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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앤서니 서머스 <Goddess>
작성일 : 2024-03-04 23:08조회 : 1,166


앤서니 서머스 <Goddess>

 
마릴린 먼로가 사망한 후 20년이 되는 1982년에 먼로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많았고, 이런 여론 때문에 LA 검찰청이 뒤늦게 정식 수사를 할 것인지를 검토하게 됐음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BBC 방송에서 도큐먼트를 제작해 온 앤소니 서머스(Anthony Summers 1942~)는 1970년대 말에는 프리랜서 탐사 취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1970년대 말 미국 하원 암살조사특위가 케네디 암살을 다시 조사하는 것을 보고 케네디 암살을 다룬 책 <Conspiracy>을 1980년에 펴내서 호평을 받았다. 서머스는 영국의 한 언론사로부터 먼로의 죽음을 다루어 보라는 의뢰를 받았다.

먼로에 대해 깊이 아는 바가 없었던 서머스는 먼로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을 접촉했으나 모두들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래서 서머스는 먼로의 생애를 처음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서머스는 65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해서 먼로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Goddess : The Secret Lives of Marilyn Monroe>(1985)이다. 몇 달이면 될 줄 알았던 이 작업은 3년이 더 걸려서 1985년에야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서머스는 먼로와 그녀가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의 스토리를 생동감 있게 그려서 마치 먼로가 살아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Goddess>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 후 보완돼서 2000년판과 2022년판으로 나와 있다. 

서머스는 먼로와 존 F. 케네디와의 관계가 오래 됐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케네디 형제와 먼로가 여러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가졌음을 밝혀냈다. 케네디 형제와 먼로와의 관계는 할리우드와 워싱턴 정가에서 떠돌았던 풍문이었는데, 서머스는 이런 풍문을 사실로 확립시켰다. 서머스는 한 사람이 작은 사실을 인정하면 그것을 근거로 다른 관계자에게 질문해서 한발 더 나간 사실을 확인하는 식으로 사실을 조립해 나갔다.

의문점이 많은 먼로의 죽음에 대해서 서머스는 먼로의 홍보회사 대표인 아서 제이콥의 부인이 되는 나탈리 트룬디(Natalie Trundy)로부터 당시 연인이던 아서 제이콥이 패트 뉴컴으로부터 먼로가 죽었다는 연락을 8월 4일 밤 11시 전에 음악회 도중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내서 책에 처음 실었다. (이에 대해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먼로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음이 관련자의 증언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서머스는 인터뷰 외에도 공개되지 않고 있던 자료를 구해서 먼로가 케네디 형제와 자주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자신의 책을 완성해 가던 앤서니 서머스는 CBS 제작자를 지낸 테드 랜드레스(Ted Landreth 1943~)와 함께 책 내용을 방송 도큐먼트로 만들어 보려고 미국 방송 3사(CBS, NBC, ABC)를 접촉했으나 미국 방송사들은 모두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이를 제작하기로 해서 두 사람은 BBC와 함께 도큐먼트 제작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1985년에 BBC는 <Say Goodbye to the President>를 방송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BBC 도큐먼트를 제작하면서 서머스는 먼로의 집에서 집안일을 했던 유니스 머레이(Eunice Murray)와 인터뷰를 했는데,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머레이는 “내 나이에 아직 이 일을 덮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먼로가 죽던 날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를 만났으며, 먼로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의사와 앰뷸러스가 왔다”고 인정했다. 유니스 머레이는 1994년 3월 5일, 애리조나에서 94세로 사망했다.

BBC 방송에서 먼로 도큐먼트가 큰 성공을 거두자 미국의 ABC 방송이 ‘20/20’로 먼로의 죽음을 다루는 특집 프로를 만들었으나 경영진의 압력으로 방영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담당 PD이던 실비아 체이스(Sylvia Chase)가 이에 항의해서 사표를 내는 등 큰 파문이 일었으나 그 방송 내용은 그 후에도 공개되지 못했다. 하지만 실비아 체이스가 도청 전문가인 프레드 오타시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오타시가 먼로가 죽던 날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의 집에 와서 먼로와 크게 다툰 것을 녹음 테이프로 갖고 있으며, 케네디 형제와 먼로가 관계를 갖는 녹음도 갖고 있다고 암시하는 장면이 누출됐다. (이에 대해서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앤서니 서머스의 책은 먼로의 죽음과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햇볕 아래로 내어 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한편 피터 로포드(Peter Lawford)는 1984년 12월 24일  61세로 사망했다. 로포드는 먼로의 죽음에 관해 끝까지 침묵했다. 먼로의 정신과 의사 랠프 그린슨(Ralph Greenson)은 1979년 11월 24일 68세로 사망했다. 그린슨도 먼로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 그린슨과 로포드는 먼로가 죽은 후 폐인(廢人)과 같은 황량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먼로가 죽던 날 먼로의 집에는 유니스 머레이의 사위로 먼로의 집 수리를 하던 노먼 제프리스(Norman Jeffries)가 있었다. 앤서니 서머스는 제프리스를 인터뷰하려고 노력했으나 유니스 머레이는 제프리스에 연락을 해주지 않았다. 앤서니 서머스와 함께 BBC 도큐먼트를 제작하던 테드 랜드레스는 1983년에 제프리스가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에 살고 있음을 알아내고 연락을 했으나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3년, 아칸소 러셀빌이란 마을에서 죽음을 앞에 둔 제프리스는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제프리스는 자기가 먼로가 죽을 때 유니스 머레이와 함께 거실에 있었으며, 그날 오후에 로버트 케네디와 피터 로포드가 왔을 때도 거실에 있었고, 토요일 밤 늦게 앰뷸런스가 올 때에도 거실에 있었으며, 먼로의 시신이 게스트 룸에서 본채 베드룸으로 옮겨 질 때에도 거실에 있었고, 머레이 유니스가 그린슨을 부른 이유는 게스트 룸에서 먼로가 코마 상태(comatose)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3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증언했다. 
 
이렇게 해서 먼로가 죽은 후 30년 만에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이 많이 풀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먼로가 코마 상태에 빠졌나는 아직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못했다. 그 퍼즐이 풀리기 위해선 또 다른 세월을 필요로 했다.

- 사진 (1)  : <Goddess> 2022년 판.
- 사진 (2) : 유니스 머레이와 노먼 제프리스. 1962년 8월 5일 오전. 먼로의 시신이 실려 나간 후 먼로의 집을 떠나려고 자동차를 타는 모습,
- 사진 (3) :  8월 8일 먼로의 장례식에 참석한 랠프 그린슨과 그의 가족. 앰뷸런스 구급요원인 제임스 홀은 그린슨이 의심스러운 약물을 넣은 주사기로 먼로의 심장을 찔러서 먼로가 숨을 거두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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