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63년 압 박 전투

작성일 : 2023-03-12 21:32조회 : 1,176

1963년 압 박 전투

1960년대 초 로이터 통신 사이공 지국에서 일했던 팜 쑤안 안(‘안’)의 도움을 받은 기자는 데이비드 핼버스탬, 닐 쉬핸, 피터 아넷 등으로 당시 20대였으나 그 후 모두 ‘거물’이 된다. 이들은 안이 북베트남의 간첩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여기서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혹시 안이 이 기자들을 상대로 역정보(disinformation) 공작을 해서 전쟁에 대해 편견을 갖도록 한 것은 아닌가? 안 본인은 자기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자기들은 취재하는데 안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안 때문에 미군 희생자가 늘어나는 등 미국이 전쟁에서 실패하는데 안이 기여한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안은 이 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그가 2006년 9월에 사망하고 난 후에 답이 나왔다. 베트남 당국은 안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그에게 수여한 훈장 16개를 기념관에 전시했다. 놀랍게도 훈장에는 언제 어떠한 이유로 훈장을 수여했음을 명시해 놓았는데, 그 중에는 중요한 전투들이 있었다. 1963년 1월 2일에 있었던 압박 전투도 그중 하나였다.

압박(Ap Bac) 전투는 사이공에서 40마일 떨어진 압박이란 곳에서 벌여진 전투였다. 그 지역은 남베트남군 7사단 관할이었다. 7사단은 디엠 대통령의 측근이 지휘하던 비교적 전투력을 갖춘 부대로, 미군 고문관은 존 폴 밴(John Paul Vann 1924~1972) 중령이었다. 1962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사이공의 미군 정보국은 압박에 베트콩 통신기지가 있으며 베트콩 약 120명이 그 주변에 있다고 파악했다. 밴 중령은 베트콩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베트남 보병 병력을 헬기로 투입하고 장갑차(APC) 대대를 다른 방향에서 투입해서 베트콩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립했다.

1월 2일 새벽, 미군 헬기 들이 압박의 개활지(開豁地)에 착륙해서 남베트남군 보병을 풀어 놓자 매복 중이던 베트콩의 공격에 노출됐다. 착륙을 시도하던 헬기가 피격되고 남베트남 병사들이 많이 희생됐다. 겁에 질린 남베트남 병사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숲에 숨어 있는 베트콩을 향해 UH-1H 헬기가 공중에서 기관총 사격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정찰기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밴 중령은 장갑차 부대에게 빨리 진격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들은 서서히 움직이다가 베트콩의 저격으로 기관총 사수들이 피격되는 등 더 큰 피해를 보았다.

베트콩의 사격에 노출된 남베트남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밴 중령은 공수부대 투입을 요청했으나 남베트남 사령부는 미적거리더니 엉뚱한 곳에 낙하시켜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후 늦게 베트콩들은 정글로 사라져 버렸고, 남베트남 군은 80여 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겁을 먹고 움직이지 않던 남베트남 병사들을 독려하던 케네스 굿 대위가 총격에 쓰러졌다. 옆에 있던 남베트남 장교는 엎드려 숨어 있으면서 굿 대위를 두 시간 동안이나 방치해서 그는 사망하고 말았다. 미군 헬기 조종사 2명도 전사했고, 헬기 15대 중 14대가 피격됐고 5대는 완전히 파괴됐다. 베트콩은 18명이 전사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전투는 베트콩이 거둔 의미 있는 승리였다.

그 전까지 베트콩은 미군 헬기가 나타나면 흩어져서 퇴각했는데, 압박에선 숲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헬기가 착륙하는 취약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했다. 베트콩이 미리 알고 300명 병력이 대비했던 것으로 생각됐다. 남베트남 군은 적극적으로 교전하기를 꺼리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베트남군 사령부가 전투를 회피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미군 고문단은 나중에 알았다. 디엠 대통령이 적과 교전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디엠은 군대를 대통령인 자기를 지키는 용도로 생각했다.

