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22) :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경향)

작성일 : 2011-07-20 12:10조회 : 4,264

[이상돈·김호기의 대화](22)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박홍두 기자)

ㆍ이인영 “정권교체 절박… 연합은 승률 불확실, 통합이 대안”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1987년 6월항쟁을 이끈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의장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정치에 입문했고,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선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지금 그의 정치 항로와 화두는 내년 총선·대선을 향한 야권통합, 즉 시민사회를 포함한 민주진보개혁세력의 대결집에 맞춰져 있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보수 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진보 성향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와 만난 ‘22번째 대화’에서 “(야권 통합을 통해) 정책 진보, 수권 진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대한민국 진보를 크게 정리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연합은 승률이 불확실하니 통합으로 확실한 대안을 만들자는 생각”이라며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진보개혁 세력 안의 가치·이익·정책의 균열이 존재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정당 분화를 가져 온다”며 “내각책임제라면 야권연대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486세대(386세대가 40대가 된 것을 지칭)의 향후 정치에 대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초는 경제적 윤택”이라며 “최근 ‘한나라당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자충수로 인한 것이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최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486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최고위원 5명 가운데 3명(나경원·원희룡·남경필)이 이 위원과 같은 ‘486세대’인데, 전당대회 결과를 어떻게 봤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그리고 넓게 보면 김두관 경남지사까지도 80년대 학생운동 세대라 할 수 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인데.

이인영 최고위원(이하 이인영) = 현상적으로는 세대교체가 진행된 걸로 본다. 민심의 흐름도 그렇다. 아마 더 강력해질 것이다. 그런데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세대교체의 새로움보다는 ‘이명박에서 박근혜’로라는 것이 더 규정적으로 됐다. 원 의원이 비전과 패기를 분명히 해서 남경필 의원 등과 더불어 견고하게 나아갔으면 결과는 달랐을 거다. 그런데 ‘MB’와 연결됐다. 그래서 반면교사적인 게 생겼다. 우리가 국민들의 바람이나 본질적인 변화에 입각한 세대교체로 가지 않으면 ‘다분히 무늬로 전락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 전대협 초대 의장인데, 전대협은 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제에 임수경을 보낸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어떤 소감이었나. 후신인 한총련은 90년대까지 활동하다가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인영 = 87년 민주항쟁의 목표는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평화·통일이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전대협 3기 후배들이 임수경을 평양으로 보내는 것까지 대담하게 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금단의 벽을 깨고 돌파한 것이 솔직히 경이로웠다. 하지만 당시 그 과정에서 우리의 경직성과 교조성도 있었겠구나 생각했고, 나 자신은 현실의 변화를 주목하고자 했다. 90년대에 들어 화이트칼라의 증가, 농업 비중의 감소와 금융산업의 확대 등으로 인해 한국사회를 분석하던 내 시각이 바뀌었다. 기존의 전략·전술로는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했다. 당시 후배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총련은 운동적 지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은 높았지만 대중성을 상실하면서 결국 대중들과 이반했다.

이상돈 = 전대협 2·3기 의장을 맡은 오영식·임종석과 함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전대협 출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뜻은 뭘까.

이인영 = 이념적인 것보다는 학생운동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했다고 본다. ‘학생운동할 때처럼 모든 것을 희생했던 정신으로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하라’, ‘서민·중산층의 삶을 낫게 만들어라’라는 생각을 한 것이라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대협 출신이라는 점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받긴 했다.

이상돈 = 학생운동권의 친북 주사파 중 상당수는 우파로 전향해 ‘뉴라이트’를 표방하며 이명박 정권의 한 축을 이뤘다. 이들의 전향을 진정하고 순수한 것으로 보는가.

