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대 입시와 의대 평가

작성일 : 2024-08-22 20:42조회 : 246

의대 입시와 의대 평가

의대 증원으로 야기된 작금(昨今)의 의료 대란을 일으킨 주범은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와 장관들이다. 또한 한 학년에 3000명을 가르치는 의대의 정원을 별안간 2000명 늘리겠다고 하자 ‘구국(救國)의 결단’이라고 찬사를 보낸 한국 신문들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집단이 이런 난리에 책임이 있으니 바로 대학들이다. 정부도 할 말이 있는 것이 대학으로부터 신청을 받았더니 총 3000여명 증원을 요구해서 2000명으로 결정했다는 것이 아닌가.

1990년대에 전국 곳곳에 신규로 허가한 의대는 정원이 대체로 50명 안팎이다. 로스쿨도 그렇지만 의대도 한 학년이 70~80명은 돼야 비용·효과 면에서 운영할 만한 규모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균형과 평등’ 정서가 너무 강해서 결국에는 정원을 40~50명으로 쪼개서 여러 곳에 나누어 준다. 1990년대 의대 신규 인가 때도 그랬고 2007년 로스쿨 설립 인가 때도 그러했다. 로스쿨은 학생들이 보지도 않는 도서관 장서와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모의 법정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필요치 않지만 의대는 경우가 다르다.

서울에 소재한 의대도 각 대학마다 10명 정도는 큰 신규 투자 없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신규투자 없이도 증원을 감당할 수 있는 성균관대와 울산대는 특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부의 의도가 대규모 증원임을 모를 수 없었기 때문에 의과대학 전체가 이 문제를 다루어서 무엇인가 의견을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의대 교수들이 반발해서 학내 의사결정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대학 본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학 교육을 이끌어 온 서울 소재 의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 의대, 그리고 그 외의 작은 의대 사이는 입장 차이가 커서 의대 전체가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처럼 의대협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충북대의 경우에서 보듯이 총장과 도지사가 정원을 늘리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교육부와 복지부는 증원 배정에 대해선 자료가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 등에서 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이 사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대학총장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한국 아카데미즘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여하튼 전공의들의 사퇴와 학생들의 집단휴학으로 상황은 벌어지고 말았다. 증원을 가장 많이 한 충북대 의대부터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명감과 자존심으로 버티어 온 의대 교수들이 대학을 떠나고 있으며 지방 의대부터 그런 엑소더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지방 의대에 정원을 몰아준 조치가 저주로 돌아오는 형상이다.

9월이 되면 의대 수시 모집 절차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제 각 의대는 2025년 입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의대 전교생 유급은 기정사실이며 내년 입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으나 그로 인한 엄청난 파문을 두려워하는 교육부는 온갖 궤변을 동원해서 닥쳐오는 위험을 애써 모른 체하고 있다. 타조가 사자한테 잡아먹히기 전에 땅을 보면서 사자를 외면하는 꼴이다.

의대생들의 휴학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대학에 대해 의대생들은 휴학 확인과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보더라도 이 소송은 학생들이 승소하게 되어 있다. 내년 3월에 대학으로 돌아올 2024년 입학생들은 2025년도에 입시를 강행하려는 정부 당국의 조치에 저항할 것이다.

증원이 이루어진 의대에 대해 심사평가를 할 의평원은 집단유급도 평가에 고려할 것을 밝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증원이 이루어진 의대는 모두 탈락할 것이며 증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서울의 8개 의대도 그 심사를 피해가기 어렵다. 이것은 결국 내년은 의대 신입생을 뽑을 수도 없고 뽑아서도 안 된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 대란은 이제 ‘입시 대란’으로 번져갈 것이며, 어느 정권도 이런 파고(波高)를 넘을 수는 없다.