그 날 저녁 로이터 통신의 닉 터너 기자와 UPI의 닐 쉬핸 기자는 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 늦게 차를 몰고 베트남군 7사단 본부에 도착했다. 사단 본부는 부상당한 장병들로 난리가 나 있었다. 자신의 부하인 굿 대위까지 전사해서 화가 치민 밴 중령은 미숙하고 명령을 해도 듣지 않았던 남베트남군의 실상을 두 기자에게 그대로 털어 놓았다. 두 기자는 사이공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새벽 다시 7사단 본부에 도착했다. 밴 중령이 병력수송용 H-21 헬기 두 대가 현지에 가서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해 올 것이라고 하자 두 기자는 헬기에 올라탔다. 현장에는 격추된 헬기 잔해와 선혈이 낭자한 전사자들의 시신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남베트남 군인들은 전사한 동료들의 시신을 움직이기도 싫어했다. 미 고문단 스캔런 대위가 소리를 질러서 이들을 독려했다. 두 기자는 전사한 미군 헬기 조종사 두 명의 시신을 직접 들어서 헬기에 실었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핼버스탬과 AP의 피터 아넷은 조금 늦게 사단 본부에 도착해서 밴 중령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헬기 편으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기자들은 미군 지원단 사령관인 폴 호킨스(Paul Hawkins 1904~1984) 대장에게 질문을 했다. 호킨스 대장은 “베트콩들이 물러났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답에 화가 치민 기자들은 헬기 5대가 추락하고 미군 3명이 전사하고 남베트남 병사가 80명이나 죽었는데도 사령관이 황당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밴 중령의 직설적인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 UPI, AP, 로이터, 그리고 뉴욕타임스 특파원이 쓴 기사가 미국 전역 신문에 크게 실리자 워싱턴은 발칵 뒤집어 졌다.

베를린 위기와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심각한 안보위기를 간신히 넘긴 케네디 행정부는 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베트남이 큰 문제임을 알게 됐다. 베트콩은 압박 전투 승리를 크게 자랑했다. 특히 헬기를 격추시켰다는 사실에 이들은 고무됐다. 통일 후 베트남 정부는 압박에 전쟁 기념관을 세워서 그날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압박 전투는 닐 쉬핸 기자가 펴낸 존 폴 밴의 전기인 <A Bright Shining Lie>(1988)에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쉬핸은 그날 로이터의 닉 터너 기자와 함께 7사단 본부를 가서 밴 중령을 만났다고만 썼다. 훗날 팜 쑤안 안이 북베트남의 간첩이었음이 드러나자 닉 터너는 그날 밤에 쉬핸 기자와 함께 7사단 본부에 가게 된 계기는 안이 미군 헬기가 격추되는 등 큰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 말을 듣고 갔다고 밝혔다. 2006년에 안이 사망하자 베트남 정부는 안에게 수여된 훈장을 공개했는데, 거기에는 압박 전투 공적을 기리는 훈장이 있었다. 안은 남베트남 군대의 작전 계획을 베트콩에게 미리 알려 주어 베트콩이 승리하도록 했으며, 미국 기자들이 베트콩이 승리한 현장을 즉시 가보게 함으로써 미국 언론에 크게 나오게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밴 중령은 그 해 3월 귀국해서 전역을 했다. 하지만 베트남을 못 잊어한 그는 AID(해외원조처) 요원으로 사이공에 돌아오며 민간인 신분으로 남베트남 군 고문관을 지낸다. 1972년 북베트남 군의 춘계 대공세 때 중부지역을 관할하는 2군단 고문관이던 존 폴 밴은 꼰툼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서 북베트남 군을 패퇴시켰으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닉슨 대통령은 그에게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자유 메달과 육군 복무 메달을 추서했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대통령이 된 존슨은 폴 호킨스 대장을 예편시키고 후임으로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William Westmoreland 1914~2005) 대장을 임명했다.

닐 쉬핸(1936~2021)은 뉴욕타임스로 옮겨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쉬핸은 뉴욕타임스를 그만 두고 존 폴 밴의 생애에 관한 책 <A Bright Shining Lie>를 1988년에 펴내서 퓰리처상(償)을 받았다. 책 제목은 “베트남의 미군 사령부는 항상 밝고 빛나는 거짓말로 우리가 전쟁에 이기고 있다고 말 한다”고 한 밴의 발언에서 따 온 것이다. 데이비드 핼버스탬(1934~2007)은 베트남 전쟁 보도로 1964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기획한 케네디/존슨 행정부의 수재들을 비판한 책을 1965년과 1969년에 펴냈다, 그가 쓴 마지막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The Coldest Winter>이다.

- 사진 (1) 압박에서 격추된 미군 헬기 잔해.
- 사진 (2) 존 폴 밴 중령(왼쪽) 1962~63년.
- 사진 (3) 데이비드 핼버스탬(왼쪽)과 닐 쉬핸(오른쪽) 1962~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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