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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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카고, 터스콜라, 스프링필드
작성일 : 2011-02-20 02:13조회 : 4,162
시카고, 터스콜라, 스프링필드
이상돈 (2011년 2월 20일)
워싱턴에서 공무원과 변호사를 했던 미국 여자 친구가 2008년 경제위기로 일하던 로펌이 다운사이징을 하는 바람에 은퇴를 하고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갔다. 그녀는 나에게 미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시카고에 꼭 들르라고 했는데, 지난 여름에 비로소 시카고를 방문할 수 있었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빨리 세상을 떴고,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 모계가 아일랜드계(系)라서 형제가 많았는데, 조지타운 로스쿨을 나온 큰 딸인 그녀가 성공한 셈이다.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했는데, 나이 60을 훌쩍 넘긴 그녀는 80대인 어머니와 90 나이를 바라보는 역시 평생을 혼자 살아온 이모 때문에 시카고를 자주 들렀다. 2008년 말에 은퇴하자 시카고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이모를 돌보고 있는데, 내가 찾아가자 부근에 사는 사촌 동생까지 와서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친구는 자기가 미시건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자그마한 부동산을 샀다면서 나를 데리고 갔다. 차 속에서 “우리 나이에 무슨 부동산을 새로 사느냐?”고 물었더니 깔깔대고 웃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시건 호수가 잘 보이는 가톨릭 공원 묘지였다. 거의 50년 전에 사망한 아버지의 유해를 이장하고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자기가 묻힐 장소를 제법 큰 돈을 주고 마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넓은 미시건 호수를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어느덧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의 북쪽과 남쪽
내 친구가 사는 곳은 시카고의 노스쇼어(North Shore)라로 부르는 지역이다. 시카고 도심에서 미시건 호(湖)를 따라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택지인데, 살기 좋은 백인 중상층 거주지역이다. 명문대학 노스웨스턴도 바로 미시건 호수에 접해 있고, 시카고 도심과는 전철이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카고 도심 남쪽을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흑인 거주지역이고 시카고 대학이 이곳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버드 로스쿨 다니면서 인턴을 한 계기로 시카고와 인연을 맺은 곳도 남쪽 지역인데, 오바마는 거기서 급진적 성향의 목사와 시민운동가를 만나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시카고 남쪽은 민주당의 아성이고, 여기를 기반으로 제시 잭슨 목사 등 흑인 지도자와 흑인 정치인들이 성장했다. 도시가 백인 지역과 흑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문제라고 하지만 그렇게 나누어져 있기에 제시 잭슨과 버락 오마바가 성공하게 된 것이다.
터스콜라
시카고에 오는 길이 있으면 꼭 한번 들러달라고 한 사람이 또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전쟁 알기’(Korean War Educator)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리니타 브라운이다.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160마일 되는데 있는 터스콜라(Tuscola)라는 작은 도시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면서 작은 박물관을 운영하는 그녀는 한국전쟁에 관한 방대한 사이트를 구축했는데, 내가 코리아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계기로 이따금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리니타는 웹사이트 일을 하다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데일 브라운을 만나 재혼해서 지금은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기차를 타고 일리노이 대학이 있는 샴페인에 도착하니까 브라운 부부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서, 내가 찾아 준데 대해 고마워했다. 터스콜라는 전형적인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이다. 인구는 거의 백인이고, 흑인이나 아시아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데, 중심거리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참전한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작은 마을 사람들은 애국심이 강하고 대체로 공화당을 지지하는데, 리니타도 그러했다. 팔순인 리니타의 어머니는 “뉴트 킹리치가 다음에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하면서, “노인들의 의료비용은 비용효과적이지 않다”고 실언한 오바마에 분노했다. 그들에게 오바마는 부유한 금융산업이나 옹호하는 엘리뜨 계층이니, 이런 정서가 바로 ‘티 파티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리니타의 남편은 원래 메인 주 농촌 출신인데, 고등학교 다니다가 무료해서 군대에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어머니를 졸라서 결국은 콴티코 해병기지에서 훈련을 받고 난생 처음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고, 소양강과 화천 등지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했다고 한다. 6개월 만 빨리 입대했더라면 장진호에 갔었을 것이나, 메인 주가 워낙 추워서 자기는 장진호에서 추위 때문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전쟁에서 상처하나 입지 않고 운 좋게 살아남은 그는 미국 곳곳과 일본 기지에서 군 생활을 더하고 제대해서 전기기술자로 일하고 은퇴했는데, 아이들은 잘 키웠으나 부인은 먼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는 TV에서 이따금 보는 한국은 자신이 60년 전에 본 한국과는 너무 다르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한국 전쟁 후 쌀을 안 먹는다고 한다. 전투식량은 전투 중에나 나오고, 보통 때는 쌀밥이 나왔는데, 하도 지겨워서 그 후 쌀을 아예 안 먹게 됐다는 것이다.
스프링필드
브라운 부부 덕분에 나는 터스콜라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구경할 수 있었다. 시카고에서 남서쪽으로 200마일 거리에 있는 스프링필드는 일리노이 주의 수도이다. 일리노이 주 정부와 주 의사당이 있는 스프링필드는 링컨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링컨은 켄터키 시골의 오두막집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따라 인디아나 시골에도 살았고 20살 막 넘은 1830년에 일리노이 시골 마을에 이사한 후 뉴 살렘에 정착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는 뗏목 배를 타고 뉴올린스에 도착해서 흑인 노예시장을 보고 되돌아온 링컨은 독학으로 많은 책을 읽었고, 1832년에는 조그만 상점을 냈다가 파산을 하기도 했다. 연설을 잘했던 덕분에 뉴살렘에서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링컨은 1837년에 스프링필드로 이사해서 개업을 했는데, 1840년에 부유한 집안의 딸인 매리 토드를 만나서 결혼했고 사무실 근처에서 있는 2층 집을 샀다.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로 성공한 그는 흑인 해방을 외치는 연설로 유명해 졌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중진 정치인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초빙되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어 후보가 두 명이 나오게 되었으니 공화당 후보만 되면 당선이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링컨의 대통령 당선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연방 탈퇴로 이어졌고,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링컨 부부는 아들을 네 명 두었으나 장남 만 성장했고 다른 세 명은 모두 빨리 죽어서 링컨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었다. 링컨 부인은 링컨을 빗자루로 때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책이나 보고 우울해 하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링컨 부인은 워싱턴 사교계를 주름 잡던 정치인과 재계 거물의 부인들에 의해 '촌x' 취급을 받아서 퍼스트 레이디 노릇도 편치 않았다. 남편은 전쟁 때문에 우울했고, 부인은 그런 일로 속상한데다 백악관에서도 아이가 병을 앓다가 죽었으니 집안 분위기를 짐작할 만 하다.
오늘날 스프링필드에는 링컨이 살았던 동네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링컨이 살았던 집은 물론이고 이웃집까지 그대로 보전되어 19세가 후반기 모습을 볼 수 있다. 부근에는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링컨 기념관이 있고, 스프링필드 묘지에는 링컨의 묘소가 있다. 스프링필드 묘지에는 2차 대전, 한국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탑이 있다.
* 사진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본 미시건 호와 시카고 다운 타운 고층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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