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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800년 미국 선거, 그리고 그 후
작성일 : 2022-04-15 00:17조회 : 2,122
1800년 미국 선거, 그리고 그 후
우리나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할 때까지 두 달 동안의 기간이 있다. 이 기간 중의 대통령이 엄격한 의미에서 레임덕 대통령이다. 리더십이 사라지고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임기가 끝나서 퇴임을 앞둔 대통령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차기 대통령으로의 권력 이양이 원만하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라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 초이고 대통령 취임은 1월 초이다. (1933년 개헌 전에는 취임일이 3월 초였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일뿐더러 정무직 고위공무원의 범위가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그 두 달은 새 정부에서 직업을 구하려는 사람과 정부를 떠난 후 새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 상황에서 물러나는 정부가 무리하게 입법을 강행하거나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드문데, 미국 역사상 그러했던 경우가 1800년 대선이 있은 후에 있었다.
1800년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득표에서 우연하게 동수를 확보한 버지니아 출신 공화파(Republicans)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과 뉴욕 출신 공화파인 에런 버(Aaron Burr 1756~1836) 중에서 1800년 11월 선거로 1801년 1월에 새로 구성된 하원이 각주 별로 1표 씩 행사하는 하원 결선투표로 결정됐다. 선거인단 득표에서 연방파(Federalists) 후보로 3등을 한 존 애담스와 4등을 한 찰스 핑크니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1800년 11월 하원 선거에서도 집권당이던 연방파가 참패해서 의석 구도는 공화파 68석, 연방파 38석이 되고 말았다. 동시에 치러진 주 의회선거에서도 공화파가 승리해서 주 의회가 선출하는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공화파가 3석을 추가해서 연방파 17석 공화파 14석으로 연방파의 우세가 줄어들었다. (상원의원은 매 2년마다 전체 숫자의 1/3씩 선출하기 때문이다. 상원의원 선거는 1912년 헌법 수정으로 직선으로 바뀌었다.)
하원에서의 무려 36차에 걸친 투표 끝에 2월 17일에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에런 버는 부통령이 됐다. (당시는 러닝메이트 개헌을 하기 전이라 에런 버가 부통령이 되었다.)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그의 정적이었던 연방파 거물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1804 : 조지 워싱턴의 독립전쟁 참모였고 초대 재무장관을 지냈다.)이 마지막 순간에 제퍼슨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원래 사이가 안좋던 해밀턴과 에런 버는 원수가 되었고, 버는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허드슨 강변에서 행한 결투에서 해밀턴은 사망한다.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사망한 해밀턴을 기리는 동상은 그의 모교인 컬럼비아 대학과 그가 초대 장관을 지낸 재무부 정문 앞에 있다.)
대통령도 공화파로 넘어 가고 하원 다수석도 공화파로 넘어 갔지만 상원은 연방파가 아직 다수였기에 때문에 애담스 대통령 등 연방파는 정권을 내어 주기 전에 연방파 인사를 대거 법관으로 임명해서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다. 존 애담스 대통령은 국무장관이던 존 마셜(John Marshall 1755~1835)을 공석 중인 대법원장에 임명했고 상원은 곧 인준을 했다. 이렇게 해서 존 마셜은 애담스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한 달 전인 2월 4일에 대법원장이 됐는데, 한달 동안 국무장관을 겸직했다. 연방파는 대법관 정원을 줄여서 제퍼슨이 대법관을 임명하지 못하게 하고 연방판사 자리를 늘리는 법안을 급하게 통과시켰고, 이 법률에 근거해서 자기 편 인사 16명을 연방판사로 임명했으며 윌리엄 마버리 등을 치안판사로 임명했다. 이렇게 임명된 판사들을 'Midnight Judges'라고 부르는데,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에 임명됐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마버리 등에 대한 임명장은 3월 3일 밤 자정까지 전달되지 못했고, 그 다음날 3월 4일 아침에 제퍼슨은 대통령에 취임했고, 제퍼슨에 의해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은 미처 전달되지 못한 마버리 등에 대한 판사 임명장을 무효로 처리했다. 이렇게 해서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루는 유명한 판결이 대법원에 나오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제퍼슨 등 공화파는 연방파가 저지르는 이런 일을 보고 분노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바가 없었다. 정권을 장악한 공화파는 존 마셜 대법원장을을 탄핵하기 위해 연방파인 새무얼 체이스(Samuel Chase 1741~1811) 대법관을 먼저 탄핵하려 했으나 상원에서 2/3 찬성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 제퍼슨은 에런 버를 나중에 반역죄로 기소했으나 멀리 도망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자신도 애담스 대통령 밑에서 하기 싫은 부통령을 했으며 에런 버 부통령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제퍼슨은 1803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선출토록 선거제도를 바꾸었다.
이처럼 1800년 전후의 공화파와 연방파의 투쟁을 보면 중국 소설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 여하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연방파는 서서히 소멸돼 버렸고 공화파는 버지니아 출신인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먼로에 이르는 대통령 3명으로 이어지는 24년 동안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공화파의 정치적 계보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을 거쳐서 오늘날의 민주당으로 이어진다.
1800년 선거 전후에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알렉산더 해밀턴과 존 애담스는 그 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고 반면에 토머스 제퍼슨은 상당한 정도 과대평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밀턴과 애담스는 21세기에 들어서 론 처나우(Ron Chernow)와 데이비드 매컬러프(David McCullough)가 두 사람에 대한 전기를 각각 펴낸 다음에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에런 버도 처음부터 부통령으로 만족하고 제퍼슨의 손을 들어 주었다면 그런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런 버는 최초로 로스쿨에서 공부한 변호사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처남 매부간이 되는 변호사가 자기 집에 리치필드 로스쿨(Litchfield Law School)이란 간판을 걸고 변호사 시험 준비를 시키는 학원 같은 것을 열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공부해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1800년 선거를 전후로 한 미국 정치를 중국 무협지(武俠誌)에 비유했는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내걸고 Midnight Legislation을 강행하는 모습이나, 한동훈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윤석열 당선인의 모습도 역시 무협지의 한 장면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1800년 당시 미국처럼 결투가 허용된다면 요즘 여의도 한강변에선 빈번하게 결투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 사진 왼쪽 존 마셜 대법원장, 오른쪽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두 사람은 모두 버지니아 사람이고 먼 친척이며 윌리엄 앤드 매리 대학 동문이다. 존 마셜은 1835년에 사망할 때까지 34년간 대법원장을 지냈다. 역설적으로 존 마셜은 제퍼슨의 정적이었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이란 위대한 미국의 전통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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