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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 밀러, 카잔

작성일 : 2024-01-07 00:55조회 : 1,396

먼로, 밀러, 카잔

1957년 새해 들어서 마릴린 먼로와 아서 밀러 부부는 런던에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먼로는 뉴욕 맨해튼 이스트 57번가에 위치한 큰 아파트를 빌렸다. 먼로의 옷가지와 피아노, 그리고 책이 많은 공간을 차지했으나 한쪽에는 밀러가 사용할 서재를 마련했다. 밀러와 먼로는 이 아파트와 코네티컷에 있는 밀러의 전원주택을 왕래하며 살았다. 57번가 아파트를 나서면 먼로와 밀러의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가들이 기다리곤 했다. 밀러는 조용한 전원주택을 더 좋아했다. 먼로는 요리사와 하녀를 고용했지만 자신이 가정을 이끌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불면증과 이로 인한 수면제 과용으로 늦게 일어나서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해 여름 부부는 롱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냈다. 완전한 결혼은 아이가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먼로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해서 임신을 했으나 결국 유산을 하고 말았다. 잦은 낙태로 인해 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먼로의 생활이 불규칙하자 밀러는 코네티컷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해 말 부부는 밀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300 에이커와 오래된 농가 주택(farm house)을 구입했다. 먼로가 비용 대부분을 지불한 주택을 고치고 전원을 가꾸느냐고 부부는 공통 관심사를 갖게 됐다. 먼로는 개와 앵무새를 기르는 등 동물에 애정을 쏟았다.

1958년 들어서 먼로는 <Some Like It Hot> 촬영을 위해 LA로 왔다. 먼로는 토니 커티스 및 잭 레먼과 함께 출연했는데, 빌리 와일더 감독은 먼로의 지각과 예측 불가능한 행동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먼로는 촬영 도중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해 연말 촬영이 끝나고 먼로는 뉴욕으로 돌아왔으나 또 다시 병원에서 유산을 했다. 밀러는 먼로의 이런 상황을 제3자가 보듯이 지켜보았다. 두 사람 사이는 이미 멀어진 것이다. 1959년 들어서 먼로와 밀러를 만난 지인들은 부부가 남처럼 지내고 있다고 느꼈다.

1959년 9월에 먼로는 다시 뉴스의 주목을 받았다. 소련 수상 니키타 흐르시쵸프가 할리우드를 방문하자 먼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과 함께 환영 모임에 참석했다. 아서 밀러는 초청을 받았으나 자신이 하원 비미(非美)활동위원회(HUAC)에 의해 공산주의 동조자 몰려있음을 고려해서 가지 않았다. 먼로는 <Bus Stop> 촬영 중이던 1956년 6월 할리우드를 방문 중이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를 연회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수카르노는 회고록에서 먼로와의 밀회를 암시한 바 있고, 먼로의 친구인 로버트 슬래처도 먼로가 수카르노와의 밀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먼로가 죽은 후에 밝혔다. 1956년 6월이면 먼로는 밀러와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다. 수카르노는 미국에 반대하는 비(非)동맹 외교를 주도했기 때문에 FBI와 CIA는 수카르노를 만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먼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FBI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아서 밀러는 먼로를 둘러싼 소문이 과장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과장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밀러는 <A Street Car Named Desire>(1951), <On the Waterfront>(1954) 등 문제작을 감독해서 유명한 일리아 카잔(Elia Kazan 1909~2003)과 가까웠다. 카잔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에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1952년 4월, 하원 비미활동위원회(HUAC)는 일리아 카잔을 소환했다. 공산당 활동을 같이 한 영화연극인을 대라는 의원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한 카잔은 클리포드 오데츠, 아트 스미스 등 8명이 공산당원이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에는 리 스트라스버그의 부인인 폴라도 포함돼 있었다. 카잔이 공산당원이라고 지적한 이들은 그 후 연기 생활을 중단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카잔과 가까이 지냈던 아서 밀러는 이 사건 후 카잔과 절교(絶交)를 했고, 카잔과 가까웠던 좌파 성향의 문인과 연기자들은 카잔을 배신자(traitor)라고 불렀다. 밀러는 1956년에 하원 청문회에 소환됐을 때 동료 이름을 대라는 의원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기소를 당했다. 밀러는 그 경험을 토대로 하원 청문회를 마녀 재판에 비유하는 <The Crucible>을 발표했다. 하지만 밀러가 카잔에 대해 몰랐던 일이 있었다. 1950~51년 동안 먼로와 카잔은 연인 관계였다. 밀러가 몰랐던 일이 또 있었다. 먼로는 밀러와 결혼하기 직전까지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1924~2004)와 연인관계였다,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리 스트라스버그, 말론 브란도 등은 모두 한때 공산주의에 경도됐던 ‘좌파’ 문화예술인이었다. 먼로가 이들과 가까이 지낸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먼로는 20대 젊은 시절에는 배역을 얻기 위해 할리우도 영화사를 움직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일단 자신이 배우로서의 자리를 확립한 후에 먼로는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등을 만나고 소련 수상과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임에 기꺼이 참석했다. 밀러가 하원 청문회에서 진술할 때 회의장에 출석해서 남편에게 힘을 넣어 주었다. 의회가 밀러를 의회모독죄로 기소해서 재판을 받을 때 먼로는 밀러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했다.

하원 비미활동위원회(HUAC)는 두 명의 공화당 대통령을 배출했다. 하원의원 시절에 리차드 닉슨은 HUAC에서 맹활약해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 상원의원이 되고 부통령이 됐다. 영화배우 조합 대표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HUAC에 출선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는 공산주의 동조자가 있다고 증언했다. 먼로는 주위 사람에게 자기는 닉슨이 싫다고 말하곤 했다. 따라서 먼로가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리 스트라스버그 부부 등과 가까워진 것은 단순히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어려서 힘들게 자라고 배우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 경영자들한테 몸을 던져야 했던 먼로였기에 그런 성향을 띄지 않았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 사진 (1) : 뉴욕 아파트와 코네티컷 정원주택에서 먼로와 밀러.
- 사진 (2) : 할리우드를 방문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난 먼로, 가운데는 조슈아 로건 감독,
- 사진 (3) : 아서 밀러와 엘리아 카잔이 오랜 만에 만난 1963년 사진. 이때는 먼로가 죽고 난 후이다. 한때 먼로의 연인이었던 남자와 한때 먼로의 남편이었던 남자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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