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칸쇼와 실용대학 (중대신문 2009 12 7)

작성일 : 2009-12-08 18:07조회 : 2,187

<중대신문 2009년 12월 7일자 제1701호>

데칸쇼’와 ‘실용대학’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일제(日帝)하의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선 예과와 본과가 구분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천재라고 부를만한 학생들이나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예과에서 독일어와 관념철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당시 예과를 다녔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데칸쇼’를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쇼펜하워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독일어 원서로 읽었다고 하니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나는 상상할 수 있다. 암울한 식민시대를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관념철학은 하나의 도피처였을 것이다.

내가 1970년대 전반부에 서울대학교를 다녔을 당시에 원로교수님들은 대개 경성제국대학의 예과를 마치고 법학부를 나온 분들이었다. 그러한 교수님들은 ‘데칸쇼’를 했던 당시를 되돌리시면서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리던 사립대학들과 취직준비를 하느냐고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풍조를 개탄하시곤 했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과 특별하게 공부를 잘한 자식들이나 대학을 가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대학이 많다보니 대학 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대학에 대해 기대하는 것도 전과는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데카르트와 칸트나 가르치고 있다간 퇴출되기 십상일 것이다.

이런 세태는 하나의 현실로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류(時流)를 무조건 따르는 것도 단견(短見)이다. 실용주의 교육의 본고장이라는 미국 대학에선 역사, 철학, 문학 같은 인문학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세익스피어’는 인기과목이고, 윤리학 또한 그러하다. 예일대학에선 존 개디스라는 역사학자가 가르치는 ‘냉전사(冷戰史)’가 대단한 인기강좌라고 한다. 우리 대학에선 폐강되는 과목이 미국에선 인기과목인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된 사회에선 인문학적 기초가 탄탄한 학생들만이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대학이 ‘구조조정’을 두고 시끄럽다. 유사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이라면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대로, 경영대학을 확대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문계, 자연계, 이공계를 줄이고 또 공무원 취직을 준비하는 학부를 확장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대부분의 졸업생이 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교육도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논리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란 ‘얄팍한 실용지식’이나 갖춘 사람이 아니다. 1970-80년대만 해도 평범한 대졸자는 직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1990년대의 세계화와 정보화 과정에서 그런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잘못된 시류에 편승해서 학생들에게 ‘얄팍한 실용지식’이나 가르쳐 사회로 내보내면 그런 졸업생들이 과연 얼마나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데칸쇼 대학’은 시대착오이겠지만 ‘실용대학’도 허망한 무지개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c) 중대신문

이전글4대강 '토론'을 하자고 ?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