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벌리 디프

작성일 : 2023-03-16 10:49조회 : 1,303

베벌리 디프

베트남 전쟁은 많은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했던 전쟁이기도 했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서방 기자 60명이 취재 도중 사망했다. 한명을 제외하곤 1965년 이후 사망했으며, 그 중 22명이 미국인이며 그 외에는 일본, 프랑스 호주 등에서 온 기자들이었다. 사망 원인은 헬기 등 항공기 피격, 총격 및 부비트랩/지뢰 폭발, 피납 후 처형 또는 실종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여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전선(戰線)을 취재한 전쟁이기도 하다. 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최전선을 누볐다. 프랑스의 캐드린 르로이 기자는 미군 공수부대와 함께 수송기에서 점프를 해서 착지한 후 공수부대와 함께 다니면서 취재를 했다. 사망한 기자 60명 중 두 명이 미국 여기자였다. 두 사람은 지뢰폭발과 헬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사이공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면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기자는 베벌리 디프(Beverly Deepe Keever 1935~)라는 미국 여기자이다. 그녀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무려 7년 동안 사이공에 머물렀다. 디프는 1935년 네브라스카서 태어났다. 네브라스카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정치여론조사 기관에서 일을 했다. 기자가 꿈이었던 그녀는 1년 동안 시간을 내서 아시아를 구경하고자 했다. 그녀는 AP와 연락을 해서 여행 중 기사를 쓰게 되면 보내기로 하고 타이프라이터를 여행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1961년 4월 도쿄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5월에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구경을 하고 US AID 자금으로 건설된 충주 비료공장을 방문했다. 그러던 중 5.16이 발생하자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쿠데타가 발생한 서울의 모습을 기사로 작성해서 AP 본사에 보냈다. AP는 그녀가 쓴 서울발 기사를 내보냈다. 디프는 장면(張勉) 정부가 약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쿠데타를 지지하고 있다고 썼다.

그 다음 디프는 선편으로 상하이에 도착했으나 미국인은 상하이에 상륙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선 심각한 아편 문제를 보았다. 보르네오를 거쳐 홍콩에 도착했고, 1962년 2월 사이공에 도착했다. 디프는 사이공에 2주일간 머물고 미얀마, 파키스탄, 인도 등을 여행할 예정이었다. 그 때 베트남에선 케네디 행정부가 보낸 특수부대가 사실상 전쟁을 하고 있었고 사이공 정국은 매우 혼란했다. 디프는 사이공의 AP 지국을 찾아가서 프리랜서 기자로 기사를 쓰겠다고 하고 시내에 작은 거처를 마련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이공 생활이 7년 동안 지속될 줄은 본인도 그때는 몰랐다.

당시 사이공에는 디프를 포함해서 서방 기자가 8명 있었다. 디프는 유일한 여성이었고 정식 특파원이 아니어서 미군 당국은 그녀를 브리핑에 부르지도 않았다. 프리랜서인 그녀는 단독기사를 써서 언론사에 팔아야 했다. 그녀는 베트남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베트남 사정도 잘 몰랐다. 그 때 만난 사람이 팜 쑤안 안(1927~2016 : ‘안')이었다. 디프를 처음 만났을 때 안은 로이터 통신의 현지 통신원이었다. 영국 회사인 로이터는 베트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안은 27세 젊은 미국 여성 베벌리 디프를 적극적으로 돕게 됐다. 안이 디프를 좋아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안은 미국 유학 중에 만난 미국 여성들이 친절한데 대해 감탄했다. 안은 자기가 미국에서 깊이 감명 받은 것 중 하나가 미국 여성의 친절함이라고 말하곤 했다.

