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대한항공 007편 사건

작성일 : 2008-07-14 12:17조회 : 2,513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대한항공 007편 피격 사건

이상돈 (2008년 7월 14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1983년 9월 1일에 일어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긴장이 감도는 군사적 대치상황이나 실전 상황에선 민간인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크게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대한항공 007편 사건은 비록 그 항공기가 항법상 실수로 소련의 영공을 잠시 침범했다하더라도, 소련 공군기는 그것이 민간항공기임을 뻔히 알고서도 격추시켜서 승객 240명과 승무원 29명을 모두 죽게 했다는 점에서, 소련 공산체제의 비인간성을 잘 보여 주었다.

이번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도 그 점에선 꼭 같다. 비록 사망한 박왕자씨가 허술한 펜스를 모르고 지나쳐서 북으로 약간 넘어 갔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군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그것도 여성을 조준 사격으로 사살한 것이니 기가 막힐 일이다.

1983년 9월 5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이 사건을 ‘대한항공 대학살’이라고 지칭했다. 레이건은 ‘휴머니즘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이고, ‘야만적이며 비인간적인 잔학한 행위’이라고 소련을 맹비난했다. 유엔 총회에선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이던 진 커크패트릭은 미국 정보기관이 획득한 소련 전투기 조종사와 소련 관제탑이 교신 내용을 폭로하면서 소련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소련 조종사는 상부의 지시이기 때문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08년 7월 11일,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관광객 피살을 보고 받고도 태연하게 국회에 가서 “남북간 전면적 대화를 하자”고 했고, 영문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은 박수를 쳤다. 그 날 오후 이명박 대통령은 특보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관광객이 피격 사망한데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비서실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7월 1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 생겼다면서, 비로소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이 ‘남측의 책임’이라고 생떼를 썼다.

같은 대통령이라도 상황인식 수준이 이렇게 다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이른바 보수진영은 이명박 정권이 대북 문제에 대해 과거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그런 기대와는 달리 사실상 ‘햇볕정책의 계승’을 국회에서 천명하는 바로 그 날,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타이밍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도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북한이 의도하는 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11월 대한항공 858편 폭파는 한 달 후 대선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대한항공 007편이나 858편 사건이 발생했던 때와 달리, 현재 우리나라는 ‘햇볕정책’에 발이 묶여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인데, 이명박 정부는 아마추어 같은 미숙한 대응으로 일관했으니 정말 한심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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