 준비제도이사회는 이를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글라스-스티걸 법을 부활시켜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다시 분리시켜야 한다. 폴 볼커는 글라스-스티걸 법 폐지에 반대했는데, 그가 옳았다. 또한 금융기관 성격에 따라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는 은행 규제업무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위기는 재무부가 상황을 서투르게 다루어서 커졌다. 재무부는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전문성도 부족하다. 따라서 금융권 문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주도적으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지나치게 많이 돈을 빌려서 써버리는 관행이 오늘날 위기를 불러 왔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 c ) 이상돈


에릭 스테이클벡, 무슬림 형제단 (2013년) 
루 캐논 – 칼 캐논, 레이건의 제자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