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반역' 세계일보 5월24일자 책 소개 기사

작성일 : 2008-05-27 13:47조회 : 1,912

세계일보가 엔 코울터의 '반역'을 크게 소개했습니다. 편의를 위해 전재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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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진보주의자들은 반역자”

반역/ 앤 코울터 지음/이상돈·최일성 옮김/경덕출판사/1만5000원

혁명가 /에릭 홉스봄 지음/김정한·안중철 옮김/길/1만8000원

지난 4월15일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망명 허가를 받은 한국인이 있다. 바로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대공정책, 해외조사실, 원장 비서실, 전략실에 근무하다 2003년 12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김기삼(44)씨다. 국정원의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 프로젝트를 폭로한 바 있는 그는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로비 공작과 함께 국정원장까지 역임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간첩이라는 주장을 편다. 김 전 대통령과 임 전 장관은 당사자인 김씨가 아닌 김씨의 주장을 보도한 특정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억대 소송을 제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진실은 뭘까. 김씨는 입증할 증거가 있다며 귀국해 공개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전 대통령 측은 허무맹랑한 내용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법치가 바로 선 나라라면 진실이 백일하에 밝혀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마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묻힐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1956년 부인과 함께 독일 비밀경찰 슈타지의 지령에 따라 동독을 위장 탈출한 기욤은 서독 사민당에 입당해 74년 독일 연방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의 개인 보좌관 자리를 꿰찬다. 서독 헌법재판소의 끈질긴 추적으로 체포될 때까지 기욤은 18년 동안 고정간첩으로 맹활약했다. 이 사건으로 동방정책을 펴던 브란트 총리는 결국 사임하고 정계를 떠난다.

변호사이자 여성 정치평론가인 앤 코울터가 쓴 ‘반역’은 흥미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냉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는 진보주의자들의 반역행위’라는 도발적 부제를 단 책은 미국의 진보세력을 아예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에 의하면 진보파 정치인, 언론인, 학자는 온갖 교활한 말과 지혜를 동원해서 적국을 이롭게 하는 무리일 뿐이다.

코울터는 ‘매카시즘’이란 용어도 진보파들이 자신들의 반역행위를 뒤덮기 위해 날조한 신화라고 지적한다. 진보파 논객들은 50년대 초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시작된 미국 정부 내 공산당원 논쟁을 ‘매카시즘’이라고 불렀고, 당시 간첩 혐의를 받았던 국무부 고위관료 앨저 히스,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넘긴 혐의로 사형당한 로젠버그 부부 등 많은 사람이 매카시즘에 의해 희생됐다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주장했다. 그러나 95년에 미국 정부가 공개한 냉전시대의 1급 비밀문서 ‘베노나 프로젝트’는 히스와 로젠버그 부부는 물론이고 루스벨트 행정부의 많은 고위관리가 소련의 간첩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당시 미 정보당국은 극비의 ‘베노나 작전’을 통해 소련의 암호를 해독, 이들의 간첩활동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후버 FBI 국장은 이를 공개할 경우 소련에 대한 도청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해 비밀로 부쳤다. 냉전이 끝난 후 공개된 이 극비문서에 의하면 매카시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었고, 그를 비판한 진보파는 대부분 간첩과 그 동조자들이었다.

코울터는 또한 “독재자 김일성을 만나고 온 카터는 그가 지성적이고 기독교에 대해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 수준에 미달하는 사람이라고 힐난하는가 하면 제네바 핵협정이 체결된 직후부터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했음이 드러난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자 민주당 논객들은 부시가 외교를 모른다고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음을 상기시켰다.

그의 결론은 명쾌하다. 진보파는 항상 미국을 파괴하려는 자들을 대변해 온 반역자 집단이라는 것. 내용은 차치하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의 직설적 어법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특이한 건, 뉴욕 타임스를 반역 언론사라고 맹비난한 코울터의 전작인 ‘중상모략’과 이 책 ‘반역’이 모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집계 1위 자리를 각각 7주, 13주나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코울터가 보수 논객인 데 반해 ‘혁명가―역사의 전복자들’을 집필한 에릭 홉스봄(91)은 자타가 공인하는 좌파 역사학자이다.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집권을 경험하고, 쿠바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에게 통역해 주었으며, 소련에서 스탈린의 시체를 직접 목격한 에릭 홉스봄은 ‘참여 관찰자’로서 역사를 전복한 혁명가들의 실체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제1부 ‘공산주의자’ 편에서 에릭 홉스봄은 “혁명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혁명정당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파고든다. 그는 좌파답게 순수한 이념정당이 아니라 모든 좌파를 통합하는 ‘인민전선’에서 해법을 찾고 있지만, 수많은 지식인이 전 세계적인 야만주의의 도래를 경고하는 현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

홉스봄은 또한 제3부 ‘마르크스주의’편에서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를 거론하면서 “철학자는 분석가일 뿐만 아니라 열광하는 자이기도 하다. 옳은 방식으로 옳은 일을 위해 인간에게 희망을 깨닫게 하는 것, 희망이 함의하는 바를 인식시키는 것이 그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결론적으로 희망을 부인하는 것, 혹은 오히려 희망을 가리거나 그에 무관심한 것을 비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역과 혁명, 과연 그 차이는 얼마나 될까.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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