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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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채리티 병원
작성일 : 2024-05-22 22:15조회 : 949


채리티 병원


뉴올리언스에 있는 Tulane 의대 병원과 2015년에 새로 지어진 LSU 의대 병원을 보고 감탄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어야 한다. 저런 병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입원하려면 얼마나 들까 ? 사실 그것이 미국 의료의 큰 문제다.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은 노인들에게 주는 메디케어, 그리고 빈곤자에게 주는 메디케이드가 전부다.

1965년에 이 두 제도를 도입한 후 미국은 이를 확대하지 못했다. 따라서 노인이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은 민간보험을 들어서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데 직장이나 학교가 그룹으로 들면 그나마 저렴하지만 개인이 들려면 너무 비싸다. (나도 유학기간 중 단체 보험을 들었지만 한 번도 병원을 가지 않아서 미국 보험회사한테 좋은 일만 했다.) 보험이 있더라도 한도가 있고 커버가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 웬만한 부자가 아니곤 의료비 감당이 쉽지 않다. 

그러면 미국에는 저렴한 공공병원이 없느냐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지금도 많은 곳에는 카운티가 운영하는 병원, 시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으나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미국도 도시화 현상이 심해서 병·의원이 없는 시골 마을이 많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에는 유명한 공공병원이 있었는데, 바로 '채리티 병원'(Charity Hospital)이다. 명칭 그대로 ‘자선 병원’이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유명했다.

내가 뉴올리언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채리티 병원은 2,700 베드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병원 빌딩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다운타운의 랜드마크였다. 채리티 병원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란 타이틀을 가졌었다. 채리티 병원은 1736년에 뉴올리언스에 살던 프랑스 사업가가 유언으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병원을 세우라고 해서 생겨서 뉴욕에 있는 벨뷰 시립병원과 함께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 생긴 가장 오래된 병원이다. 채리티 병원은 가톨릭 수녀회가 운영해 오면서 여러 번 건축을 했다. 수녀회는 부속 간호학교(Nursing School)를 세워서 의료인력을 충당했다, (Nursing School은 3년제이나 졸업하면 대학 졸업생과 똑같이 RN이라고 부르는 정규 간호사가 된다.) 1939년에 주 정부가 마지막으로 증축을 해서  2700 베드 규모의 매머드 병원이 됐고, 그 즈음부터 루이지애나 주 정부가 직접 운영을 책임졌다. 

내가 공부를 하던 시절에 채리티 병원은 전성기를 지나서 주로 가난한 흑인들의 병원이 돼 있었다. 1970년대에 미국은 의사가 부족해서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우리나라 의사를 많이 받았는데, 채리티 병원에도 그렇게 자리를 잡은 한국인 의사가 있었다. 채리티 병원은 역사적으로 Tulane 의대 및  LSU 의대와 긴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두 의대 졸업생들은 채리티에서 레지던시(전공의)를 했고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온 의사들도 그러했다. 한번은 어떤 일로 저녁 늦게 채리티 병원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다운타운 가까운 곳은 흑인들이 사는 공공주택단지로 범죄가 많아서 총을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숨이 넘어가는 응급 환자가 줄을 이었다. 그래서 채리티에서 레지던시를 하면 실력이 는다는 농담이 있었다. 워낙 급한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에 훌륭한 ‘칼잡이’가 된다는 말이었다.

채리티 병원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의료비를 받지 않았다. 내가 살았던 대학 아파트에선 이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외국 학생의 부인이 출산보험도 없이 아이를 가졌는데, 진통이 빨리 와서 채리티 병원에 응급으로 가서 출산을 하고 며칠 입원하고 나왔다. 병원은 청구서를 주면서 능력이 되면 되는 대로 나중에 내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 학생은 한 푼도 안냈다. 그런데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흑인 대부분이 그 병원에서 그렇게 태어났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채리티 병원의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실력이 얼마나 출중할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총 맞은 사람 수술도 매일매일 열 건은 될 테니까 외과 전공의의 실력도 대단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일했던 군의관들이 뛰어난 외과의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005년 8월 말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5등급 허리케인이 닥친 상태에서 제방이 무너져서 해수면 보다 낮은 도시 대부분 지역이 물에 잠기는 등 큰 전대미문의 피해가 발생했다. TV 뉴스를 통해 낯 익은 거리와 건물을 보면서 나는 안타까워했다. 침수를 당한 공공주택 단지의 처참한 모습이 뉴스에 나와서 저기가 미국이 맞는가 하며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빈민층 게토가 돼 버린 공공주택의 생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다행히 Tulane 캠퍼스가 있는 업 타운 지역은 지대가 높아서 피해가 적었으나 Tulane은 학생들이 그 학기 동안은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해야 했다. 뉴올리언스 저지대는 피해가 워낙 심해서 주민을 소개하고 재건을 포기해서 도시 규모가 줄어들었다.

