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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서머스와 2008년 금융위기

작성일 : 2022-04-22 07:59조회 : 2,311

로렌스 서머스와 2008년 금융위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에 대해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하버드대 교수 시절 가장 신임하는 학자 중 한 명“이라고 말 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하버드 정교수가 된 로렌스 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고 하버드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창용 후보자는 서머스에 대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경제학자'라고 평한 바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4월 20일자 기사) 하지만 현 시점에서 과연 서머스를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1954~)는 1991년에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가 돼서 하버드를 떠났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재무부 국제문제 담당 차관보가 됐고, 1995년에는 차관이 됐고, 1999년 7월에 그의 멘토격(格)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1938~) 장관이 시티그룹으로 가기 위해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서 재무장관이 됐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루빈은 골드먼 삭스에 취직해서 1990년에 최고경영자/이사회장에 올랐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처럼 재무부의 규제를 받아야 할 업계의 대표적 인물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로버트 루빈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구분해 놓은 글라스-스티겔법(The Glass-Steagall Act)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해 왔고, 재무장관이 되자 이 법을 폐지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재무차관이던 서머스도 루빈의 주장에 동조했다. 1999년 11월, 서머스가 재무장관일 때에 의회는 이 법을 폐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클린턴 대통령은 서명을 했다. 서머스는 의회가 21세기에 부응하는 입법을 했다고 글라스-스티겔법 폐지를 칭송했다. 루빈과 서머스가 취한 또 다른 조치는 1998년 5월에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해제한 것이다. 당시 차관이던 서머스는 시장이 이런 상품을 스스로 규제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사이의 장벽을 없애고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해제함에 따라 금융기관간의 합병이 촉진되고 규제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머스가 재무차관을 지낼 때 몇몇 아시아 국가가 경제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처해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자 우리 정부에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요구한 장본인이 바로 서머스 차관이었다. 제조업 기반이 튼튼한 우리나라에 대해 그 같은 가혹한 조건을 요구한 것이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거먼(Paul Krugman 1953~) 교수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1943~) 교수가 한국에 대한 그런 압력이 부당했다고 비판한 바 있음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서머스는 재무장관을 그만두고 하버드 총장이 됐다. 하지만 여자는 본성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약하다는 여성 폄훼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서 5년 만에 총장직을 그만 두었다. 하버드 총장으로 있으면서도 서머스는 여러 금융기업에 자문을 했다. 총장을 그만 둔 서머스는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하면서 1년 반 동안 500만 달러 급여를 받았고, 골드먼 삭스, JP 모건, 리먼 브라더스 등 금융기업에서 강연을 하면서 270만 달러 수입을 올렸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 서머스는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위원장을 2년간 지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취임할 1999년에 서머스는 자기 재산을 40만 달러로 신고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장으로 취임할 2009년 서머스는 자산의 재산을 1,770만~3,900만 달러로 신고했다. 10년 동안 최소한 1,700만 달러가 증가한 것이다.(Benson, Clea, "Summers After Government Saw Wealth Surge to $17 Million" 2013)

2007년 들어서 미국에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닥쳐왔다. 2008년 가을에는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거대 금융기업들이 모두 부실화되어 전에 없던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 했는데, 그것은 당시 재무장관 헨리 폴슨(Henry Paulson 1946~)이 골드만 삭스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위기, 그리고 2008년~09년에 닥친 금융위기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가 취한 금융기관 규제해제와 파생상품 규제 해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2010년에 나온 도큐먼트 영화 ‘인사이드 잡’(Inside Job)은 200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금융회사들의 탐욕과 규제기관의 무능을 다루어서 그해 도큐먼트 영화 아카데미를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금융기업 임원들, 금융기업 출신으로 정부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 그리고 금융기업과 밀착된 교수들 사이의 내부자(inside) 거래의 결과가 2008년 경제위기라는 의미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금융위기의 뿌리와 책임을 추적했는데, 특히 학자들의 책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금융규제 완화에서 파생상품 자유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항상 교수/학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서머스 등 스타급 교수들은 금융회사의 이사 자문 등을 맡으면서 연간 수백만 달러씩 수입을 올리면서 금융기업을 옹호했고, 정부 고위직에 참여해서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 하버드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지낸 마틴 펠트스타인(Martin Feldstein 1939~2019)이 금융규제 완화를 시작했다면, 역시 하버드 경제학 교수 출신인 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으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장벽을 제거하고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해제해서 금융규제 완화를 완성시켰다. 그러더니 불과 몇 년 후 서브프라임 위기와 리먼 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주택을 차압당했다.

영화 ‘인사이드 잡’은 서머스 외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지낸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장 글렌 허바드(Glen Hubbard),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에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이사직을 사퇴하고 대학으로 돌아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 프레드 미시킨(Fred Mishikin) 등이 모두 거대 금융회사의 이사와 자문을 지내면서 수천만 달러의 급여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금융회사 임원 출신과 금융회사 자문을 지낸 이들이 오바마 정부에서도 그대로 중요한 직책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도 용두사미로 끝나 버렸다는 데 있다. 오바마 정부는 막대한 세금으로 금융기업을 지원했으나 어느 누구를 상대로 형사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서머스도 오바마 백악관에서 국가경제위원회장을 맡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물망에도 잠시 올랐으나, 그 자리는 재닛 엘린(Janet Yellen 1946~ : 현 재무장관)에 돌아갔다. 아마도 영화 ‘인사이드 잡’에도 나온 거액의 자문료 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후 하버드 교수로 복귀한 서머스는 시티그룹, 헤지펀드 그룹 등에 여전히 자문을 해오고 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서머스가 바이든을 도울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자 일단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바이든에게 경제위기를 초래한 책임이 있는 서머스를 멀리 하라고 요청했다. (Golshan, "Joe Biden Under Pressure From Progressives To Cut Out Larry Summers" 2020 April Huiffington Post)

요즘 우리는 총리 장관 등에 지명된 사람들이 로펌 등에서 거액의 급여와 자문료를 받은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등의 경우에 친숙한 이들인 만큼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008년 경제위기 후에는 서머스 같은 사람을 내세워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더욱이 우리는 1997년 경제위기 때 미국 재무차관이던 서머스로 인해 필요 이상의 고통을 당하지 않았던가.

사진은 영화 <Inside Job>에 나온 2010년 하원 청문회 장면. 의회는 항상 사건이 터진 후에 이런 청문회를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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