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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베이커-수전 글래서, 크렘린 일어서다 (2005)
작성일 : 2008-03-06 00:52조회 : 1,921


皇帝가 되어가는 푸틴


피터 베이커 – 수전 글래서, 크렘린 일어서다 (스크리브너 출판사, 2005, 453쪽)
Peter Baker and Susan Glasser, Kremlin Rising
(Scribner, 2005, 453 pages, $27.50)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行步(행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01년 초부터 4년간 워싱턴포스트의 모스크바 지국에서 같이 근무한 부부 기자가 쓴 이 책은 푸틴의 등장과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號(호)의 向方을 가름할 수 있게 해 준다. 책 제목이 말하듯이 KGB 요원 출신인 푸틴은 러시아에 국가주의를 불러 일으켜서 민주개혁을 후퇴시키고, 자신을 帝國의 황제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KGB 중령 출신의 국가주의자

저자들은 푸틴의 러시아는 공산체제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체제도 아니고, 독재는 아니지만 자유로운 체제도 아니라고 규정한다. 1952년에 태어난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학 졸업 후 그가 원하던 KGB 요원이 됐다. 1989년 그는 동독의 드레스덴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공산체제를 지켜보았다. KGB의 중령이던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대학 은사이기도 한 레닌그라드市 위원회의 소브차크 위원장의 보좌관이 되어 현실정치에 간여하게 됐다.

            1991년 8월 일단의 KGB 장교들이 고르바초프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했다. 소브차크는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는 시위를 레닌그라드에서 조직하려 했다. 푸틴은 무장요원들을 대동하고 소브차크의 시위를 도왔다. 수만 명이 참가한 레닌그라드 시위는 옐친이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얼마 후 소브차크는 레닌그라드의 시장이 됐고, 도시 이름을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로 바꾸었다.

            1996년에 푸틴은 모스크바 중앙정부로 옮겨서 옐친의 비서실 차장 등 요직을 거쳤고, 1998년에는 KGB의 후신인 FSB의 국장이 되었다. 1998년에 러시아 화폐는 폭락했고 경제는 곤두박질했다. 1999년 들어서는 체첸에서 반군(叛軍)이 대공세를 폈다. 건강이 나쁜 옐친은 이런 위기상황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더구나 옐친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나돌았다.

          퇴임 후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후계자로 푸틴을 점찍은 옐친은 1999년 8월 푸틴을 총리에 임명했다. 그 해 12월31일 옐친이 대통령직을 사임하자 푸틴은 대통령직을 계승했고, 2000년 3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48세의 KGB 중령 출신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배경에는 베레조프스키, 거신스키 등 옛 소련의 국영기업을 불하 받은 억만장자 재벌의 후원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이 되자 푸틴은 자신의 통치에 걸림돌이 될 이들을 과감하게 제거했다. 푸틴은 거신스키, 베레조프스키 등 재벌이 러시아의 國富(국부)를 약탈했다고 보고 이들의 재산을 국유화했다. 거신스키와 베레조프스키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국외로 탈출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푸틴은 이들이 갖고 있던 미디어 왕국을 국유화해서 장악한 것이다.

            합법적 독재를 지지한 러시아인들
 
        푸틴은 체첸의 이슬람 叛軍에 가혹한 보복을 가해서 국제적 비난을 샀다. 그러던 중 9-11 테러가 발생했다. 푸틴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 더 나아가 푸틴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푸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했고, 미군이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밀월은 오래 가지 않았다. 푸틴은 부시가 이라크에 침공하려 하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푸틴은 러시아 사람들이 안정을 희구하고 있음을 간파했고, 또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푸틴은 또한 실추한 국가적 위신을 회복하고자 했다. 경제는 차츰 안정되어 갔지만 모스크바 등 대도시와 농촌과의 격차가 커지는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2003년 가을 푸틴은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미하엘 호도르코프스키를 체포하고 그의 재산을 압류하도록 지시했다. 러시아 최대의 석유회사 유코스를 소유한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에 도전했다가 전 재산을 잃고 형식적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갇혔다. 푸틴은 그가 러시아 국민의 부(富)를 부당하게 가로 챘으며,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 통합당은 2003년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러시아 정부는 선거과정이 공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에 장악된 미디어가 일방적 홍보를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의 ‘합법적 독재’를 지지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옐친의 어설픈 민주주의가 빈곤과 혼란을 가져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푸틴식(式) 통치를 기꺼이 받아 드린 것이다. 안정을 위해선 자유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책은 이외에도 의료 서비스, 군대, 사법제도 등 러시아의 각 분야가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2000년 8월 핵 잠수함 쿠르스크號 침몰 사건, 2004년 9월 베슬란 학교에서 체첸 叛軍이 벌인 인질극 등을 설명하면서 저자들은 푸틴 정부의 비밀주의와 인명경시가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박정희를 연상시키는 푸틴

        저자들은 오늘날 푸틴의 주변에는 과거에 KGB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여당인 러시아 통합당은 장기집권에 성공한 일본의 자민당과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을 닮아 가려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2004년 말에 모스크바를 떠났는데, 그 때 이미 푸틴의 임기연장 문제가 조심스럽게 거론됐다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 헌법에 의해 대통령은 3선이 불가능하며, 푸틴의 임기는 2008년에 끝나게 되어 있다. 푸틴은 자기의 임기는 8년뿐이라고 언급했지만 푸틴 지지자들은 푸틴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기 위한 개헌을 조심스럽게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월간조선 200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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