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이건의 장인, 로열 데이비스

작성일 : 2021-12-25 20:31조회 : 2,538

레이건의 장인, 로열 데이비스

미국 대통령 중에 어머니 또는 부인의 영향에 관해서는 알려진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대통령과 그의 장인 장모에 대해선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과 그의 장인, 즉 낸시 여사의 아버지 로열 데이비스(Loyal Davis 1896~1982)와의 관계는 특기할 만하다.

일리노이의 작은 마을에서 철도공의 아들로 태어난 로열 데이비스는 공부를 잘해서 노스웨스턴 대학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신경외과를 전공한 그는 모교 교수가 되었고 36세에 외과 학과장이 되어서 1963년에 은퇴할 때까지 미국 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30년 동안 노스웨스턴 의대 외과를 운영하면서 그는 뇌수술의 최고 권위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권위적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독재적으로 외과학 교실을 운영해서, 지금도 노스웨스턴 의대는 그에 관한 일화가 전설로서 전해내려 올 정도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인 <한 외과 의사의 행로(A Surgical Odyssey)를 남겼다.

데이비스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1929년에 자기보다 나이가 10살 많은 매력적인 연극 배우 이디스(Edith Luckett Davis 1888~October 26, 1987)와 결혼했다. 이디스 역시 성급하게 한 결혼이 실패해서 이혼한 후에 딸 낸시(Nancy Davis Reagan 1921~2016)를 데리고 혼자 살고 있었다. 이디스는 연극 공연 때문에 낸시를 돌볼 수 없어서 낸시는 이모가 돌보았다. 8살에 비로서 새 아버지와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낸시는 새 아버지를 좋아했고 데이비스 역시 낸시를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낸시는 친아버지 성(姓)을 버리고 새 아버지 성으로 바꾸는 입양 절차를 마쳤다. 데이비스는 낸시를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와 사립대학에 보냈고, 스미스 칼리지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낸시는 어머니처럼 배우가 돼서 결국 레이건을 만나 1952년에 결혼하게 된다.

배우로서의 레이건의 전성기는 2차 대전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전쟁 중에 레이건은 미군 방송국에서 전쟁 국채(國債)를 모으는 등 선전활동을 했다. 2차 대전 후에는 영화배우 협회의 대표를 지내면서 낸시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민주당원이던 레이건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쟁 정책과 뉴딜을 지지했지만 그의 자서전에서 지적했듯이 높은 세금은 자체로서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낸시와 결혼을 한 이듬해부터 레이건은 CBS의 TV와 라디오에 <GE Theater>라는 프로를 1962년까지 진행했다. 레이건은 전국에 있는 GE 관련 사업장을 돌면서 자유기업을 옹호하는 방송을 했는데, 그러면서 점차 비대해져 가는 미국 정부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곤 했다. 그는 공기업인 TVA(테네시 계곡 공사)가 댐으로 생긴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멍청한 운하를 건설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는 방송을 했다. 그러자 TVA가 GE에 압력을 넣어서 레이건이 하던 이 방송 프로는 끝이 나고 말았다. TVA는 GE로부터 터빈 발전기를 공급 받는 GE의 중요한 고객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레이건은 방송을 그만 두었지만 10년 동안 이 프로를 운영하면서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됐다. (훗날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적자 공기업 TVA를 민영화해서 없애 버리려고 했으나 납세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TVA를 인수하겠다는 기업은 물론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레이건이 결혼 후에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거대한 정부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데 장인 데이비스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레이건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교회에나 열심히 나갔기 때문에 레이건에게 낸시의 아버지 데이비스는 새로운 인간관계였을 것이다.

레이건보다 15살 많은 로열 데이비스는 레이건이 낸시와 결혼했을 때 전국적으로 명성이 있는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였고, 시카고 최상류 사회의 저명인사였다. 레이건처럼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명문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외과의사가 된 데이비스는 인간은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며 정부의 공적인 규제는 그런 노력과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믿었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동네에 있는 작은 대학을 수영장 인명구조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닌 레이건 역시 미국은 노력만 하면 기회가 열리는 사회라고 믿었기에 두 사람은 공유하는 바가 많았다.

레이건이 낸시와 결혼하고 장인 데이비스를 자주 만났던 10년 동안 레이건은 뉴딜주의에서 탈피해서 시장 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쪽으로 변하게 되며 1962년에는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1964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유명한 연설로 정치적 인물로 부각됐고 1966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됐다. 1965년,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명령하는 등 확전을 하자 전국에서 반전(反戰)시위가 일어났다. 존슨 대통령은 사회복지법을 통과시켜서 65세 이상 노년층에게 연방정부가 의료비의 절반을 부담하는 메디케어(Medicare)를 시행토록 했다.

로열 데이비스는 1960년대에 젊은 층에서 유행했던 장발(長髮)과 히피 문화, 그리고 반전시위를 무척 싫어했다. 또한 정부이건 대학이건 행정적 감독을 받기 싫어한 그는 메디케어가 시행되어서 의사가 복잡한 서류를 작성해서 정부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규제를 받게 된 것을 비판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사위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이처럼 레이건이 메디케어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 데는 장인의 영향이 적잖게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65세 이하의 미국민에게도 의료보험을 들게 하고 정부가 보험료를 보조하는 방안을 구상했으나 1기 임기 동안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그리고 2기 임기 들어서는 워터게이트 때문에 시행에 옮기지 못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메디케어를 비효율적인 관료제도로 보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닉슨 구상에 근거한 개혁을 하려 했으나 힐러리가 나서는 바람에 공화당의 집중적 견제로 실패했다. 뒤늦게 오바마 대통령이 통과시킨 ‘오바마 케어’도 기본적으로 닉슨의 구상에 근거한 것이다.)

- 사진은 1967년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낼 적에 로열 데이비스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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