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피터 걸브레이스, 이라크의 종말 (2006년)
2008-11-02 17:01 1,431 관리자


피터 걸브레이스, 이라크의 종말 (2006, 사이먼 앤드 슈스터, 261 쪽)
Peter Galbriath, The End of Iraq (2006, Simon & Schuster, $26.00)

하버드 대학과 조지타운 로스쿨을 나온 이 책의 저자 피터 걸브레이스(작고한 경제학자 케네스 걸브레이스의 큰 아들이다)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이라크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라크 북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族)의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았고, 이런 인연으로  터키, 이란,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1000년 동안 소수민족으로 온갖 박해를 받고 살아 온 쿠르드족(族)을 이해하고 대변하게 됐다.

저자는 1993년에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초대 주(駐)크로아티아 공화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어 크로아티아 내란을 조정으로 해결하였으며, 2001-03년 간에는 해군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이 2003년 봄 이라크를 침공하자, 그 해 가을 저자는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고 또한 자기가 애착을 갖고 있는 쿠르드족을 위해 활동하기 위해 공직을 사퇴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더 나아가서 쿠르디스탄(Kurdistan : 쿠르드족 국가)의 독립을 촉구하고 있다. 

책은 2006년 초에 발생한 이라크의 시아파(派)와 순니파(派) 사이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내란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복잡한 종파(宗派)간 대립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비극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1980년-1988년간에 벌어진 이라크-이란 전쟁, 그리고 1987년-1990년 사이에 사담 후세인이 저지른 쿠르드 주민 대학살,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과 뒤이은 걸프 전쟁, 걸프 전쟁 당시 후세인과 그의 친위부대를 제거하지 못한 미군 지휘부의 실책을 다루고 있다.

1991년 2월 전쟁을 시작한지 6주만에 미군 등 연합군은 쿠웨이트를 완전히 해방시키고 이라크 본토를 장악했다. 그러나 미군은 바그다드를 점령하지는 않았다. 대신 미국은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기를 기대했다. 시아파 주민들이 후세인에게 반기(叛旗)를 들자 후세인은 친위부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보내 강경하게 탄압했다. 이 때 적어도 시아파 주민 30만 명이 살해됐는데, 부근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이 같은 대학살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걸프 전쟁으로 후세인이 약화된 것을 알게 된 북부의 쿠르드족(族)은 키르쿠크 등 북부지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시아파 반란을 진압한 후세인은 공화국 수비대를 북부로 보내서 쿠르드 민병대가 장악한 지역을 탈환했다. 1987년-90년 사이에 후세인의 독가스 공격 등으로 약 18만 명의 희생자를 낸 쿠르드족은 또다시 마을을 버리고 산간(山間) 지역으로 피난해야만 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미군을 쿠르드족(族) 거주지역으로 보내서 쿠르드족을 위한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당시 상원 외교위원회 스태프이던 저자는 쿠르드 지역에 머물면서 쿠르드족(族)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41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계속했다. 

2003년 3월, 미군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미-영 연합군과 보조를 맞추어 후세인의 군대와 전투를 했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점령했지만 얼마 후부터 반군(叛軍)의 테러에 시달려야만 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점령 후의 청사진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라크의 정치세력은 세 갈래로 갈라져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었다. 시아파(派)는 이슬람 종교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쿠르드족(族)은 쿠르디스탄 자치령을 기대했고, 세속적 아랍계 순니파(派)는 그들이 참여하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 폴 브레머 군정장관 등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현지에 보낸 관료들은 복잡한 이라크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부시 행정부는 시아파, 순니파, 그리고 쿠르드족이 참여하는 이라크 연립정부와 단일한 이라크 군대를 건설하고자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잘랄 탈라비니, 마수두 바르자니 등 쿠르드 지도자들은 6,000명의 쿠르드 민병대원을 이라크 군에 편입시켰지만, 쿠르드 군대는 쿠르드 독립을 위해 이라크 군복을 입고 미군과 작전을 같이 하는 것이지 결코 시아파(派)나 순니파(派)가 장악하는 이라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쿠르드 지역이 테러가 가장 적고, 쿠르드족이 미국에 우호적인 것도 쿠르드족은 미국의 도움으로 쿠르드 독립국가, 또는 최소한 쿠르드 자치령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라크가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혼합된 나라이며, 결코 융화된 나라(‘melting pot’)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후세인 몰락 후 이라크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란은 시아파와 순니파 사이에서 벌어졌고, 북부에 위치한 쿠르드족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인 모술에서  순니파와 쿠르드족은 티그리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자신들의 수도(首都)로 생각하지만, 석유 부존량(賦存量)이 많은 키르쿠크 지역 역시 분쟁의 소지가 많다.

저자는 이라크를 시아파(派) 지역, 순니파(派) 지역, 그리고 쿠르드족(族) 지역으로 3개 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이라크 국민의 80%는 순니파 아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0년 동안 순니파의 통치를 받아서  끊임없이 비극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같은 잘못된 역사에 종지부(終止符)를 찍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독립국가 쿠르드스탄(Kurdistan)은 이미 하나의 현실이며, 크로아티아와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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