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리랑카 1991년

작성일 : 2022-04-08 21:00조회 : 3,520

스리랑카 1991년

내란으로 수십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스리랑카가 이제 경제파탄의 위기에 처했다. 근래에 스리랑카는 옷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는 등 나라 살림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관광 수입이 끊어지니까 직격탄을 맞은 듯하다. 스리랑카는 30년 전에 가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제3세계 빈곤국가의 현실이 어떤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 후 다시 가 보지는 못했지만 쓰나미 등으로 언론에 스리랑카 소식이 나오면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1991년 12월, 나는 스리랑카 중부에서 열리는 아시아 지역 환경법률가 워크숍이란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벌써 30년 전이고 나는 당시 40세 부교수였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팔 그리고 일본에서 온 변호사와 교수 열 명 남짓과 스리랑카의 환경 변호사와 환경운동가, 그리고 워크숍을 주관한 아시아 재단의 관계자와 미국 환경법 교수 등이 참여했는데, 우리나라에선 내가 참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도 성공했을 뿐더러 환경입법도 빨리 확충한 모범적인 국가였다.

서울에서 스리랑카로 직접가는 항공편은 없었고, 타이 항공을 타고 방콕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타이 항공편으로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다. 주변의 여관 같은 숙소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머이크로 버스 편으로 8시간 정도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해발 2000 미터 고지에 있는 누아라 엘리아에 도착했다.

워크숍은 스리랑카 중부의 고산지대 휴양도시인 누아라 엘리아의 그랜드 호텔에서 열리게 돼 있었다. 서울에서 스리랑카로 직접 가는 항공편은 없었고, 타이 항공을 타고 방콕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역시 타이 항공편으로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다. 공항 주변의 여관 같은 숙소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마이크로 버스 편으로 8시간 정도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해발 2000 미터 고지에 있는 누아라 엘리아에 도착했다.

워크숍은 나흘에 걸쳐 진행했고 주변 지역을 돌아 볼 기회도 가졌다. 그랜드 호텔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인들이 휴양지로 지은 품위 있는 호텔이었다. 미국 오리건 대학 교수가 미국 환경법에 관한 강의를 하고 각 나라 참여자들이 자기 나라 상황과 법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던 모임이었다. 나는 그 때 제3세계의 빈곤한 국가를 처음으로(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진 셈이다.

당시 스리랑카는 북동부 타밀 반군(叛軍)과의 전투가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이라서 그랜드 호텔은 우리 일행 외에 사람이 없었다. 스리랑카는 과거에는 실론(Ceylon)이라고 불렸다. 1960년 기준으로 실론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필리핀 다음으로 1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로 ‘인도양의 진주’라고 불렸다. 스리랑카는 홍차(tea)가 주산물이라서 우리는 어디를 가나 차를 마셨다. 누아라 엘리아 고산지대는 온통 차 밭이었는데, 보기에는 좋지만 차 잎을 따는 여인들의 모습은 처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인도에선 나보다 나이가 제법 많은 인권 변호사가 참석했는데, 내가 한국의 1인당 GNP가 5500 달러라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도무지 너의 나라가 그렇게 잘살게 된 원인이 뭐냐고 정색을 하고 나에게 물었다. 이처럼 모두들 한국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놀라워했다.

그 당시 스리랑카의 빈곤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 나와서 산책을 할 때 돼지우리 같은 움막이 밭 근처에 몇 개가 있었는데, 그런 움막은 일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후진국에 갈 때는 연필이나 볼펜을 잔득 사갖고 가라는 말을 들어서 나는 연필을 열 타스 넘게 갖고 갔고 그것을 만나는 현지민에게 주었는데 모두들 너무 고마워했다. 도무지 연필과 볼펜이 귀한 나라였다. 우리가 탄 버스를 보고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무엇을 달라고 하기에 내가 갖고 간 연필을 나누어 주었더니 버스 창문으로 수십 명이 손을 벌리고 연필을 얻어갔다. 호텔 로비에서 영자 신문을 볼 수 있었는데, 내전(內戰) 전투 중 그 주일에 전사한 장병의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인도양 바닷가에 있는 콜롬보는 과거 식민시절에 지은 석조 건물이 아름답지만, 저녁 늦게 시내 거리는 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서울로 치면 을지로 거리에서 어린아이들까지 일가족이 줄을 이어서 거리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장거리 버스나 시내버스는 대개 오래된 인도산 타타 버스였는데, 매연을 시꺼멓게 뿜었다.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를 갖고 있었다. 내란 중이라서 스리랑카에 관광을 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는데, 믿을 수 없는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 특히 독일의 동성애 중년 남성들이 스리랑카 소년을 상대하러 콜롬보에 온다는 것이다. 빈곤한 부모들이 그것을 용인하는 셈이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일행 중 미국인에게 내가 도무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국민들의 생활은 그렇게 피폐했지만 내란 중이라서 AK 소총을 든 군인들은 어디든 보였다. 군인들은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못 먹어서 마른 상태였다. 테러에 대비한 통제도 있었지만 경제 구조 자체가 통제적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상점에는 손님은 없었지만 할 일이 없는 공무원 직원들이 즐비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됐던 것은 스리랑카에서 사서 출국할 때 갖고 나갈 수 있는 차(tea)의 분량이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공항 출국장에서 가방을 열고 차를 초과해서 갖고 나가지 않나 확인을 했으니, 돈 주고 사서 갖고 나가겠다는 것을 제한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폐쇄적인 자급자족 경제 체제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스리랑카 내란은 반세기 동안 지속돼서 그 나라를 황폐화시켰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내란 상황이 극심했고, 그 여파로 인도 총리와 스리랑카 대통령이 암살되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타밀 반군이 완전히 항복해서 평화가 찾아 온 시기는 2000년대 중반 들어서서이다. 그 워크숍에서 만난 변호사 교수 중 몇몇은 그 후 환경관련 컨퍼런스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스리랑카에서 보았던 빈곤의 현장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했던 사람들이 겪는 경험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란이 끝나고 콜롬보에는 고층 건물이 들어선 모습을 CNN을 통해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기 독재에 따른 부패에다 코로나로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아서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한 모양이다.

최근 스리랑카 소식은 아래 연합뉴스를 참조. 사진은 최근의 누아라 엘리아 그랜드 호텔. 30년 전에는 이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405082100077?input=fb&fbclid=IwAR2x6Bu5UjfgPhfoA6CZ5bKlRGoYzhEuu34QWlk751ykOq0uxEGzdDlh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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