-- 한국일보 2024년 8월 22일자 기사 --

의평원 “집단 유급도 의대 인증 평가 검토”… 교육부 제동걸까
강지원 기자 입력 2024.08.22 04:30

의평원, 증원 의대 49개 기준 적용
11월 말 주요변화계획서 제출 요구
의대들 "집단 유급 반영해야 하나"
의평원 "별도로 요구할 계획 검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내년 입학정원이 늘어나는 의과대학 30곳에 인증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교육현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의평원은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이 현실화하면 이 또한 인증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 의대들이 무더기로 인증에서 탈락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판이다. 의대 인증 평가 강화에 반대하는 의대 운영 대학들과 교육당국이 의평원과 본격적으로 충돌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 의평원 49개 기준에 의대들 "준비시간 부족"
21일 의평원에 따르면 전날 발표한 ‘2025학년도 의대 증원에 따른 주요변화평가 계획’에 따라 입학정원이 10% 이상 늘어나는 30개 의대를 상대로 연말부터 49개 기준으로 평가에 착수한다. 주요변화평가는 2029년까지 6년간 매년 시행되는데, 평가 기준은 연차별로 줄어 마지막 두 해는 39개가 적용된다.

의평원은 다음 달 초 주요변화평가 계획 및 가이드에 따른 판정 지침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평가 대상 대학은 11월 말까지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하고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의평원의 서면·방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졸업생 의사 국가시험 응시 제한과 신입생 모집 정지 등의 처분을 받는다. 안덕선 의평원장은 “대학 현실이 어렵다는 얘기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의학 교육 질 하락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며 “여러 상황을 감안해 평가 기준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의평원의 평가 계획을 지난달 말 공개한 초안과 비교하면, 올해 적용할 평가 기준을 51개에서 2개만 줄이는 등 평가 강화 방침을 고수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일선 의대들이 여전히 우려하는 이유다. 전날 의평원 주요변화평가 계획안 온라인 설명회에 참여한 한 국립대 의대 관계자는 “11월 말까지 주요변화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 충원, 시설 확충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이미 정부에 필요한 교원과 시설 규모 등을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증원했는데, (의평원이) 갑자기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심사하겠다는 취지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지방 사립대 의대 학장은 “3개월 만에 과목별 교수 충원 규모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채용 절차나 충원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인증 유예를 요청했다.

- 의대생 집단 유급도 평가에 반영?
설상가상 의대생 수업 미복귀에 따른 집단 유급도 평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의평원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단은 증원된 학생에 따른 변화만 평가한다”면서도 “집단 유급이 현실화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각 대학으로부터 별도의 계획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의대생 집단 유급이 발생해 인증 평가에 반영될 경우 대부분의 의대는 교원 수나 시설 규모, 재정 상황 등 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대학들은 의대생 집단 유급을 막을 마지노선을 다음 달로 보고 있다. 다음 달을 넘기면 올해 예과 1학년(3,000명)의 집단 유급은 불가피하고, 내년부터 증원된 신입생(4,695명)을 포함한 7,500명이 6년간 함께 수업을 듣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

의평원 입장에 동조하는 지방 사립대 의대 학장은 “지금은 증원된 대학만 얘기하고 있지만, 9월이 지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의 유급 또는 휴학이 확실시돼 증원하지 않은 대학도 평가 대상이 돼야 한다”며 “내년 신입생이 졸업하는 시기까지 내다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교육부 "평가항목 적절한지 사후심의 하겠다"
의평원과 주요변화평가 계획안 사전심의를 두고 갈등을 빚었던 교육부는 사후심의를 통해 제동을 걸 방침이다. 고등교육기관의 평가ㆍ인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인정기관은 평가·인증의 기준·방법 및 절차 등을 변경할 경우 결정 후 1주일 이내에 교육부 장관에게 알려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의대 평가·인증 기관을 지정하는 권한을 활용해 의평원 단속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평원이 주요변화평가 계획 최종안 확정 전 사전심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의대 평가·인증기관으로서 평가 항목이 적절한지, 절차를 준수했는지 여부 등을 따지는 사후심의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집단 유급도 평가 반영을 검토하겠다는 의평원 방침에 대해서는 "이번 주요변화평가 계획안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강지원 기자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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