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군의관과 베트남 전쟁

작성일 : 2024-09-10 20:54조회 : 242

미국 군의관과 베트남 전쟁

사병 복무기간이 짧아진데다가 병사 봉급이 부사관과 초급 장교의 봉급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높아지자 의대생, 또는 의대 졸업생들이 사병으로 입대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의대 증원 파동으로 그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어차피 휴학 중인 의대생 사이에서 병역이나 먼저 하자는 분위기가 있는데, 내년 입시 후에는(입시가 정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듯하다.

전시에도 사병으로 징집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면 사관생도와 의대생이다. 사관생도는 조기 임관을 해서 장교로 전선(戰線)에 내보내면 내보냈지 사병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조지 H. W. 부시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같은 해(1924년)에 태어난 지미 카터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니까 전쟁은 이미 끝난 후라서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2차 대전 중 미국은 과학기술자는 징집을 하더라도 그들의 능력이 필요한 부서에 배치하고 의대생은 졸업을 기다려서 군의관으로 징집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미국은 징집을 하지 않았다. 국가 총력전이던 2차 대전에 많은 의사들이 자원해서 입대했고 국방부는 부족한 의사는 소집해서 충당했다. 이론적으로 의사는 징집(draft)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자원'(obligated volunteer)한 것이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임을 예우해서 ’의무적 자원‘이라는 우스운 용어를 쓴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는 지루한 지상전을 할 것 같아 보이지 않자 미군은 군의관 제도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방부 의무국장이던 프랭크 베리(Frank B. Berry)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베리는 의대생들이 재학 중에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국방부에 약속(pledge)하도록 했다. 인턴을 마치고 입대하거나, 레지던트 1년을 마치고 입대하거나, 또는 레지던시를 완전히 마치고 입대를 하는 세 가지 중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을 Berry Plan이라고 불렀는데, 1954년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자신도 의사인 프랭크 베리가 고안한 이 제도는 큰 병원과 메디컬스쿨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큰 병원은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이는 운영이 어려워서 레지던트 의사들의 입대가 늦추어지기를 원했다.

프랑크 베리는 말년에 남긴 논문에서 자기는 두 번째 경우, 즉 레지던트 1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세 번째 경우, 즉 레지던시가 완전히 끝난 후에 입대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회고했다. 군대를 가기 싫어 한 의대생들은 레지던시를 끝낼 때면 징집 제도가 없어질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다. 병원들은 이들이 계속해서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해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어서 이들의 조기 입대를 만류했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 넌덜머리가 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시는 지상전을 할 생각이 없었고, 소련과의 핵 전쟁에 대비하는데 주력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군에 입대한 의사들은 본국이나 서유럽 또는 일본의 미군 기지에서 편안하게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베트남 전쟁을 시작한 대통령은 케네디였다. 케네디가 암살 당했을 때 베트남에는 미 지상군 병력 2만 명이 있었다. 존슨이 대통령이 된 후에 지상군 병력은 급속히 증가해서 피크이던 1967~68년에는 50만 명이 넘었다. 실전을 치르는 50만 지상군을 위해선 의사와 간호사가 많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서, 1958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또는 레지던트 1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의관은 대위가 되어 본국이나 우방국의 기지에서 편안하게 근무하고 1963년 경에 제대를 했다. 1958년에 의대를 같이 졸업하고 레지던시를 1964년에 마친 후에 입대한 의사는 찬란한 소령 계급장을 달았으나 아시아 대륙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던 베트남에서 근무해야 만 했다. 베트남 전쟁에선 부상당한 장병을 헬기로 후송병원(Evacuation Hospital)으로 이송해서 부상 장병의 생존율이 대폭 올라갔다. 부상을 당하고 한 시간 내에 이송병원으로 후송된 장병의 98%가 생존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그 만큼 부상장병을 1차적으로 치료한 이송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수많은 생명을 구한 군의관 중에는 전문의급(級)인 소령이 많았다.

미 육군 군의단(Medical Corp)은 인턴을 마친 대위 군의관도 외과나 마취과 실무 훈련을 시켜서 베트남으로 보냈다. 인턴을 마치고 입대해서 대위가 된 한 군의관은 실무 교육 당시 지휘관이 마취과를 권해서 마취 의술을 익힌 후 베트남의 야전병원에서 12개월 동안 마취의사로서 외과 군의관과 함께 수술을 했다. 그는 그 때 익힌 마취 의술 덕분에 제대 후 레지던시를 쉽게 하고 마취 전문의로 평생을 살았다. 1968년 구정 대공세 때에는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이송병원의 수술 팀은 잠도 안자고 20시간을 계속 수술을 하다가 탈진해서 두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서 수술을 계속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그 처절한 이송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와 간호사가 말년에 펴낸 책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영웅'(Unsung Heroes)임을 알게 된다.

1973년에 미국이 징병제를 철폐함에 따라 Berry Plan도 막을 내렸다. 그 후 미국은 군(軍) 메디컬스쿨(USU School of Medicine)을 운영해서 군의관을 자체적으로 양성하고, 사관학교 졸업한 장교 중 메디컬스쿨로 위탁교육을 보내거나 의대생에게 장학금으로 주어서 방위군(National Guard)의 예비역 군의관이 되는 식으로 군의관을 충당해 오고 있다. 미군은 월터리드 육군병원과 베데스다 해군병원, 그리고 여러 곳에 있는 보훈병원이 레지던시를 하는 교육병원(Teaching Hospital)이라서 자체적으로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군의관 제도는 Berry Plan을 본 따서 만들어 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군은 그런 방식으로 전문의 자격을 갖춘 군의관을 대위로 임관해서 군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대생과 의대 졸업생이 대거 사병으로 복무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군의관 공급이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군이 필요한 의무인력은 외과, 응급 등 필수의료 의사들이다. 필수 의료 기피에다 군의관 기피 풍조마저 팽배해 지면 도무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국방부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군의관을 마구 차출해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보내는 진풍경마저 벌어지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의대생들이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는 작금의 상황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 사진 (1) : 베트남 전쟁 당시 부상자를 Medivac 헬기에 옮기는 장면. Medical Evacuation Helicopter는 HU-1H 휴이(Huey)로, 링거, 모르핀, 혈액 등 비상 의료품을 비치하고 의무병(medic)이 탑승해서 부상자를 후송병원으로 옮겼다. 이 헬기는 'Dust Off'라는 콜 사인으로 불렸는데, 착륙할 때 흙먼지를 날린다는 의미에서였고, 그러다가 아예 Dust Off로 불렸다. 공산군은 Dust Off가 부상병을 싣기 위해 착륙하는 순간을 노려서 RPG 등으로 공격을 해서 Dust Off 조종사와 의무병 중에도 전사자가 많이 나왔다.
- 사진 (2) : 베트남 이송병원에서 간호장교와 군의관.
- 사진 (3) : 수술 전 응급처치하는 간호장교와 이를 돕는 의무병.

이전글전공의가 사라진 세상

다음글혼돈의 2025년 의대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