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0대 과학도 님의 '한국 보수의 아킬레스 건'(게시판에서 옮김)

작성일 : 2008-06-23 08:28조회 : 2,179

한 밤중에 과학을 전공하신 40대 분께서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판에 올려 주셨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이 곳에 전재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6월23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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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의 아킬레스건: 친일 경력

과학도 2008-06-23

저는 80년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 세대입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에서 이 상돈 교수님의 글을 접하고 그래도 '보수'쪽에도 제대로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신 분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밤늦게 여기까지 와서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이공계였고 데모, 서클 활동 등에도 거의 참가하지 않고 졸업을 하였으나 그래도 입학 후 주변 분위기상 당시 '의식화 서적'이라고 한 책은 많이 보았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광장" "철학 에세이" 등.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투표를 할 때 저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지어준 책이며 가장 감명깊었던 책은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었습니다. 이광수, 모윤숙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수많은 문인들이 남긴 그 어처구니 없는 글들에 할 말을 잃었고, 문인들뿐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하여 해방 이후 한국을 지배하던 '보수우파'들이 대부분 같은 친일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대한민국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일 문제를 꺼내면 주변의 보수라는 분들이 말씀하시길 그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한국 보수우파의 대변이라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이 그동안 친일청산법 발의에 얼마나 반대했는지 보면 이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보수'가 얼마나 어정쩡한 위치에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좌파와 우파의 정의를 확실히 내릴 실력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는 조국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진보좌파는 국가와 민족을 크게 따지지 않는 국제 공조를 강조하지만, 보수우파는 곧 죽어도 국가를 강조하고 우리처럼 국가와 민족이 일치하는 경우는 민족까지 강조하는 입장이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의 이른바 보수우파는 그 뿌리가 친일과 연관되어 있기에 친일 청산 문제만 나오면 수세에 몰리고, 오히려 민노당 같은 좌파가 더 민족 문제에서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이비 '보수우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콤플렉스로 자기들이 '대한민국'의 수호자인 척 국가주의를 내세워 보지만, 친일의 뿌리가 상존하고 있는 터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단일민족 국가에서 우파가 민족주의에 대해 주도권을 잃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삼손이 머리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삼손이 아니고 더 이상 보수우파라고 할 건덕지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원초적이고 감성적이지만 근본적이고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하여, 스스로 보수우파라고 생각하는 저는 자칭 한국의 보수우파들을 인정할 수도 없었고 지지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한국에서 제가 생각하는 보수우파와 가장 가까운 세력은 지난 노무현 정권이었습니다. 그 어정쩡한 '탄돌이'들이 우왕좌왕하면서도 어쨌든 친일인명사전 편찬, 친일파 재산 환수법 등을 통해 해방 후 60년 동안 말 많던 친일 문제 정리의 기반을 확실히 쌓은 것은 통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이제는 누가 친일파니, 그 근거가 무어니 그런 문제로 다툴 필요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친일파의 일반적 범주, 그 근거 자료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기 때문이죠. 민족주의 관점에서 누가 뭐래도 절대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물론 완벽함은 세상에 없겠으나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땅의 자칭 '보수우파'들이 아예 시도 자체를 안 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건전 보수우파가 한국에 자리잡으려면 민족주의에 대한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데, 현재의 자칭 '보수우파'들은 여기에 대해 엄청난 모순과 하자를 안고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개선에 대한 희망의 싹을 근본적으로 잘라버렸고요.

이제는 좌파도 진보신당이 민노당에서 분당했듯이 경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파도 표면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선진한국당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두 자칭 '보수우파'는 민족 문제에 대해 떳떳하지 못해 결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동북아는 점점 민족주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동북아에서 가장 민족주의에 취약한 집단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아니요, 남한의 좌파도 아니요, 일본의 극우세력도 아닙니다. 바로 한국의 자칭 '보수우파'들입니다. 촛불 집회에 나가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하면서 역성을 내는 분들, 촛불 집회에 배후가 있다고 캐 내려는 분들, 자기와 의견이 안 맞으면 빨갱이 좌파로 몰아세우는 분들이 이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스스로가 우파라면 언제까지나 국가와 민족을 분리할 것입니까? 언제까지나 친일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은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그렇습니다만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보수우파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자산입니다. 그 자산을 가지기 위한 첫발은 친일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우파'의 명함조차 달 수 없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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