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배의 프레임'에 빠진 이명박 정부

작성일 : 2008-06-06 10:42조회 : 2,150

‘敗北의 프레임’에 빠진 이명박 정부

李相敦 (중앙대 법대 교수)

1. 이명박 정권의 태생적 한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사상 최대 표차로 차점자를 이겼지만, 전체 유권자의 30%의 지지를 얻는데 그쳐 지지율로는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도덕성 결핍’이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내 경선 때부터 위장이전 등 이런저런 말이 말았고, 대통령 본선 과정에선 자식들의 위장취업 문제가 불거져 망신을 당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갈 무렵엔 ‘BBK 동영상’이란 창피스런 사건이 터졌다. 때문에 당선 후에는 특검(特檢)의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부정적 이미지는 유권자 의식 한구석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과거의 어느 대통령 보다 겸손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 시절과 내각과 청와대 인사부터 보여준 태도는 그런 겸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꼬인 것이다.

2. ‘오만’과 ‘경박’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야기된 사태의 원인을 ‘소통(疏通)’ 부족으로 돌렸다. 하지만 문제는 ‘소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만’과 ‘경박’에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에서 이재오, 이방호, 박형준 등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을 낙선시킴으로서 충분한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런 조기경보를 무시했다. 이 대통령 자신의 가벼운 말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앞두고 캠프 데이비드 만찬 메뉴를 ‘몬태나산(産) 32개월짜리 쇠고기 스테이크’로 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 언론은 한국 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전면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32개월짜리’니 ‘몬태나산’이니 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소의 월령(月齡)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있을뿐더러, 몬태나 주(州)는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구하는 맥스 보커스 미 상원 재정위원장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 전날 열린 미국 상공회의소 초청 만찬에선 몬태나 쇠고기 스테이크가 메뉴로 나왔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그것을 보고 미국이 쇠고기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가를 새삼 깨달았다고 우리 기자에게 말했다. 자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정신을 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경솔한 말을 했다. 운하 건설에 앞서 하천정비사업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강을 하수구인 양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강을 ‘생명의 젖줄’로 생각하지 ‘하수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을 소중한 식수원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명제(命題)만큼 확고한 국민적 합의를 얻은 것도 없다. ‘하수구’ 발언은 하천보전을 위해 애쓴 전국민과 과거 정부를 한꺼번에 모욕한 것이다.

3. 쇠고기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한 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는 앞으로 벌어질 대운하 반대운동에 비한다면 전주곡(前奏曲)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대표공약인 대운하를 두고 말을 자주 바꿨다. 한나라당 경선 때 운하 공약은 박근혜 홍준표 등 다른 후보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 거센 비판을 의식해서 인지, 대선에선 운하 공약을 슬그머니 후퇴시켰다.

상황이 그렇다면 인수위원회 시절에 운하 공약을 폐기해서 매듭을 지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류우익, 곽승준 등 운하론자들을 청와대에 대거 발탁했다. 국토해양부장관과 환경부장관도 모두 ‘운하 나팔수’를 기용했다. “운하를 만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지고 태어난 정권”인 셈이다. 운하가 우리나라 여건에 합당하느냐 어떠냐 하는 본질 문제를 떠나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운하를 건설해야만 하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4. 진보 좌파의 ‘프레임’에 빠진 이명박 정부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가 정상(正常)을 이탈한 국정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기대는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과 측근들은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 아예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과 측근들은 진보 좌파세력이 우리 사회의 하부 곳곳에 진지(陣地)를 탄탄하게 구축해 놓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실용’을 내 걸면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줄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광우병 같은 보건문제, 운하건설 같은 환경문제는 진보세력이 좋아하는 아젠다이다. 안보와 경제 문제에 강한 보수진영은 이런 사안에 대해선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지금 진보 좌파 세력은 그들이 원하는 이런 ‘프레임’에 보수를 끌고 들어와서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 ‘프레임’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데 경박한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풍덩 빠져 버린 것이다.

5. 무능한 보수

보수단체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조찬 모임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어가면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과시하는 것이 보수진영의 현주소이다. 스테이크는 광우병과는 관계없는 부위이다. 우리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뼈가 붙어 있는 고기, 내장 등 부속고기의 안전성이다. 또 고기를 먹었다고 금방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 광우병으로 소들이 병들어 죽자 당시 농업장관이 어린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어 가면서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사람들이 광우병으로 죽어갔다. 그래도 영국 농업장관은 광우병 위험이 높은 싸구려 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었다. 우리나라의 ‘보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아침에 고급 스테이크를 먹고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러고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지 알 수 없다.

지난 10년간 좌파와 싸웠던 우파 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토사구팽당한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 10년 세월을 아스팔트에서 싸웠지만, 몬태나 스테이크 먹고 미국산 곱창을 들여오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한 것이다.

6. 쓰나미가 닥쳐 올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우군(友軍)도 없는 상황에서 좌파들이 좋아하는 ‘전장(戰場)’에 내동댕이쳐진 형상이다. ‘광우병 공포’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장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몬태나 스테이크’식 접근이 국민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쇠고기 파문은 좌파에게 아주 좋은 재료를 제공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호재(好材)를 만들어 좌파에 갖다 바친 것이다. 이 대통령 특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실용’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함’, 그리고 원초적인 ‘도덕성’ 문제가 함께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앞으로 닥쳐 올 ‘대운하 반대 운동’이다. 광우병 사태는 좌파 세력이 위험을 과장했고 선동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운하 반대운동은 그대로 정권 퇴진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오는 것이다. 만일에 그나마 남아 있는 보수세력이 운하반대 운동도 좌파의 선동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나라의 보수는 이명박 정권과 함께 휩쓸려 나가고 말 것이다. 운명의 선택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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