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셜테이너'는 방송에 나오면 안된다 ? (시사IN)

작성일 : 2011-08-03 15:41조회 : 4,039

<시사IN> 시사에세이 2011년 8월 6일자 제203호

‘소셜테이너’는 방송에 나오면 안 된다 ?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석희 교수(성신여대)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시선집중>의 제작팀이 김여진씨를 고정 패널로 선정하자 경영진이 이를 취소한 사태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홍대 청소 근로자, 반값 등록금, 한진 중공업 사태 등 민감한 현안 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배우 김여진씨 같은 사람은 방송에 나와선 안 된다는 것이 MBC 경영진의 견해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소셜테이너’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시선집중>이 김여진씨를 진보 패널로 초청한 조치는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은근히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글이나 쓰다가 그 정치인의 선거 캠프에 가담해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지낸다거나, 공영방송에서 중립적 사회자로 등장해서 지명도를 높인 후에 정치 ․ 사회 운동에 뛰어든 경우에 비한다면 ‘진보 패널’임을 미리 알리고 출연토록 한 MBC 제작팀의 조치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이라고 해서 방송에서 현안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해당 연예인이 시청자나 청취자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그들의 출연 자체는 방송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미국과 달리 방송에선 '공정성(fairness)' 원칙을 준수하여 하는 우리나라는 방송이 정치 ․ 사회 현안문제를 다룰 때에는 상반되는 의견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

김여진씨에 앞서 <시선집중>에 진보 패널로 참여했던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나 보수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전원책 변호사는 모두 본업이 따로 있다. 시민운동가나 변호사는 사회문제에 대해 논평을 해도 되고 연예인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은 어디서 나온 궤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연예인은 원래 ‘수준’이 낮아서 그런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면, 현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낸 유인촌씨는 무슨 출신이고, 성남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비리로 구속된 이대엽 전 시장은 어떤 출신인가.

김여진씨의 출연이 좌절되자 <시선집중> 팀은 <한겨례>에서 화통한 지상대담으로 유명해진 서해성 작가를 진보 패널로 출연시켰다. 서해성 작가와 그 상대방인 전원책 변호사는 작가나 변호사라는 자신들의 본업 보다는 사회 이슈에 목소리 내는데 더 치중하는 인물이다. 자신들도 일종의 ‘소셜테이너’와 별다를 바 없는 이들이 ‘소셜테이너의 방송 출연’을 두고 대담을 했으니, 이런 ‘촌극’을 진행해야만 했던 손석희 교수의 심정을 헤아릴 만하다. 김여진씨의 방송출연이 좌절되자 문성근씨 등이 MBC에 출연거부를 선언했다는 것도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기를 쓰고 출연해서 의견을 개진해야 하는데, 출연을 거부하겠다고 하니 자책골을 날리는 꼴이 아닌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베트남 전쟁 반대, 이라크 전쟁 반대, 원자력 발전 반대 등에 앞장선 경우가 많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성은 별로 없지만 대중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됐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에 제인 폰다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모임을 주도했고, 북 베트남을 방문해서 공산 베트남군의 대공포대 앞에서 사진을 찍어 많은 미국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폰다의 행동에 대해 적국을 이롭게 한 ‘반역행위’라는 비난마저 일었다.

유명 연예인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무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이들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사생활이나 영화 속의 배역과 너무 다른 경우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국 육군 대위로 나온 마틴 신이 반전(反戰)운동을 하고, 호화로운 사치생활로 유명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환경운동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그런 경우다.

1980년대 ‘보수 전성기’를 연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소셜테이너’ 출신이다. 그저 그런 대학을 나온 그저 그런 영화배우이던 레이건은 제네럴 일렉트릭(GE)의 후원으로 방송칼럼을 진행하고 나서 유명해 졌다. 하지만 레이건은 방만한 TVA(테네시 유역 개발공사)를 비판한 것이 빌미가 되어 방송을 그만 두어야 했다. 레이건이 “TVA가 멍청하게 운하를 건설해서 세금을 낭비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TVA는 GE에 항의했고, TVA에 터빈을 공급하던 GE는 프로를 아예 중단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미 유명해진 레이건은 아예 정치에 뛰어들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고, 1980년에 대통령에 당선돼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멍청한 TVA와 GE가 레이건이란 ‘영웅’을 만든 셈이다.

*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시사IN>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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