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루이 프리, 나의 FBI (2005년)
2008-02-24 00:34 1,815 관리자


“클린턴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

루이 프리, 나의 FBI  (세인트 마틴스, 2005년, 336쪽, 25.95 달러)
Louis J. Freeh, My FBI (St. Martin s Press, 2005)

이 책은 1993년 9월부터 2001년 6월까지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루이 프리의 회고록이다. FBI 요원 출신으로 연방검사와 연방판사를 지내다가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FBI 국장으로 임명된 프리는 수사관 출신답게 국내외 테러 현장을 직접 살펴보았고, 별도의 경호 없이 자기 차를 운전해서 출퇴근했으며 사무실 밖에선 항상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 
                가난하지만 근면한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는 어렵게 대학과 로스쿨을 마치고 1975년에 FBI 요원이 됐다. FBI 요원으로서 그는 노조의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주로 수사했다.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뉴욕 주재 연방검사가 된 그는 당시 피비린내 나는 보복살인을 자행하던 마피아 보스들을 기소했다. 1991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프리를 연방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1993년에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적 색채가 없는 프리를 FBI 국장으로 임명했다.
                FBI 국장으로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 서있었던 프리와 클린턴과의 관계는 곧 소원해 졌다. 클린턴 행정부는 취임 초부터 온갖 스캔들로 어수선했고 FBI는 클린턴과 힐러리의 비리 혐의를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클린턴은 훗날 자서전에서 “프리가 자기를 잡으려 했다”고 썼는데, 이에 대해 프리는 “클린턴 백악관이 FBI의 수사를 교묘하게 방해했고, 리노 법무장관은 대통령 부부 편에서 서있었다”고 반박한다. 프리는 “클린턴과 그의 변호사들이 걸핏하면 이상한 특권이론을 만들어내서 대배심과 법원의 조사를 거부한 것은 한심한 일”이라고 말한다.
                프리는 클린턴이 재임 중 177건의 사면을 한데 대해 특히 유감을 표시했다. 프리는 “클린턴이 사면권을 행사하면서 법무부나 FBI와 전혀 상의하지 않은데 대해 충격을 느낀다”고 했다. 클린턴이 사면한 범죄인 중에는 자기 동생 로저 클린턴, FBI 요원과 경찰을 살해한 테러범, 수배 중인 금융사기범 등이 있었다.
클린턴은 힐러리의 상원의원 선거를 돕기 위해 진보파들의 요구에 따라 살인범을 풀어주고, 자기의 기념도서관에 거액을 헌금한 금융사기범을 사면한 것이다. 프리는 자기가 연방검사로 있을 때 검사장이던 루디 줄리아니와 함께 어렵게 기소했던 그 금융사기범이 클린턴에 의해 사면된 데 대해 특히 씁쓸해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프리는 “클린턴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프리가 FBI 국장으로 있던 시절은 FBI가 테러에 대처해야만 했던 시기였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발 사건을 수사한 FBI는 범인 유세프를 1995년에 파키스탄에서 체포해서 뉴욕으로 압송해서 기소했고, 뉴욕의 과격 이슬람 단체를 수사해서 맨해튼의 터널과 다리를 폭파하려던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는 개가를 올렸다. 1997년에는 버지니아의 CIA 본부 앞에서 CIA 직원 두 명을 암살한 아랍 테러리스트를 파키스탄에서 체포해서 미국으로 압송해 왔다. FBI는 이미 전세계를 상대로 테러 수사를 시작했다고 프리는 말한다.
                프리는 클린턴 백악관이 테러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1996년 6월 사우디의 미 공군기지에 자폭테러가 발생해서 미군 장병 19명이 사망했는데도 클린턴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은 그 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준다면서 사건을 조사하는데 대해서도 미온적이었다. 프리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부탁해서 사우디 정부의 도움을 얻어 테러의 배후가 이란임을 밝혀냈다.
              2001년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몇 달이 지나 프리는 부시에게 자기가 사임할 것을 밝혔더니 부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다. FBI 국장은 법률에 의해 임기가 10년으로 정해져 있으나 프리는 새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리는 부시 행정부에서 단 6개월 동안 일했지만 부시의 백악관은 클린턴 시절보다 훨씬 효율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9 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프리는 이미 FBI 국장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국장으로 있었을 때 의회로부터 보다 많은 예산을 얻어 FBI의 정보기술 능력을 증강시켰더라면 9․11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내 잘못이 크다”고 깊이 자책했다. 
              마지막으로 프리는 진보세력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는가를 리차드 클라크의 경우를 들어 지적하고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실에서 테러 업무를 보다가 2003년에 그만 둔 클라크는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징후를 간과했다고 주장한 책을 펴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진보언론은 클라크를 치켜세우면서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는데, 클라크의 주장이 허위임은 나중에 밝혀졌다. 프리는 클라크의 책에 나온 자기와 FBI에 대한 서술이 전부 틀리며, 클라크는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월간조선 200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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