이인영 = 전향할 수는 있다. 한번 좌파는 영원한 좌파고, 한번 우파는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예의이자 도리라고 본다. 90년대 초·중반 그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주체사상의 한계를 얘기하면 그들은 ‘그것보다 더 좋은 철학은 없다’고 강변했다. 전향의 과정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한 정치적 굴복이나 변절을 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김호기 = 야권연대 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을 포함하는 민주대통합보다는 민주당을 배제하는 진보대통합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야권통합특위 위원장으로서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야권대통합 방식과 10월 이전 통합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왜 대통합인가. 이를 위해선 가치연합이 중요할 텐데, 그런 면에서 최근의 한진중공업 사태가 시험대로 보인다. 단식농성 중인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와 동참할 생각은 없나.

이인영 = 정권교체를 하자는 거다. 그런데 우선 ‘연합’은 승률이 불확실하니까 ‘통합’으로 확실한 대안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너무 정치적인 이익만 앞세우는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연합을 통해 집권할 수도 있지만 차이를 해소한다면 통합까지 할 수도 있다. 정책 진보, 수권 진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보를 크게 정리하자는 거다. 실제로 복지정책 등 공유하는 가치 지점은 이미 많다. 지난 14일 밤 시청 앞에 다녀왔다. 마음은 두 사람 옆에 가 있으나 지금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우리가 (운동권 시절) 밖에서 시위하고 있을 때 도서관에서 마음으로 같이해줬던 동료의 마음으로 있겠다고 했다.

김호기 = 진보정당과의 통합은 소수 그룹의 권리를 얼마나 보여줄지가 관건인데.

이인영 = 통합하려고 한다면 진보정당이 기대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천·당 운영 등에서 소수정파의 의사를 적극 반영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비례대표의 몫에서 더 배정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김호기 = 내각책임제라면 야권연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개혁 세력 안에는 가치, 이익, 정책의 균열이 존재할 수 있고, 이는 불가피하게 정당들의 분화를 가져온다. 대통령중심제가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고 보나.

이인영 = 대통령제를 정치적 이유로 선호하는 게 사실이다. 내각책임제로 갈 경우 지금의 재벌구조 사회하에서 의회가 지배된다면, 국민의 권력을 시장으로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내각제가 새로운 권력구조의 대안이 되려면 재벌과 시장의 권력이 적절히 조절될 수 있는 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상돈 =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초는 경제적 윤택이 아닌가 싶다. 김두관 지사, 송영길 시장도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후 서울 구로에만 있었다. 거기서 삶의 문제를 봤고, 많이 반성했다. 정치·개혁·사회정의 같은 가치들에 매달려 의원을 했었는데 떨어지고서 2년 정도 그곳에 있다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일자리·교육·집·보육·노후·환경 문제 등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도 삶의 진보, 생활의 진보를 외쳤던 이유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복지 주제는 지속된다. 어떤 식의 성장이냐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진보적 성장 개발이냐, 보수적 성장 개발이냐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김호기 = 486세대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문제는 현재 조건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저출산·고령화 등은 민주화를 넘어 진화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486세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이 돼야 하나.

이인영 =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중이다. 대안적 시장경제로까지 가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 모델, 초과이익 공유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실현가능성을 높여 상생·공존의 시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복지·평화를 확보하고 연대(solidarity)를 강화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이상돈 = 최근 ‘한나라당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자충수로 인한 것이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고 본다. 민주당은 과연 한나라당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나.

이인영 = 어제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잠깐 만났다. 김 구청장과 같은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교육복지 투자 등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착실히 부응하고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진다면 민주당이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을 것이다. 이런 성과가 내년 총선에서 평가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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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교수 후기

전대협 창립의장인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1983년에 교수가 되었으니 김호기 교수와 이인영 최고위원이 학생으로서 1980년대를 보았다면 나는 교수로서 그 시대를 살았고 보았던 셈이다. 지미 카터의 실패에 진저리가 난 나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활동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에 큰 감명을 받았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잿더미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일갈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을 좋아했다.

