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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클레브니코프. 크렘린의 대부 (2000년)
작성일 : 2008-02-24 00:12조회 : 1,903


마피아가 지배하는 러시아

  폴 클레브니코프, 크렘린의 대부(代父) (하르코트, 2000년, 28달러)
  Paul Klebnicov, Godfather of the Kremlin : Boris Berzovsky and the Looting of Russia (Harcourt, $28.00  400 pages)
 
  포브스지(誌) 기자인 폴 클레브니코프가 지난 10년간 러시아를 취재해서 펴낸 이 책은 어떤 추리소설보다 박진감있다. 저자는 오늘날 러시아가 마피아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그 중심부에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라는 컴퓨터 과학자 출신 사업가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베레조프스키는 옐친과 푸틴을 움직여 러시아의 국부(國富)를 헐값으로 차지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개혁정책이 실패한 후 갈 곳이 없어진 많은 퇴역 군인과 KGB 요원들은 혼란기에 돈을 번 사업가들의 사설군대로 전락, 러시아 마피아가 등장했다. 컴퓨터 공학자 출신인 베레조프스키는 체첸 출신 폭력단을 고용해서 자동차 판매업에 진출해서 큰 돈을 벌었다. 자동차 판매는 큰 이익이 보장된 사업이라 암살과 테러가 빈발했는데, 1993-94년 간 일어난 갱 전쟁 중 베레조프스키도 암살된 뻔했다.
  섣부른 물가통제 해제와 민영화로 인해 경제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많은 러시아 국가재산이 허공에 떠있게 됐다. 1989년에 베레조프스키는 로고바즈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국영 아브토바즈 자동차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는 옐친의 저서 출판과 관련해서 옐친과 옐친의 딸 디야쳉코와 가까워졌고, 이를 계기로 국영 TV 방송을 안수했다. 이에 반대하던 저명한 방송인 리스티에프는 1995년 3월에 암살됐는데 베레조프스키가 암살을 지시했을 것이라 한다. 그해 가을 베레조프스키는 아에로플로트의 경영권을 장악했고, 또 옐친의 사위인 레오니드 디야쳉코를 내세워 국영석유회사를 헐값에 사들이는데 성공했다.
    베레조프스키의 경영은 새로운 자본을 투입해서 기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국유기업을 빼돌리는 ‘대약탈’이었다. 그는 자동차공장, 아에로플로트, 석유회사 등 유수한 국영기업을 헐값에 인수했다. 이런 대약탈은 정권과의 결탁에 의해서만 가능한 데, 베레조프스키는 옐친의 재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옐친의 경제개혁이 다시 실패하고 건강마저 악화되자 베레조프스키는 엘친 퇴임 후를 생각해야 만 했다. 
    한편 1999년 들어 러시아 사법당국은 베레조프스키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영국, 미국 등 서방국가도 자금세탁 혐의를 잡고 수사하기 시작했다. 불안을 느낀 베레조프스키가 택한 카드가 바로 푸틴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999년 8월 옐친은 정보기관(FSB)의 장(長)이던 푸틴을 수상에 임명했다. 별다른 경력이 없던 푸틴이 막강한 정보기관장에 오르게 됐던 것은 베레조프스키 덕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런 푸틴이 수상이 됐다는 것은 베레조프스키의 승리였다. 1999년 9월 모스크바에는 폭발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푸틴은 국가위기를 선포했는데 그러자 그의 인기가 올라갔다. 1999년 12월 선거에서 베레조프스키는 의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이로써 불체포(不逮捕) 특권을 갖게 됐다. 그 해 연말 옐친은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푸틴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취임하자마자 옐친과 그의 가족을 형사처벌로부터 면제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2000년 3월 선거에서 푸틴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저자의 결론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마피아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막대한 돈을 날렸고, 러시아에 투자한 롱텀 캐피탈 매네지먼트는 결국 파산해 버렸다. 러시아 경제는 희망이 없으며, 러시아의 보통사람들은 제3세계의 빈민처럼 돼버렸다. 반면 베레조프스키 같은 자들은 엄청난 부자가 됐다. 이들은 축재(蓄財)를 위해 살인 테러 등을 감행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는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돼버렸다.
저자는 1999년에 있은 체첸 사태와 모스크바 폭탄테러가 푸틴 집권을 위해 베레조프스키가 기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저자는 베레조프스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인질로 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민주화와 개혁은 자본주의의 추악한 면만 받아들인 형상이며, 오늘날 러시아는 공산주의 소련시대보다 더 병들어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러시아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클린턴 대통령의 잘못도 크다고 지적한다. 클린턴은 옐친의 부패상을 지적한 CIA의 보고서들을 묵살해 버렸고,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때 옐친을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저자는 러시아가 다시 서기 위해선 푸틴 대통령이 베레조프스키로 대표되는 부패와 족벌 자본주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베레조프스키는 저자의 글을 게재한 포브스지(誌)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을 영국법원에 제기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러시아의 최근 10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피아를 취재하던 많은 러시아 기자들이 무참하게 살해됐음에도 이런 책을 펴낸 저자와 포브스지(誌)의 용기에도 찬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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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저자 폴 클레브코프는 2004년 7월 9일 밤 늦게 모스크바의 사무실을 떠나다가 괴한들로부터 총탄 세례를 받고 숨졌다. 1989년에 포브스지의 입사한 그는 2004년 4월에 러시아판 포브스의 편집장이 되어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었다. 러시아에 공산혁명이 일어난 후 미국으로 탈출한 부모 사이에 1963년에 태어난 그는 버클리를 졸업했으며,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SE)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았고, 포브스에 입사한 후 러시아 문제를 다루어 왔다.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뿌리인 러시아를 사랑했던 클레브코프는 모스크바에서 마피아 방식으로 암살된 것이다. 그는 위의 책 외에도 체첸 분리주의자와 러시아 갱들을 다룬 ‘야만인과 대화’ 라는 책을 2003년에 펴냈다.
  2004년 9월 28일 러시아 경찰은 두 명의 체첸 갱을 클레브코프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던 권총은 탄도 검사 결과 클레브코프를 살해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서 큰 혼선을 빚었다. 그 해 11월 말에는 또 한 명의 체첸인 용의자가 바이러시아에서 체포되어 러시아로 이송되었다. 2005년 5월 4일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 정부에 대해 클레브코프 살인사건을 조속히 해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2005년 6월 16일 러시아 검찰청은 그들이 검거한 체첸인들이 클레브코프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클레브코프의 가족과 친지들은 체첸인들이 범인이라는 러시아 검찰청의 발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모스코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 검찰이 클레브코프 살인사건을 계속해서 수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주요 미국의 언론들도 이 사건을 합동으로 조사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한편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체포될 것을 두려워한 베레조프스키는 런던으로 도망가서 오늘날까지 런던에 머물고 있다. 푸틴 정부는 베레조브스키를 사기와 부패 혐의로 기소해서 그가 러시아 내의 자산을 팔도록 압박했다. 푸틴의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데는 클레브코프의 이 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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