다운타운이 침수됨에 따라 채리티 병원과 규모가 작은 메모리얼 병원이 큰 피해를 입었다. 나흘 동안 외부와 접촉이 되지 않고 지하층 기계실이 완전히 잠겨서 전기와 물이 끊어졌다. 호흡기에 의존하던 중환자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채리티 병원에선 중환자실 환자 9명이 사망했다. 위중한 환자가 많았던 채리티 병원에서 그 정도 희생자가 나온데 그친 것은 기적이었다. 주로 나이든 중환자를 수용했던 메모리얼 병원에선 수십 명이 죽었는데, 의료진이 어차피 죽을 환자를 안락사시켜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도로가 완전히 침수돼서 보트를 동원한 구조대는 고립 나흘 후에야 도착했다. 채리티 병원 건너편에 있던 Tulane 병원은 높은 빌딩이 아니고 옥상에 헬기장이 있어서 헬기로 환자들과 의료진이 무사히 탈출했다.

침수 닷새째 치안유지와 구호 및 복구를 위해 군대가 시내로 들어왔다. 다급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82공수사단을 뉴올리언스에 투입했고 육군 방역부대가 채리티 병원, LSU 병원, Tulane 병원의 지하층에서 물을 빼내고 청소와 방역을 끝냈다. 피해가 적었던 Tulane 병원은 곧 정상화 됐다. 하지만 가장 큰 채리티 병원은 클린업에 3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채리티 병원 의료진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캐서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채리티 병원을 폐쇄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주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그 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굳게 잠긴 병원 문 앞에서 ‘채리티를 재건하라’는 시위가 열리곤 했다. 그렇다면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나?

채리티 병원 폐쇄 조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채리티 병원의 역사와 변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비밀리에 사온 덕분에 오늘날 미시시피 상류 지역인 미네소타부터 미시시피 하구인 뉴올리언스까지의 방대한 땅이 미국의 영토가 됐다. 뉴올리언스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채리티 병원은 규모가 커졌다. 의사를 양성할 필요를 느낀 채리티 병원 의사 3명이 주동이 되어 1834년에 루이지애나 의대(Medical College of Louisiana)를 세웠다. 1847년에 루이지애나 주 의회는 주립대학, 즉 University of Louisiana를 건립했다. 드디어 루이지애나에 대학이 생긴 것이다. 루이지애나 의대는 University of Louisiana의 의대로 편입됐고 채리티 병원을 같이 운영했다.

채리티 수녀회(The Charity Sisters)와 루이지애나 의대가 같이 운영하는 채리티 병원은 1859년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병원이 됐고, 루이지애나 의대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의대가 됐다. 그리고 큰 변화가 닥쳐 왔다. 1861년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루이지애나는 다른 남부 주와 함께 연방에서 탈퇴하고 남부 연합군의 일원으로 북군, 즉 ‘양키 군대’와 전쟁을 시작했다. 남북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났고 남부의 경제와 재정은 너무 피폐해서 루이지애나 대학과 그 의대는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 때 부친 때부터 남부와 프랑스 간의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번 폴 튤레인(Paul Tulane 1801~1887)이란 프랑스계 부호(富豪)가 뉴올리언스에 정착하면서 1882년에 University of Louisiana에 거액을 기부했다. 1884년, 루이지애나 주 의회는 루이지애나 대학의 소유를 학교 재단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대학은 명칭을 Tulane University로 바꾸고 사립대학이 됐다. Medical College of Louisiana는 Tulane Medical School이 됐다. 따라서 Tulane은 주립대학이 사립대학으로 바뀐 매우 드문 경우이다. 오늘날 Tulane은 채리티 병원 의사 3명이 Medical College of Louisiana를 만든 1834년을 설립연도로 보고 있듯이 Tulane은 의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학이다. 

 Tulane 의대는 채리티 병원을 대학연계 병원으로 운영해 왔다. 1925년 Tulane 의대는 젊고 유능한 외과의사 앨턴 옥스너(Alton Ochsner 1896~1981)를 외과학부장으로 초빙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옥스너는 학생들을 혹독하게 가르쳐서 교육 수준을 높였고 채리티 병원 외과를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옥스너는 담배와 폐암과의 연관성을 처음 주장한 학자로 이름이 남아 있다.

한편, 1874년에 루이지애나 주 의회는 루이지애나 농공대학(A&M)을 세워서 오늘날의 루이지애나 주립대학(LSU)의 모체를 이루게 된다. 열악한 주립대학으로 남아 있던 LSU는 급진적이고 대중선동적 정치인 휴이 롱(Huey Long Jr. 1893~1935)이 1928년에 주지사가 됨으로써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휴이 롱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켜서 대공황을 이겨냈고, LSU를 확충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4년간 주지사를 지내고 상원의원이 된 휴이 롱은 반대세력에 의해 암살됐지만 그는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채리티 병원을 증축하도록 지시했고 LSU 의대를 뉴올리언스에 새로 만들도록 했다. LSU 의대가 문을 열어서 뉴올리언스 다운타운에는 채리티 병원과 Tulane 의대와 LSU 의대가 자리를 잡게 됐다. 당시로선 보기 어려운 메디칼 콤플렉스가 다운타운에 생긴 것이다. 그 즈음부터 채리티 병원은 루이지애나 주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1956년, 앨튼 옥스너는 대학을 떠나서 뉴올리언스에 옥스너 병원(Ochsner Hospital and Clinic)을 세웠다. 옥스너 병원은 명성이 높아서 그 후 여러 곳에 병원을 더 열었다. 옥스너는 1981년에 사망했으나 옥스너 의료그룹은 오늘날 미국 남부에 가장 많은 사립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공화당원인 앨튼 옥스너는 루스벨트와 휴이 롱, 그리고 케네디를 싫어했으며 그의 병원 실험실은 CIA가 발주한 비밀연구를 했으며 케네디 암살에도 연루되어 있다고 보기도 한다. 