1980년대 전반부 대학가는 시위와 최루탄으로 얼룩져 있었다. 당시는 모든 교수들이 학생들과 면담을 하고 그 기록을 남기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반미 정서에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학생들의 그러한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도 나처럼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고, 또 영어 잡지와 책을 읽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레이건 대통령 2기 임기 동안에 미국 정부는 칠레, 엘살바도로, 필리핀, 그리고 우리 정부에 민주화 압력을 넣었고, 그것이 상당한 효과를 보았던 것은 이제 확인되고 있다.

1987년에 나는 우리 헌법 개정과 미국 헌법 200주년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홍사덕 의원의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는 ‘이민우 구상’이 무산된 후에 4월에 이른바 전두환의 ‘호헌 선언’이 있었다. 그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에 정부 모 기관에 파견 나가 있던 검사 친구가 그런 발표가 내일 있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순간 “과연 저들의 기대대로 그대로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박종철 사건이 폭로되었고, 6월 시위가 시작됐으며 결국 6·29 선언으로 수습이 됐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역사에 각인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전대협의 대표라는 ‘명예’는 2년 후에 일어난 임수경 방북사건으로 인해 ‘멍에’가 된 측면이 있다. 임수경 방북과 관련된 나의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이 최고위원은 차분하게 그 때를 회고하는 기분으로 답을 해주어서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최고위원은 2008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턱에 민주당의 최연소 최고위원이지만 원외이다. 민주당 속사정은 내가 알 리가 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인영 최고위원이 촉망을 받는다고 한다. 이 최고위원이 차세대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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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 후기

나는 ‘486세대’가 아니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유신세대’ 또는 ‘긴조(긴급조치)세대’에 속한다. 하지만 486세대에 대해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후배인 이들과 함께 20대의 젊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격렬한 논쟁, 연이은 시위와 친구들의 구속, 그리고 사회운동 현장으로의 진출 등을 포함해 저항 및 해방의 낮과 밤으로 이뤄진 ‘열정의 시대’가 다름 아닌 1980년대였다.

1980년대 초반 수면 아래 잠복돼 있던 학생운동은 이른바 유화국면을 경유하면서 대중운동으로 전화했는데, 이 대중적 학생운동을 주도한 조직이 곧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였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바로 이 전대협의 초대 의장이다. 이후 오영식 민주당 전 의원, 임종석 민주당 전 의원 등이 이끈 전대협은 1987년 민주항쟁과 곧 이은 통일운동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학생운동의 절정을 열었다.

전대협과 학생운동은 이 위원의 개인적, 정치적 삶의 원점을 이룬다. 현재의 관점에서 1980년대 학생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당대의 관점에서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시민사회의 지반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대협 세대는 화이트칼라로 사회에 진출하기도 했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으며, 이 위원처럼 정치권으로 나가기도 했다.

이 위원을 포함해 정치권의 486세대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만이 없지 않다. 서구사회의 ‘68세대’와 비교해 한국 486 정치인들은 이른바 ‘여의도의 논리’에 일찍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가 현실이라는 사실을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486 정치인이 현실의 ‘분별’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이상의 ‘열정’을 소홀히 한 부분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분별 없는 열정도 문제지만, 열정이 박제된 분별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이 위원은 연구자로서 내가 아끼는 486 정치인 후배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출신학교는 다르지만 그 동안 공적인, 사적인 만남을 통해 오랫동안 이 위원을 가까이 지켜봐 왔다. 486세대라면, 그리고 야권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순수함과 진정성을 갖춘 486 정치인들 가운데 이 위원보다 앞쪽에 설 수 있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의 낙선 이후, 그리고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이 된 이후 이 위원이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더욱 원숙해져서 내심 크게 반가웠다.

민주화세대에게 1987년과 2008년은 일종의 기억의 원점이다. 다른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1987년 6월항쟁과 2008년 촛불집회는 민주화세대의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았다는, 소진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이 위원은 1987년이 자신 삶의 출발점을 이룬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부디 이 위원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유토피아적 현실주의’를 실천하는 큰 정치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기사와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경향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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