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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존 린지 (4) : 1969년
작성일 : 2022-03-26 16:06조회 : 2,051
존 린지 (4) : 1969년
1969년 2월 초, 뉴욕에는 15인치나 되는 폭설이 내렸다. 기상청이 폭설 예보를 했음에도 뉴욕시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제설 장비의 40%가 고장이 나있어서 3일 동안 맨해튼은 물론이고 퀸스 등 외곽도 교통이 완전히 마비가 됐고 학교는 문을 닫아야 했다. 눈 상황을 살펴보러 시내로 걸어 나간 린지 시장을 향해서 시민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사흘 동안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해서 과연 뉴욕시가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뉴욕시는 이민자들이 정착해서 성장한 도시였다. 흑인 인구가 늘기 전에는 영국의 박해를 피해서 온 아일랜드 계, 폴란드 등 유럽에서의 박해를 피해 건너온 유태인, 그리고 이탈리아, 그리스 등 앵글로 백인이 아닌 백인들이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블루칼라 노동자, 소규모 자영업자, 택시 기사 등으로 일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키워 나갔다. 이러한 백인 소수인종 주민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높은 세금과 인플레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덕분에 뉴욕시에선 무려 1백 만 명이 복지혜택을 입고 있었는데 흑인들이 가장 큰 수혜자였다.
백인 소수인종 블루칼라들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흑인들과 이들을 감싸는 린지 시장을 경멸했다. 린지는 시장 취임 후 2~3년 만에 백인 소수인종 주민들의 지지를 상실했다. 린지 시장을 열렬히 환영하는 곳은 흑인 거주지역인 할렘과 신좌파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UC 버클리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택시 기사는 대개 백인 소수인종이었는데, 이들은 린지를 욕하면서 운전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린지의 첫 임기는 거의 지나가고 있었고, 그해 11월 시장 선거를 앞두게 됐다. 린지의 부인은 뉴욕 시장 자리가 너무나 험난하다면 남편이 재선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 보수 평론가 윌리엄 버클리는 “관념적 진보주의자인 린지는 뉴욕시를 혼돈(chaos)으로 만들었다”고 비판을 퍼부었다. 공화당 내에선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 등 중진들이 닉슨 대통령에 대해 골칫거리인 린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닉슨의 참모들은 뉴욕 시장 선거를 관망하기로 했다. 공화당 내 진보파인 넬슨 록렐러 주지사도 린지에 대해선 혀를 내두르고 거리를 두었다. 린지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에서 재선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당은 잃어버린 시장직을 다시 찾아 올 기회가 찾아 왔다고 생각했다. 전임 시장 로버트 와그너는 뉴욕시의 문제가 자신 때문이라고 비난한 린지에 설욕하기 위해 시장 선거에 다시 나서기로 했다. 뉴욕시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외에 보수당과 진보당(The Liberal Party)이 있었는데, 뉴욕주법은 한 후보가 두 개 정당의 지지를 얻어서 출마하는 것을 허용했다. 진보당은 대체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는데 이번에는 공화당원인 존 린지를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1969년 6월17일에 열린 공화당과 민주당 동시 프라이머리는 뜻밖의 결과를 내었다.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선 백인 거주지역인 스태턴 아일랜드 출신의 보수성향인 존 마키(John Marchi 1921~2009) 뉴욕 주 상원의원이 린지 시장을 6000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선 뉴욕시 감사관인 마리오 프로카치노(Mario Procaccino 1912~1995)가 로버트 와그너 전 시장을 누르고 승리했다. 블루칼라 이탈리아 계 출신인 프로카치오는 포드햄 로스쿨을 나오고 뉴욕시 관료를 오래 지냈다.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모두 ‘린지 타도’를 내걸고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것이다.
린지가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패배하자 백악관 참모들은 골치 덩어리가 없어졌다고 기뻐했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수는 없게 된 린지는 진보당 후보로 본선에 출마하기로 해서 1969년 뉴욕시장 선거는 다시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린지는 민주당 후보 프로카치오가 가져 갈 수 있는 진보 성향 표를 가져와야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린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이 진보 성향 표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평화 집회 및 대학 강연을 통해 베트남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라는 식으로 강력하게 비난했다.
10월 15일 워싱턴 등 미국 대도시와 대학가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모라토리엄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리자 린지는 컬럼비아 대학, 뉴욕 대학 등으로 다니면서 시위대 앞에서 베트남 전쟁을 비난했다. 린지는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시청과 산하 기관 건물에 반기(半旗)를 계양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뉴욕 경찰국은 린지의 지시를 무시하고 성조기를 완전히 계양했다.
린지의 이 같은 전략은 효과를 보아서 초기에 선두를 달리던 민주당 후보 프로카치오는 초조함을 느꼈다. 프로카치오는 자신은 블루칼라 가정에서 자라서 근로자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유층 출신인 린지는 입으로만 자기가 진보라고 주장한다면 린지를 ‘리무진 리버랄’(limousine liberal)이라고 불렀다. 이 호칭이 언론에 널리 알려져서 그 후로 말과 행동이 다른 진보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됐다.
11월 4일 선거에서 린지는 42.4%를 얻어서 34.8%를 얻은 프로카치오를 18만 표 이겨서 당선됐다. 공화당 후보 존 마키는 22.7%를 얻는데 그쳤다. 린지는 맨해튼의 부유층과 할렘 등 흑인 지역구에서 승리했고, 프로카치오는 백인 블루칼라 지역에서 승리했다. 존 마키는 스태턴 아일랜드 등 백인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다. 이렇게 해서 린지는 4년간 시장을 더 할 수 있게 됐다.
- 사진 (1) 1969년 2월 폭설 후 눈이 쌓인 길을 걸어서 귀가하는 존 린지. (2) 1969년 10월 15일 모라토리엄 집회에서 연설하는 린지 시장. 장소는 컬럼비아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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