1960년대까지는 Tulane 의대와 LSU 의대는 별도의 병원을 갖지 않고 채리티 병원을 대학병원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대학병원을  다운타운에 세웠다. 이렇게 되니까 민간보험이 있거나 돈이 있는 백인 환자들은 Tulane 병원이나 옥스너 병원을 가고 채리티 병원은 가난한 사람들만 가는 병원이 되고 말았다. 내가 유학시절에 보았던 채리티 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병원이 된 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채리티 병원은 운영이 힘들었다. 주 정부가 재정을 담당해도 날로 발전하는 의료기술을 도입해서 따라가는데 역부족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21세기가 됐음에도 채리티 병원은 그대로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가난한 사람들, 범죄로 피흘리고 실려오는 응급 환자들, 치유가 불가능한 중환자,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병원 수용이 필요한 사람들에 묶여 있게 된 것이다. 환자들은 거의 흑인들이었고 흑인들 때문에 병원은 과거에 해오던 대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채리티 병원을 운영하는 루이지애나 주 정부는 채리티 병원 문제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채리티 병원의 의료 수준이 낙후되어서 새로운 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지는 오래됐으나  채리티 병원에 들어가는 예산 때문에 새로운 병원을 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유한 환자들은 민간병원인 옥스너 병원과 Tulane 병원을 이용했다. 당연히 고급 의료는 옥스너와 Tulane 병원의 몫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다른 대도시는 도심 재생(Urban Renewal) 붐이 일어서 다운타운이 부활하기 시작했으나 뉴올리언스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공공주택 단지가 가까이 있고 채리티 병원 때문에 그 주변은 밤이 되면 앰뷸란스와 경찰차만 분주하게 오고 가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운 병원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예산이 부족한 주 정부는 이제 채리티 병원을 저해 요소로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허리케인 캐트리나가 닥쳐와서 채리티 병원을 덥쳤다. 군대가 동원돼서 채리티 병원을 복구하고 있을 때 주 정부와 LSU 의대 재단은 이 기회에 채리티를 포기하고 새로운 병원을 옆 부지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채리티 병원은 수녀회 간호사들이 세우고 운영해 온 병원이었다. 그래서 채리티에서 오래 일한 의료진은 가난한 이웃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채리티가 갖고 있는 동력이었다. 주 정부는 이것을 발전에 대한 장애로 보았다. 채리티 병원을 청소하는 데는 3주일이 걸렸다. 주 정부는 병원 폐쇄를 공고하고 건물출입을 봉쇄했다. 기존의 의료진은 주변 공터에 텐트 진료소와 문을 닫은 쇼핑센터 건물에 임시로 차린 진료소로 보내졌다. 허탈하고 분노한 의료진은 다른 병원이나 다른 지역으로 직장을 구해 나갔다. 문제는 채리티에 있던 환자들, 또 채리티가 아니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주 정부는 새 병원 건축에 박차를 가했다. 채리티 건너편 오래된 주택가를 수용해서 건축에 들어갔고 2015년에 University Health Center가 준공됐다. LSU 의대가 운영하는 이 대학병원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큰 병원이었다. 주 정부와 LSU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Tulane과 LSU 사이의 해묵은 경쟁심리도 작용했다. 주 정부는 채리티 병원을 허물겠다고 발표했으나 여기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아서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해 왔다.

2021년 주 정부는 채리티 병원을 리디자인(redesign)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주 정부는 더 이상 병원에 투입할 재정이 없었으나 Tulane 의대와 민간 펀드가 같이 세운 'Tulane Partners'가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기로 한 것이다. 전체 예산은 3억 달러이고 Tulane이 1/3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2022년부터 공사가 시작됐고 완공이 되면 전체 건물 면적의 1/3에 해당하는 40만 평방피트를 Tulane 의대와 병원이 사용하고 나머지는 아파트와 상가로 개발해서 다운타운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채리티 병원은 사라졌으나 그 건물은 남아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됐다. 그러나 채리티 병원에서 태어나서 채리티 병원을 드나들던 그 많은 가난한 흑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사진 : 방치된 채리티 병원 건물. 왼쪽 갈색 건물은 1930년에 세워진 Tulane 의대의 원래 건물. 길 건너에 Tulane 병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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