안의 도움으로 디프는 베트남에 관한 기사를 뉴스위크지(誌)에 낼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로이터 지국장 닉 터너(Nick Turner 1935~2016)는 폭발해 버렸다. 터너는 로이터에서 정규적으로 보수를 받는 안이 뉴스위크에 기고하는 디프를 도울 수는 없다는 이유로 안을 해고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발령이 나서 터너는 사이공을 떠났다. 안은 타임지 현지 기자로 취직하기 전까지 1년 동안 프리랜서로서 디프의 취재를 도왔다. 디프는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베트남의 여인들에 관한 기사, 디엠 대통령의 제수(弟嫂)인 누 여사 인터뷰, 디엠 정부에 반대하는 불교 승려가 분신을 할 것 같다는 기사를 뉴스위크 등에 기고했다. 승려 분신은 현실로 나타나서 디프는 실력을 인정을 받았다. 이런 기사는 물론 안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4년부터 디프는 뉴욕헤랄드트리뷴(NYHT)에 통신원으로 기사를 썼다. 디프는 남베트남에 북베트남군이 들어와 있다는 기사를 최초로 써서 주목을 받았다. 디프는 또한 당시 남베트남 정부의 실력자였던 칸 장군과의 인터뷰 기사도 썼다. 하지만 NYHT는 파업 끝에 1966년 봄에 문을 닫았다. 디프는 또 다시 어려운 처지가 됐으나 그녀가 쓴 기사 덕분에 1967년부터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CSM)의 현지 통신원으로 일하게 됐다. 디프는 비로서 연봉 9,100 달러라는 고정 수입을 얻게 됐다.

1968년 초 북베트남군의 구정 대공세 때에 디프는 사이공에서 미군이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했고, 미국이 전쟁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등 여러 기사를 CSM에 냈다. 디프는 북베트남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미군에게 포격을 가하던 케산 기지에 들어가서 취재를 했다. 그녀는 라오스 영내에서 포격을 하는 북베트남군을 미군 전투기가 제대로 폭격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 등 당시 긴박한 상황을 CSM에 내보내서 그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디프는 티우 대통령실로부터 믿기 어려운 정보를 듣고 기사로 써서 CSM에 보냈다. 공화당 후보 닉슨 쪽에서 티우 대통령에게 존슨의 평화회담 제안을 거부하라고 종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존슨 대통령이 남베트남과 미국이 북베트남에 평화회담을 제의하기로 했는데, 이것을 알아차린 닉슨 측이 티우 대통령한테 존슨의 제안을 거부하면 닉슨이 당선된 후 보다 좋은 조건을 남베트남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해서 존슨의 평화협상 시도를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닉슨은 반역죄를 범한 것이기에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이 기사 원고를 받아든 CSM 본사는 근거가 약하다면서 백악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백악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해서 CSM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디프가 취재한 바가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존슨 대통령은 어차피 닉슨이 당선될 것으로 보고 닉슨의 공작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닉슨에게 그런 은밀한 정보를 전한 사람은 하버드 교수로 존슨 행정부에 자문을 하던 헨리 키신저였다.)

1969년 1월, 디프는 7년간의 사이공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디프는 사이공에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해병대 민사장교로 근무하던 챨스 키버(Charles Keever)와 사귀었다. 두 사람은 미국에 돌아와서 결혼을 했다. 1974년부터 디프는 워싱턴의 캐피털 힐 뉴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이 임박하자 타임지 본사는 전세 비행기를 사이공에 보내서 자사 특파원과 베트남 직원 및 가족을 데려왔다. 타임지 지국장은 안에게도 탈출해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안은 부인과 자식들만 비행기에 타게 하고 자기는 건강이 안 좋은 노모를 돌보아야 한다면서 거부했다.

워싱턴 DC에 살던 디프는 미국에 도착한 안의 부인과 네 아이를 만나서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고, 그들이 정착할 때까지 머물게 하는 등 그들을 돌보았다. 디프는 사이공을 탈출하지 못한 안이 고초를 겪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디프는 노스웨스턴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를 했고 하와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하고 2008년까지 저널리즘 교수를 지내고 은퇴했다.

- 사진 : 사이공에서 군복을 입은 베벌리 디프. 기자들은 암시장에 가서 미군 군복과 군화를 사서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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