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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대 정원 증가 논란을 보면서
작성일 : 2024-03-25 16:07조회 : 1,084


의대 정원 증가 논란을 보면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두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세워서 변호사 숫자를 늘린 데 비유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변호사와 의사 숫자는 결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변호사는 많아도 ‘좋은 변호사’는 결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좋은 의사’ ‘필요한 의사’가 확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느 수준의 변호사, 의사 숫자가 그 사회에서 적절한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변호사가 너무 많은 미국은 불필요한 소송(frivolous suit)을 남발해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정상이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그것은 먼 이야기이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고, 민간 의료보험료도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메우는 곳이 공공병원인데, 한밤중에 총 맞은 사람, 마약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실려 오는 병원이 공공병원이다.

로스쿨은 학생들에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데 그친다. 로스쿨 졸업생이 변호사 시험에 붙어서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고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변호사를 알아보고 그를 고용하는 책임은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의뢰인)들에게 있다. 그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좋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는 좋은 로펌에서 연수를 해서 능력있는 변호사가 된다. 그렇지 못한 변호사는 앰뷸런스 변호사가 되든가 법원 주위를 맴돌면서 산다.

하지만 의과대학과 의대생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의대는 의사 시험에 대비해서 가르치는 대학이 아니다. 의대는 정말로 의사를 키워내는 곳이다. 그래서 의대는 대학병원과 파트너가 되어야 하며, 의대 졸업생은 대학병원 또는 그의 준하는 큰 병원에서 수련(지금은 ‘전공’이라고 부른다)을 한다. 이점에서 강의실에서 가르치면 자신의 임무가 끝나는 로스쿨 교수와 의대 교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기존 의대에 정원을 소폭 늘려주는 방법은 가장 쉽고 안정적으로 의사 숫자를 늘리는 방법이다. 이런 쉽고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젖혀 놓고 총선을 앞두고 2000명을 늘리겠다고 나선 이유를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1960년대에 서울에 있는 대학 중 의대가 있는 곳은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이화여대뿐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 박정희 정부는 의대 신설을 허용했다. 그렇게 해서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에도 의대가 생겼다. 1983년에 내가 중앙대에 조교수가 됐을 때 중앙대 병원은 필동(MBN 옆)에 있었다. 나는 물론 잘 몰랐지만 중앙대는 의대와 부속병원을 세우느냐고 모두들 혼쭐이 났다고 한다. 자체 병원이 없어서 성심병원(지금 한림대의 모체가 된 성심병원이다)과 합작을 했다가 그것이 잘못돼서 서로 헤어지는 등 과정이 험난했다. 필동병원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당시 지하철 4호선 공사를 너무 오래해서 병원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용산 철도병원 건물을 빌려서 중대 용산병원을 만들어서 비로소 의대와 부속병원이 제 궤도에 올랐다. 그러니까 의대 인가를 받은 후 15~20년 세월이 걸린 것이다. (2000년 가을에 나는 용산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2001년에 나는 법대 학장이 됐는데, 그 때 의대 학장으로 임명된 교수가 중앙대 의대 1회 졸업생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였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용산병원은 임대를 끝냈고 필동병원 부지와 건물을 동국대에 매각한 후 흑석동 캠퍼스 앞에 오늘날 중앙대 병원 건물을 세웠다.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세우는 것이 이처럼 힘든 것인데, 너무 쉽게 알고 또 정치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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