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80년대 한국경제

작성일 : 2021-12-18 17:12조회 : 2,352

1980년대 한국경제

전두환이 경제는 잘 한 것도 있다고 해서 또 한마디 해야겠다. 1980년대 들어서 우리 경제가 숨통을 트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석유가격 안정이다. 카터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에너지 위기를 극복한다면서 각료급인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를 신설했다. 그리고는 석유가 고갈되어 간다면서 석탄을 액화하는 합성연료(Synfuel) 사업을 추진했지만 상업성이 없고 탄산가스가 많이 나오는 등 문제가 많아서 포기해 버렸다. 에너지 문제와 싸우다가 지쳐버린 카터 대통령은 미국 사람들도 겨울철에 집에서 스웨터를 입으라고 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석유가격을 자유화해서 휘발유 증산(增産)을 유도했고 사우디와 대화를 통해 사우디가 석유 수출을 증가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저(抵)유가 시대가 열린 것이니, 레이건이 저유가 시대를 열어서 전두환 정권이 경제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레이건은 대선 공약으로 에너지부를 없애 버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에너지부는 그 후 아무 할 일이 없는 부서로 전락해 버렸다.

오늘날 우리 경제는 반도체와 자동차에 힘입은 바가 제일 크다. 반도체는 전적으로 고(故) 이병철 회장의 업적이고 전두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동차 산업은 전두환 때문에 하마터면 없어질 뻔 했다. 서슬이 퍼런 전두환 세력이 주도한 국보위가 중화학 분야가 과잉투자라면서 구조조정을 할 때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될 수가 없다면서 없애고 다른 분야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이 몇 년 후에 망해도 우리가 망하니까 제발 그냥 두라고 해서 현대자동차가 살아 난 것이다. 하지만 미스비시로부터 엔진과 미션을 들여와서 만든 포니는 굴러가니까 자동차라고 할 정도였으니 세계시장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 기막힌 기회가 열렸다.

1970년대 후반기 들어서 일본이 소형차가 미국에 물 밀 듯 들어와서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위기에 빠졌다. 크라이슬러는 카터 행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버티었고 포드 자동차도 위태로웠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일본 자동차 때문에 피해가 많다면서 무역위원회(ITC)에 수입규제를 요청했으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자유무역주의자로 수입규제를 좋아하지 않았던 레이건이지만 포드와 GM의 요청을 저버릴 수 없었다. 레이건은 일본 총리에게 미국에 대한 자동차 수출을 자율규제(voluntary restraint)해 주도록 요청했고 일본은 이에 기꺼이 응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1981년부터 수출물량을 연간 168만대로 제한하고 점차 늘려서 1987년에는 230만 대로 제한하기로 했다. 무려 7년 동안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대수가 제한되니까 보다 좋고 비싼 차를 수출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선 저가 자동차 공급이 대폭 줄어들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에 공백을 메우고 미국 시장에 들어간 자동차가 바로 현대 엑셀이었다. 미국 수출 첫해에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이 팔린 차로 엑셀이 기록을 세운 배경에는 일본차 자율수출규제가 있었다.

1988년 초 나는 미국 호텔에서 현대 자동차 TV 광고를 보고 하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광고는 조금 유치했다. “요즘 자동차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중고차를 사는 방법도 있겠지만 현대 엑셀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엑셀은 부담없는 차(affordable car)랍니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한국 자동차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전두환이 경제를 잘 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노조를 탄압해서 저임금으로 생산성을 높였으니까 말이다. 설마하니 이재명 후보가 이걸 두고 경제를 잘한 면도 있다고 말하자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두환이 경제는 잘했다는 데 조금도 찬성하지 않는다. 1980년대를 만나서 그렇게 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스웨터를 입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레이건처럼 외국 지도자에 전화를 걸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진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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