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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바마, 트럼프 그리고 대법원
작성일 : 2022-07-09 16:18조회 : 1,850
오바마, 트럼프 그리고 대법원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과거의 어느 대통령 보다 많은 흑인과 여성을 연방 판사로 임명했다. 오바마는 재임 중 대법관을 두 명 임명할 수 있었다. 2009년 5월 1일, 데이비드 수터(David Souter 1939~) 대법관이 은퇴를 밝혔다. 수터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서 대법관이 됐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진보 성향으로 돌아서서 공화당은 수터를 부시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불렀다.
수터는 오바마가 취임한 후에 은퇴를 밝혀서 자기 후임을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서 공화당과 보수 평론가들을 다시 분노하게 만들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컴퓨터와 휴대폰을 쓰지 않았던 ‘괴짜’인 수터는 말년에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과 가까이 지냈고 판결도 긴스버그를 따라 갔다. 오바마는 대법원에 중남미계 대법관이 없음을 고려해서 하버드를 나오고 연방법원 판사를 오래 한 소니아 소토마이어(Sonia Sotomayor 1954~ )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인준 청문은 순탄하게 진행됐고 상원은 68대 31로 인준을 통과시켰다. 당시 상원의석은 민주 58석, 공화 40석이고 친민주 무소속이 2석이었다.
2010년 4월, 존 폴 스티븐스(John Paul Stevens 1920~2019) 대법관이 90세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포드 대통령이 임명한 스티븐스 대법관은 공화당원이었으나 점차 진보 쪽으로 기울어서 1990년대 후반기에는 진보 쪽으로 판결하는 경우가 많아 졌는데, 그도 민주당 대통령으로 하여금 후임을 임명하도록 했다. 오바마는 클린턴 백악관에서 일하고 그 후 하버드 로스쿨 교수를 지내다가 2003년부터 학장을 하고 송무차관을 지낸 엘리나 케이건(Elena Kagan 1960~ )을 지명했다. 오바마는 케이건이 당시 50세라서 오랫동안 대법관을 지낼 것으로 생각했다. 상원은 63대 37로 인준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에는 여성 대법관이 3명으로 늘어났고, 대법원 구성은 보수 4인(존 로버츠, 안토닌 스칼리아, 클라렌스 토머스, 새무얼 얼리토), 중도 보수 1인(앤서니 케네디), 진보 4인(루스 긴스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이어, 엘리나 케이건)으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수터와 스티븐스가 진보로 변했을 뿐더러 오바마에게 그들의 후임을 임명하도록 은퇴 시점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공화당에게 크게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안토닌 스칼리아(1936~2016) 대법관이 2016년 2월 13일 텍사스에 있는 지인의 랜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사망했다. 평소에 심장과 순환계에 문제가 있어서 사망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오바마 대통령은 뜻밖에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이 남긴 빈자리를 메꿀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2014년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9석을 늘려서 54석이 됐고, 민주당은 9석이 줄어든 45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됨에 따라 법사위 위원장도 공화당이 차지하게 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오바마는 그래도 공화당이 수용할 수 있는 인물인 워싱턴 DC 관할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메릭 갈랜드(Merrick Garland 1952~ )를 후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갈랜드는 1997년에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는데,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무난하게 인준이 통과된 바 있다.
하지만 공화당은 갈랜드가 대법관이 되면 대법원에서 5대 4로 보수가 우위인 구성이 5대 4로 진보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공화당 지도부는 2016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갈랜드에 대한 인준 청문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청문 절차 자체를 거부해 버렸다. 당시 공화당은 그해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이 되면 회기 내에 갈랜드를 통과시키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회기 내에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더 나쁜 대법관’을 지명할 테니 ‘덜 나쁜 갈랜드’를 통과시키고, 트럼프가 이기면 트럼프로 하여금 새 대법관을 지명토록 해서 보수 우위를 지켜나간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회기 만료까지 무려 8개월 동안 대법관 인준 청문을 다루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 처사는 철저하게 파당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공화당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 시절에 민주당이 자기들이 보기에 보수적인 항소법원 판사 지명자 10 여명을 인준 청문 자체를 거부해서 무산시킨 적이 있음을 들어서 반박했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함에 따라 갈랜드 인준 동의안은 의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갈랜드는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닐 고서치(Neil Gorsuch 1967~ )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고서치는 2006년에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자신도 공화당원이고 역시 공화당원인 그의 어머니 앤 버포드 고서치는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환경보호처장을 지냈다. (그녀는 불미스런 일로 물러났다.) 2017년 4월, 상원은 54 대 45로 인준을 통과시켰다.
