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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5) : 원자력 (경향)
작성일 : 2011-03-21 19:15조회 : 4,209
2011년 3월 21일자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5)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한가
정유미·이서화 기자
ㆍ이상돈 “원전 장밋빛 전망 재고해야”
ㆍ김호기 “원전은 근본적으로 위험”
전 세계의 시선이 일본에 쏠리고 있다. 일본 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폭발사고가 잇따르면서 방사성물질 노출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돈 교수(중앙대·법학)와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는 다섯번째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교육과학기술부를 찾았다. 우리나라 방사능 중앙통제 상황실이 교과부에 마련돼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교과부 후문은 “사립대 비리 철폐”를 외치는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고 있는 탓에 혼잡한 틈을 겨우 피해 18층 상황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마침 중앙통제실에서는 전국 70개소에 설치된 국가환경 방사선 감시망을 통해 실시간 원전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원전 사고는 사전예방이 제일이지만 신속하면서도 합리적인 대비태세도 중요하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와 통합되면서 원자력 행정의 위상이 축소됐는데, 원자력 안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화는 경향신문사로 자리를 옮겨 2시간가량 더 이어졌다.
김호기 교수(이하 김호기)=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 사고는 우리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 한가운데 살고 있음을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 위험에는 자연적 위험과 인위적 위험이 있는데, 이른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다. 이번 비극의 경우 대지진이 천재라면 원전 사고는 인재였다. 우려할 점은 일본 원전사고가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대재앙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4000명에 이르렀다. 또 이웃 벨라루스 지역에서는 갑상샘암의 발병률이 최고 200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농수산물 섭취로 인한 2차적 피해도 심각했다. 원전 사고는 인류 대재앙임에 틀림없다.
이상돈 교수(이하 이상돈)=체르노빌 사고는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원자력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불러왔고 90년대 이후에는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원자력의 안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사실 일본 지진·화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늘 있어왔다. 문제는 발생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언제 발생하느냐였다. 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단위 원전 단지가 있다보니 예상치 못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천재와 인재가 겹쳐 대재앙이 된 것이다.
김호기=일본 원전 사고를 보면서 우리나라 원자력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원자력이 전체 전력생산의 3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1기인 원전을 35기로 늘려 원전 비중을 48.5%로 높이는 등의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0~2024)을 확정했다. 2008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59%까지 높인다는 방침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형 원전이 안전성과 효율성 면에서 최고”라고 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자랑하던 일본의 원전 사고를 보면 아무리 안전관리를 잘해도 원전의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상돈=문제는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발전원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많이 생성하고 대기를 오염시킨다. 풍력이나 태양발전 역시 원전을 대체하기 힘들다. 원전 비중을 늘리는 것은 친환경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와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보다 기술이나 안전장치면에서 더 나은 발전소를 갖고 있다. 월성 원전, 울진 원전 등에서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조치를 잘했고 그래서 안전도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원자력발전소는 가동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김호기=하지만 일본 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가 원자력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고유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자력을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새로운 평가가 요구된다. 일본처럼 안전기준과 규범을 갖춘 나라가 지진과 쓰나미에 원전 피해를 막지 못했다면 전 세계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200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공급 중 신생에너지(핵융합 연료전지·수소에너지 등)와 재생에너지(태양열·풍력·조력 등) 비중이 노르웨이(50%), 뉴질랜드(31%), 스웨덴(30%)은 높은 반면 미국(5%), 일본(3%), 한국(1.4%)은 낮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4년 8.9%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좋지만 기술이 부족하고 경제성이 낮아 본격적인 추진이 어렵다. 원자력발전이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닌, 어떻게 신·재생에너지와 생산적으로 잘 결합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이상돈=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도 논의를 많이 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인구도 적고 우리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인구 5000만명에 중화학공업 비중이 큰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가 과연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안전성을 담보하는 조건하에 당분간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기존 발전소의 경우 50년은 안고 가야 한다. 다만 원자력을 안전하게 쓰려면 기술뿐 아니라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의 원자력공학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렸다. 하지만 지금은 지망자가 줄어 고민이 많다. 원전 운영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인적자원 확충이 정말 중요하다. 발전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가 절감에 너무 신경쓰는 것도 문제다. 지나치게 사업성과 경제성을 따지면 원자력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호기=정부는 “일본과는 원자로 설계방식이 다르다, 바람의 방향이 편서풍이라서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 주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얼마나 높은지 의문이다. 생태·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핵발전소도 울진, 고리, 월성 등 동해안 지역 활성단층지대에 몰려있다고 한다.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지진 위험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과 같은 강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본 원전 사고가 주는 교훈은 원전 관리에 대한 안전성을 높이고 정보를 개방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녹색성장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 핵발전 확대정책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상돈=원자력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장밋빛 전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 원전 사고를 보며 교훈으로 삼을 것은, 전력이 끊어지자 원자력발전소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가 폭발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가 없어 발전소마다 꽉 차 있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에 관한 정책이 시급하다. 또 더이상 일본식 원자력안전 행정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미국은 70년대 이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뒀다. 행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원자력을 허가, 관리, 감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처럼 규제기관의 위상을 높여 독립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미국 NRC는 104기 원전의 지진위험도 순위를 1위부터 104위까지 솔직히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과부로 통폐합되고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지식경제부의 발언권이 커져 원자력 안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당장 미국식으로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현 정부 이전 수준으로 복구해야 한다.
김호기=우리나라의 원전 위주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성이 큰 만큼 장기적으로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할 것이다. 대체에너지는 기술도 부족하고 경제성이 낮긴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국가 에너지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상돈=체르노빌 사건 이후 북유럽은 원전을 조기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대체할 에너지가 없어 다시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인구와 경제성장의 변곡점이 오게 되면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지 않고 멈출 수 있다. 국민이 원자력을 원치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이제 원자력 확대·축소 논쟁은 정부와 과학자 손을 떠나 국민들의 공론으로 넘어갔다. 내년 총선과 대통령선거의 쟁점이 될 수도 있다.
김호기=우리 국민들도 자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1.7배에 달한다. 에너지 과소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적인 생활태도를 갖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상돈=원전이 많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들에게도 있다. 지하철만 해도 객차 안 에어컨으로는 부족해 그 넓은 역사를 시원하게 하고 있는데, 누구 때문인가. 쾌적하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싶다.
김호기=북핵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 북한의 핵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한반도가 핵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환경위기도 되새겨야 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대한 ‘지구의 역습’이라고 할 만한 자연재해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복구되기 어렵고 다음 세대가 누려야 할 자산을 미리 탕진해 버릴 수도 있다.
이상돈=지구라는 행성이 아름답고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인류 문명은 무서운 화산 폭발과 지진을 극복하고 이겨왔다. 일본이 지진으로 전에 없는 시련을 겪고 있지만 반드시 극복하리라 믿는다. 과거 인류 문명은 그보다 더 어려운 재해도 극복했다. 인간 문명은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홍보하는 것이나, 4대강을 제멋대로 바꾸는 것은 자연을 향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호기=자연적 위험이든 인위적 위험이든, 위험사회가 우리 인류에게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울한 전주곡인 것 같다. 근대문명의 시작으로 기술과학이 생명과 자연을 압도했지만 21세기 들어 자연과 생명의 중요성이 새롭게 발견되고 커지고 있다. 일본의 비극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갖게 한다. 자연·생명과 과학·기술의 생산적 조화를 위한 제3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하는 역사의 문턱에 인류가 위태롭게 서 있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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