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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북리뷰] 서초동 0.917 (주간경향)
작성일 : 2012-08-20 07:20조회 : 3,168
[북리뷰] <서초동 0.917> 김희균 외 지음 · 책과함께·1만4800원
한국 법원·검찰·경찰에 대한 개혁방안 2012 08/21ㅣ주간경향 989호
대학에서 형사법을 가르치는 중견교수 4명이 흥미로운 책을 펴냈다. 책 제목에서 ‘서초동’은 법조타운을 의미하고 ‘0.917’은 빙산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니, 한국 법조의 수면 아래 부분을 저자들이 해부했다는 뜻이다. 흔히 ‘빙산의 일각’이란 말을 쓰는데, 저자들은 진정한 사법개혁을 위해선 보통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수면 아래의 빙산’을 부숴야 한다며 법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에 대한 개혁방안을 정리해 이 책을 냈다.
우리 사법제도는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린 양상이다. 법조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직업을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적대적인 사회적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법조인들은 외부와의 관련을 끊고 자신들만의 세상에만 몰입해서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기성 법조에 대한 불만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으니,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혁명에 성공하면) 우선 모든 법률가를 죽여야 해”라는 대사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형사재판에 임하는 많은 변호사들이 무성의하고, 판사들 역시 그러함을 지적하고 있다. 1심 재판에 대해 무조건 항소하는 우리나라 방식의 3심제가 초래하는 폐단도 잘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험 있는 판사들이 1심 재판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심 판결에 대해 무조건 항소하는 풍조를 바로잡기 위해선 1심 재판부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는 수밖에 없다. 경험이 많은 법관이 1심 재판을 담당토록 하고, 고등법원은 웬만해선 1심 재판 결과를 번복하거나 적당하게 형량을 깎아주는 판결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형사재판에 있어서는 검찰의 항소권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 저자들은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상설특검을 두어 검찰을 개혁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야당이 주장하는 고위공직자수사처와 검사장 직선제는 폐단이 많다고 본다. 하지만 특검은 원래 한시적으로 두는 것이니, ‘상설특검’은 그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다.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 상설특검을 둔다면 모를까 상설특검을 항구화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검찰이 되고 말 것이다.
저자들이 놓친 부분은 검사에 대한 인사권 문제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모든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한 검찰의 독립성은 요원하다. 대통령이 성군(聖君)이라는 보장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 인사를 장악하고 있다면 대한민국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저자들은 미국에서와 같은 검사장 선거제는 가장 나쁜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시장과 군수를 선거로 뽑도록 할 때도, 또 교육감을 선거로 뽑도록 할 때에도 그런 논리는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되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풍토에서 검사장 주민 직선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흔히 ‘무소불위’로 표현되는 검찰권을 어떠한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대로 남는다. 선거를 통해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그에게 검찰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검찰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검·경간 수사권 분쟁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그간의 검찰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경찰에 대해선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중앙집중식 검찰은 별 문제가 없지만 중앙집중식 경찰은 문제가 많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지방화하고 검찰은 지금처럼 중앙집중식으로 놓아둔다면 검찰의 입지만 더욱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저자들이 말하는 사법개혁은 빙산을 그냥 멀리 구경하는 형상이다.
- 이상돈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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