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19와 오위영

작성일 : 2024-04-21 08:26조회 : 969

4.19와 오위영

해마다 돌아오는 4월 19일을 또 맞았다. 이제 4.19를 실제로 목격하고 기억하는 세대는 우리 연배가 마지막일 것이다. 당시 나는 지금은 종로구청이 들어서 있는 수송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지금은 빌딩이 들어선 도렴동에 살아서 4.19를 직접 목격했다. 집 건너편에 경찰무기고가 있었는데, 그 건물을 헐고 들어선 것이 정부종합청사이다. 4.19는 민주혁명으로 기념하지만 4.19를 가져온 정치세력인 민주당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보수 세력은 이승만-박정희를 자신들의 뿌리로 삼고 있어서 원래 민주당(‘1955년 민주당’)은 백안시한다. 하지만 이승만의 반(反)민주적 통치에 반대하면서도 조봉암으로 대표되는 진보-혁신 노선을 거부한 ‘1955년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세웠던 진정한 보수 정당이었다. 그러나 4.19 후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1년도 못가고 5.16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민주당 정부를 보는 시각은 두 갈래라고 하겠다. 한쪽에선 장면(張勉 1899~1966) 총리가 이끈 민주당 정부가 무능했기 때문에 5.16이 발생해서 그 후 우리가 부강해졌다고 보며, 다른 한쪽에선 장면 정부가 무능해서 장기 군사독재를 불러왔다고 무시한다.

4.19 후 민주당 정부를 이끈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장면(張勉 1899~1966) 총리와 윤보선(尹潽善 1897~1990) 대통령, 그리고 정일형(鄭一亨 1904~1982) 당시 외무장관 정도인 것 같다. (정일형은 정대철 헌정회장의 부친이다.) 1955년 민주당 창당부터 4.19 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 구성과 그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는 오위영(吳緯泳 1902~1978)을 들어야 할 것이나,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오위영은 누구인가 ? 오위영은 1902년 경남 언양에서 출생해서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코베 고등상업학교를 다녔다. 코베 고등상업학교는 코베 대학(新戶大學)의 전신이기 때문에 오늘날로 치면 코베대학 경영학부를 다닌 것이다. 1928년에 졸업 한 후 귀국해서 조선신탁회사에서 일했으며 해방 후에 일본인 경영진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감에 따라 회사를 이끌었고 1947년부터 1950년까지 두취(頭取), 즉 행장을 지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제와 경영에 밝은 오위영을 중앙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경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오위영은 1949년 5월 23일~7월 25일간 민간친선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 사절단은 언론계를 대표한 김동성(金東成 1890~1969), 문화예술계를 대표한 고희동(高羲東 1896~1965), 오위영 등 금융계 인사 3인, 그리고 전용순, 김용완, 김용주 등 경제계 인사 등 총 11명으로 이루어졌다. (김용주는 김무성 전 의원의 부친이다.) 이들은 도쿄와 앵커리지를 거쳐 시애틀에 도착한 후 LA에서 북쪽을 도는 북대(北隊)와 남쪽을 도는 남대(南隊)로 갈려서 일정을 소화한 후 6월 25일에 워싱턴에 도착해서 장면(張勉 1899~1966) 대사와 대통령 특사로 워싱턴에 체류 중이던 조병옥(趙炳玉 1894~1960)을 만난다. 그 다음날 일행은 바로 전날 서울에서 김구(金九)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다. 워싱턴에 오래 체류한 친선사절단은 이어서 뉴욕과 보스턴을 방문하고 7월 말에 귀국한다.

오위영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자주 자문을 하는 등 이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장면 대사가 훌륭하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장면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게 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장면은 1949년 2월부터 2년간 주미 대사를 지내는데, 그 기간 중 6.25 남침이 발생한다. 고향 미주리에서 북한군 침략을 보고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급히 워싱턴으로 돌아오며, 블레어 하우스에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데리고 온 장면 대사를 만나는데, 트루먼은 겁에 질려 울먹이는 장면 대사에게 “내가 그 자식들의 엉덩이(ass)를 걷어 찰 테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등을 두드렸다고 전해진다.)