2018년 봄,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은퇴를 선언하자 트럼프는 공화당원이고 조지 W. 부시 백악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부시에 의해 워싱턴 DC 관할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된 브렛 캐버너(Brett Kavanaugh 1965~ )를 지명했다. 예일 학부와 로스쿨을 나온 그는 청문 과정에서 대학 시절에 자신을 성추행 했다는 여성이 증언대에 나와서 큰 논란을 빚었다 상원은 50대 48로 인준을 통과시켰다. 고서치와 캐버너가 임명됨에 따라 대법원은 보수 5인 대 진보 4인 구도가 유지됐다. 과거와 다른 점은 나중에 진보로 전향한 존 폴 스티븐스나 데이비드 수터와 달리 두 사람은 보수 성향이 철저하게 검증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있어서 역할을 한 조직이 바로 The Federalist Society이다.
2020년 9월 18일,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이 87세로 사망했다. 말년에 여러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긴스버그는 트럼프 임기가 끝나고 퇴임해서 민주당 대통령이 후임을 임명하도록 하고 싶었으나 그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9월 중순이면 대선이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임에도 트럼프는 에이미 배럿(Amy Barrett 1972~ )을 임명했다. 배럿은 뉴올린스 출신으로 노터댐 로스쿨을 장학생으로 수석 졸업했다. 변호사를 잠시 한 후에 모교 교수로 부임해서 헌법 등을 가르쳤고,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됐는데, 3년 만에 대법관으로 지명된 것이다. 상원은 대선을 며칠 앞둔 10월 26일, 52 대 48로 인준을 동의했다. 2018년 상원 선거 후 상원 의석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7석이었다. 민주당은 메릭 갤런드의 경우를 들어서 차기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자고 주장했으나 공화당은 그런 주장에 귀를 기우릴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은 보수 6인(로버츠, 토머스, 얼리토, 고서치, 캐버너, 배럿), 진보 3인(브라이어, 소토마이어, 케이건)으로 보수가 압도하는 구도가 되었다. 2022년 초,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민주당 대통령이 있을 때 퇴임하는 것이 맞는다면서 6월 말에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임으로 흑인 여성인 케탄지 잭슨(Ketanji Jackson 1970~)을 지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고, 바이든에 의해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된 후 1년 만에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상원 법사위는 11대 11로 찬반이 동수였으며 본회의는 53대 47로 인준이 통과됐다. 본회의에서 공화당 소속인 미트 롬니, 수전 콜린스, 리자 머코우스키 의원이 찬성을 해서 간신히 통과될 수 있었다.
따라서 7월부터는 대법원에는 백인 여성 대법관 2명, 흑인 여성과 중남미계 여성 대법관 각각 1명이 대법원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로버츠 대법원장, 클라렌스 토머스, 새무엘 얼리토, 브렛 캐버너, 에이미 배럿, 그리고 소니아 소토마이어가 가톨릭 신자이어서 9명 대법관 중 무려 6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로마 교황청이 낙태를 금지하는 교리를 수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6월 24일, 6대 3으로 1973년 낙태자유화 판결을 뒤엎는 판결을 내렸다.
- 사진 : (1) 브렛 캐버너가 청문회에서 성추행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대법관이 되면 클라렌스 토머스처럼 40년 동안 진보주의자들을 적대시할 수 있다. (2) 청문회에서 당당한 모습의 에이미 배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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