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미사

작성일 : 2008-07-08 14:04조회 : 2,492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미사

이상돈 (2008년 7월 8일)

지난주에 있었던 3개 교단(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시청 앞 기도회, 미사, 법회에 대해 유독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에 대해 보수진영이 많은 비판을 했다. 그 이유는 분명할 것이다. 개신교 기도회에 참여한 교회는 소규모 교회라서 그다지 비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영향력을 대형 교회인지 소규모 교회인지에 따라 구분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불교는 조계종 자체가 종단 차원에서 참여했으니, 함부로 불교 집회를 비난하다가는 속된 말로 ‘뼈도 못 추리는’ 결과를 초래할까봐 감히 비판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겨우 하는 말이 “정부가 작성한 지도에서 사찰을 빠뜨리는 등 불교계를 홀대해서 스님들이 화가 났다”는 식인데, 이런 말도 불교계를 폄하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최한 미사는 비판하기가 좋았다. 첫째, 그것은 천주교 자체의 행사가 아니었고, 정의구현사제단이란 임의단체가 개최한 것이었다. 둘째, 정의구현사제단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자작극 주장에서 평택 기지 반대 운동에 이르는 등 보수층은 물론이고 보통사람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시청 앞 미사에 대해선 유독 많은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나 자신 노태우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동안 정의구현사제단이 제기한 많은 주장은 용인(容認)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그러하다고 해서, 지난 주 시청 광장에서 열린 미사를 ‘친북 사제들의 반역 선동’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날 미사에는 평택 사건 등에서 앞장섰던 M 신부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천주교는 로마 교황청(바티칸)의 통제 하에 있다는 점에서 개신교나 불교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천주교는 기본적으로 ‘저항’ 보다는 ‘희생과 순교’를 강조하는 종교다. 바티칸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있는 해방신학 교리의 많은 부분,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 가톨릭 교리와 합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그 점을 분명히 했고, 그 계승자인 베네딕토 16세 역시 그러하다.

알다시피 해방신학은 1960년대에 중남미에서 시작되어 1970년대에 들어서서 성행했다. 당시 중남미는 부패한 위정자들로 인한 사회부조리가 극심한 상태였고, 일반 대중은 가톨릭 교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중남미의 많은 신부들은 교회가 현실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신부와 수녀가 살해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중남미에서 해방신학이 성행하던 바로 그 시기가 우리나라의 유신 정부와 5공 정부 시절이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듯이,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산실(産室)이었고, 정의구현사제단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의구현사제단은 특정 이념에 경도(傾倒)되어 점차 대중과 멀어져 갔고, 몇몇 구성원은 교회 내에서도 말이 많을 정도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난 주 시청광장 미사가 비록 천주교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지 않은 임의적 행사라고 해서 그런 이유만으로 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청 광장 앞 종교행사가 종교인의 본분을 벗어난, ‘정치 활동’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자유다. 그렇다면 개신교, 불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종교 행사를 똑같이 비난해야 마땅하다.

만일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천주교의 공식기구가 아니라고 해서 대다수의 천주교인들이 ‘촛불’에 비판적이고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황을 대단히 잘못 보는 것이다. 많은 천주교인들은 현 정권과 정의구현사제단 모두를 좋아하지 않거나, ‘촛불’의 취지에는 찬동하지만 광장 미사는 교구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정의구현사제단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정의채 몬시뇰과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 신부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사실상 하야(下野)를 권하는, 대단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편, 정의구현사제단이 1970년대처럼 대중에 가까이 다가서기를 원한다면, 물의를 빚었던 ‘극단적 인물들’을 배제하는 등 몇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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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제(司祭)의 현실 참여에 대해서는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생애를 그린 영화 ‘로메로’를 보기를 권한다. 1917년에 태어난 로메로 신부는 1977년 2월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됐다. 엘살바도르의 가톨릭 신부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그의 대주교 임명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와 독서, 그리고 교회 안의 일에 힘을 쏟았던 보수적 사제였기 때문이었다. 젊은 신부들과 신자들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권과 싸울 수 있는 대주교를 원했고, 로메로 자신도 자기가 그런 시기에 대주교에 임명된 데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해 3월, 그의 친구이지만 그와 달리 민중운동에 몰입해 있던 제수이트 교단의 루티요 그랑데 신부가 처참하게 암살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로메로는 비록 자기와 노선(路線)은 달랐지만 자신의 친구인 그랑데 신부의 시신 앞에 서서 그의 암살 배후를 밝힐 것을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로메로는 또한 카터 대통령에 친서를 보내 엘살바도르 정권을 지지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로메로 대주교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정권의 비호를 받던 우익 민병대는 1979년까지 다섯 명의 신부를 암살했다. 살해된 수녀와 신자의 숫자는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1980년 3월 4일, 로메로 대주교는 미사 집전 중 암살자의 총을 맏고 사망했다. 그의 장례 미사 중에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날아와서 수십 명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기민당 후보 호세 두아테가 우익 민병대를 이끌었던 로베르토 도비존을 2차 투표 끝에 이기고 당선되는 토대가 되었다. 1984년 선거에서 도비존이 당선됐더라면 중남미에 민주적인 우파 정권을 정착시키려는 레이건 미 대통령의 구상은 무산되고, 엘살바도르와 주변국가는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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