장면은 1951년 2월에 귀국해서 1952년 4월까지 부산 피난 중에 1년 여 동안 국무총리를 지내나 직선제 개헌을 시도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멀어지고 만다. 과연 이승만 대통령이 오위영의 말을 듣고 장면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전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으로서는 장면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은 실책(失策)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적(政敵)을 키웠기 때문이다.

오위영은 1950년 5월 30일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고향 울산군에 출마해서 당선된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서 자유당을 창당하며 자유당에 입당한다. 하지만 오위영은 장기 집권을 구상하던 이 대통령과 멀어지고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4년 5월 총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포기해 버린다. 1954년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사사오입(四捨五入)이란 희한한 논리를 내세워서 통과시킨다.

사사오입 개헌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하는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이 연합해서 민주당을 창당하자 오위영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55년 9월에 정식으로 창당을 한 민주당에서 오위영은 장면, 정일형 등과 함께 신파(新派)를 이루었다. (신파는 구파 보다 대체로 나이도 젊었으며 보다 선명한 야당색을 띄었고, 4.19 후 장면을 총리 후보로 내세워서 구파의 김도연을 누르고 당권을 장악한다.) 자신의 3선 연임을 저지하기 위한 민주당이 생겨나자 이승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출신인 신익희(申翼熙 1894~1956), 진보혁신 정치인 조봉암(曺奉巖 1898~1959), 장면, 그리고 오위영을 가장 고약한 정적(政敵)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신익희는 195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으나 선거운동기간 중 사망했고, 같은 선거에서 진보당 대선 후보였던 조봉암은 간첩으로 몰려서 사형을 당했다. 1956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된 장면은 한 달 후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하고 부상을 입었다. (그 배후가 자유당 정부였음은 4.19 후 밝혀졌고 범인 2명은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장면 총리는 이들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직접 만나서 용서했다. 장면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오위영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민주당 원내총무로 선출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4.19 후 치러진 7.29 총선에서 경상남도 대선거구에 참의원으로 출마해서 당선됐다. 오위영은 민주당 신파의 책사(策士)로, 장면이 국무총리로 선출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장면 총리의 신임이 깊은 오위영은 국무원 사무처장과 무임소 장관을 지냈으나 5.16이 일어나서 장면 내각은 무너지고 민주당은 해체의 길을 갔다. 장면, 정일형과 더불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1978년 76세로 사망했다.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를 해 온 그는 유신체제로 조국이 암울했던 시기에 눈을 감았다. 오위영은 해방 후 한국 정치의 한 복판에 있었음에도 회고록 등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오위영의 딸 오현주(吳賢珠)는 이화여대 재학 중인 1959년에 미스코리아로 선발돼서 큰 화제가 됐다. 오현주는 미인이었을 뿐더러 ‘오위영의 딸’이라고 해서 더욱 더 유명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姜禹一 1945~) 주교가 오위영의 외손자이다. 오현주는 강우일 주교의 이모이다.

아래는 울주군 향토연구사학자인 정성운 전 논설위원이 2015년에 쓴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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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2015년 11월 29일자 기사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178)] 장면 정부 때 2인자로 승승장구하다…5·16 이후 정계 떠나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승인 2015.11.29 17:53 지면 11면

‘인물로 본 울산정치사’ (18) 오위영

울산에서 2대 총선에 당선돼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던 오위영씨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처음으로 중앙정치의 지도자가 되었고 특히 헌정 초기 울산을 민주당의 신파가 득세하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오씨는 민주당 정권 때는 장면 총리에 이어 민주당의 2인자로 활동했다. 출마 당시 나이는 48세, 주소는 종로구 혜화동, 학력은 고오베(神戶) 상고 졸, 경력은 은행장이었다. 2대 총선에서는 울산에서 무려 1만2000여표를 얻어 현역의 김수선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그는 1902년 언양읍 남부리에서 태어나 1913년 언양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일본의 고오베 상고로 진학했다. 해방과 함께 귀국, 금융조합 이사를 거쳐 1947년 신탁은행장이 된 후 1950년까지 재직했다. 나중에 정치운명을 같이 했던 장면 박사와 친하게 된 것은 1949년 국회의원이 되기 한 해 전이었다. 이 때 그는 우리나라 경제인들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 대사로 있었던 장면 박사를 만나러 갔더니 대사관 시설이 열악하고 직원들의 생활이 어려워 귀국 후 이승만 대통령에게 미 대사관에 재정 지원을 좀 더 많이 해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런 인연으로 장 박사와 친하게 되었다.

