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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 보크, 스칼리아, 칼라브레시

작성일 : 2022-07-04 15:17조회 : 1,899

리바이, 보크, 스칼리아, 칼라브레시

지난 2012년에 타계한 로버트 보크(Robert Bork 1927~2012)는 낙태 자유화 판결을 뒤집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법률가라고 할 만하다. 예일대 교수로서 보크는 The Federal Society 창립을 도왔고, 헌법 해석에 있어서 제정자의 원래 의도(original intent)를 중시하는 'Originalism'를 주창해서 Roe v. Wade를 잘못된 판결로 규정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법무부에는 장관(Attorney General)과 차관(Deputy Attorney General) 외에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이 있는데, 송무차관은 1977년에 부차관(Associate Attorney General)이 새로 생기기 전까지는 법무부 서열 3위였다. 송무차관은 미국 정부를 대표해서 소송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연방법원, 특히 대법원에서 미국 정부가 당사자가 되면 송무차관이 직접 출석해서 변론을 한다. 송무차관도 물론 정치적 임명직인데, 케네디 대통령은 하버드 로스쿨의 아치볼드 콕스(Archibald Cox 1912~2004) 교수를 송무차관으로 임명했고, 존슨 대통령은 흑인민권단체 NAACP의 법률고문인 흑인 변호사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 1908~1993)을 송무차관으로 임명했다. 대법원에 빈자리가 나오자 존슨 대통령은 마셜을 대법관으로 임명해서 최초로 흑인 대법관이 탄생했다. 그리고 존슨은 하버드 로스쿨 학장을 20년간 지내던 저명한 법학자 어윈 그리스월드(Erwin Griswold 1904~1994)를 마셜의 후임 송무차관으로 임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강조하기 위해 법무장관은 자신의 친구인 존 미첼, 차관은 애리조나 출신인 리차드 클라인딘스트를 임명하고 법무담당 차관보에는 역시 애리조나 출신인 윌리엄 렝퀴스트를 임명했다. 송무차관 어윈 그리스월드가 1973년 들어 은퇴를 밝히자 닉슨은 후임으로 보수 법학자로서 명성이 뜨고 있던 예일 로스쿨 교수 로버트 보크를 임명했다.

1973년 10월 20일,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파면하라고 엘리옷 리차드슨 법무장관에게 명령했다. 리차드슨 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고, 차관인 윌리엄 러클샤우스도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겠다면서 사표를 냈다. (콕스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였고, 리차드슨 장관과 러클샤우스 차관은 모두 하버드 로스쿨 졸업생이었다.) 장관과 차관이 사임함에 따라 3인자인 로버트 보크 송무차관이 닉슨의 지시를 이행해야만 했다. 보크는 대통령은 정무직 공무원을 파면할 권리가 있다면서 콕스를 파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원은 닉슨에 대한 탄핵 절차를 시작하게 된다. (언론은 이를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닉슨이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는 워터게이트로 위상이 손상된 법무부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저명한 법학자인 에드워드 리바이(Edward Levi 1911~2000) 시카고대학 총장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리바이는 시카고대학 학부와 로스쿨을 나오고 젊은 나이에 모교 교수가 됐고 로스쿨 학장을 역임하고 1968년부터 총장을 맡고 있었다. 법무장관으로 부임한 리바이는 법무부에서 로버트 보크를 만나게 되는데, 보크는 시카고 로스쿨에서 리바이 교수한테 배운 제자였다.

한편 조지타운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1936~2016)는 버지니아 대학(UVA) 로스쿨에서 교수를 하다가 1971년부터 통신정책과 행정규제를 다루는 부서에서 일했다. 그는 닉슨이 사임하기 직전에 법무부 법무담당 차관보로 임명됐다.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스칼리아는 닉슨 행정부 마지막 순간에 법무부 요직을 차지한 셈이다.

1977년 1월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자 리바이는 시카고 대학으로, 보크는 예일대로 돌아갔다. 이때 스칼리아는 리바이를 따라서 시카고로 같이 가게 됐다. 스칼리아가 시카고 로스쿨 교수로 임명된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본산지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은 하버드나 컬럼비아와 달리 전통적 학풍을 갖고 있었기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보수적 성향인 안토닌 스칼리아는 자신에게 걸 맞는 좋은 대학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1980년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에 자신을 보좌하고 샌디에고 대학 로스쿨 교수를 지낸 에드윈 미즈(Edwin Meese III 1931~ )를 국내문제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미즈는 레이건 2기에는 법무장관을 지내게 된다. 레이건은 LA에서 자신의 법률문제를 대리했던 유능한 변호사 데드 올슨(Ted Olson 1940~ )을 법무담당 법무차관보로 임명했다. 에드윈 미즈와 데드 올슨은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할 연방법원 판사 후보자를 추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81년 11월, 레이건 대통령은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법경제학자 리차드 포스너(Richard Posner 1939~ ) 교수를 일리노이 등을 관장하는 제7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하고, 1982년 2월과 8월에는 로버트 보크와 안토닌 스칼리아를 워싱턴 DC 관할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각각 임명했다. 시카고 대학과 관련이 있는 전통적 성향의 법학자들이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 대거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진입해서 학계의 화제가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일 로스쿨에서 열린 The Federalist Society 창립 모임에 참석한 로버트 보크와 안토닌 스칼리아가 대법원 다음으로 중요한 워싱턴 DC 관할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됐다. 그러면 창립 모임을 주관한 예일 로스쿨 학생 스티븐 칼라브레시는 그 후 어떻게 됐나?

스티븐 칼라브레시(Steven Calabresi 1958~ )는 1980년 8월에 예일 로스쿨에 입학해서 1983년 5월에 졸업했다. 그는 법조계에서는 유명한 성(姓)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삼촌이 예일 로스쿨의 저명한 교수인 귀도 칼라브레시(Guido Calabresi 1932~ )이기 때문이다. 귀도 칼라브레시는 젊은 나이에 예일 로스쿨 교수가 되어 법경제학(law and economy) 분야에서 시카고 대학의 리차드 포스너와 함께 쌍벽을 이룬 학자였고 그 후 예일 로스쿨 학장을 지내게 된다. 귀도 칼라브레시가 예일에서 가르친 제자로는 지금 대법관을 지내고 있는 클라렌스 토머스와 새무얼 얼리토 등이 있다.

스티븐 칼라브레시는 로스쿨 졸업 후 1984~85년간 연방항소법원 판사 로버트 보크의 연구관(law clerk)을 1년간 지내고, 1985~87년 동안은 에드윈 미즈 법무장관의 특별보좌관을 지내고, 1987~88년간은 대법관이 된 안토닌 스칼리아의 연구관을 지냈다. 보통 로스쿨 졸업생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한 경력을 쌓은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됐으나 민주당 의원들의 공격으로 상원 인준에서 실패한 로버트 보크가 연방항소법원 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위원으로 책을 준비하자 칼라브레시는 2년 동안 보크를 도와서 일했다. 1990년에 칼라브레시는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조교수가 됐고, 현재 정교수로서 헌법 등을 가르치면서 활발한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The Federalist Society를 만들어 낸 세 사람은 이런 특별한 관계가 있다.

- 사진 : (1) 에드워드 리바이 (법무장관 시절) (2) 로버트 보크 (3) 안토닌 스칼리아 (4) 스티븐 칼라브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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