이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46년으로 이 때부터 해박한 경제 지식으로 당시 건국 준비에 바빴던 이 박사를 도왔다. 정치인으로 이 대통령을 만난 것은 국회의원 당선 1년 뒤인 1951년이었다. 이 무렵 자유당 창당작업을 벌이고 있던 이 대통령이 그에게 창당에 앞서 줄 것을 부탁해 엄상섭. 이재학, 윤길중 등 사회지도자들을 만나 이 대통령의 뜻을 전하고 창당작업을 벌였다.

- 2대 총선서 당선돼 정치 입문
- 이승만 정부 건국 준비 돕고
- 자유당 창당에 앞장 섰지만
- 정치적 견해차로 민주당 옮겨
- 장기집권에 저항하다 탄압 받기도
- 4대 총선때 부산에서 당선된 후
- 민주당 실세로 전성기 맞지만
- 5·16으로 민주당 정권과 함께 실각

이런 인연으로 2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는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가 상대 후보인 김수선 의원에 비해 선거자금을 많이 뿌릴 수 있었던 것도 이승만 정부의 경찰이 눈을 감아주었기 때문이었다. 2대 총선 때 언양에 살았던 변양섭 울주문화원장은 “오위영 의원은 2대 총선을 맞아 선거운동을 할 때 우리 어머님이 오 의원 제수와 친해 선거운동을 도와주었는데 선거 전 은행장을 지냈던 오 의원은 타 후보에 비해 돈이 많아 선거사무실에 가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참기름을 부어 주어 이 밥이 맛있어 사무실에 자주 가곤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뜻이 달랐던 오 의원과 이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유당이 창단된 후 중앙상임위원장까지 지냈으나 이 대통령이 장기집권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는 민주당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둘 사이도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오 의원은 2대 국회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추진위원장이 되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막는데 앞장섰다. 이 때문에 3대 총선에서는 그가 자유당 정권의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3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유당의 안덕기와 쟁패를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선거 도중 자유당 정권이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원들을 탄압하는 바람에 중도 사퇴했다. 3대 총선에서 자유당이 그를 얼마나 탄압했나 하는 것은 속기록에 나타난 그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3대 총선 때 자유당은 특정 후보에 대해 너무 가혹한 탄압을 했습니다. 자유당이 특정 후보를 정해 놓고 이 후보는 당선을 시켜서는 안된다는 지령을 경찰에 내리다 보니 선거운동원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자유당이 낙선 운동을 벌였던 특정 후보 1호가 조봉암이었고 2호가 신익희 그리고 3호가 오위영이었다. 이중 조봉암은 나중에 진보당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으나 간첩사건에 몰려 사형 당했고 신익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거 유세를 가던 중 열차에서 급서했다.

오 씨에 대한 탄압은 당시 자유당 후보로 그의 라이벌이었던 안덕기 후보에게도 영향을 미쳐 안 후보가 떨어지고 대신 무소속의 김수선 의원이 다시 행운을 잡게 되었다. 자유당의 탄압으로 후보에서 밀려났던 오 의원은 다음날부터 차를 타고 자신의 선거구를 돌면서 “특정 후보를 탄압해 떨어지도록 하는 자유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동안 오 의원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자유당의 안 후보 대신 무소속의 김수선 의원을 찍는 바람에 김 의원이 당선되었다.

3대 총선 불출마로 4년 간 원외에 있었던 오 의원은 1958년 4대 총선 때는 선거구를 부산으로 옮겨 민주당 후보로 자유당의 박선기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원내 총무로 야당의원들을 이끌었고 이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출마 당시 부산의 대선양조를 갖고 있어 경제력이 탄탄했던 박선기 후보는 오 의원과 붙어 낙선했지만 딸 영애(榮愛)가 나중에 울산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정해영 의원의 아들 재문의 부인이 되었다.

정치인으로 오 의원의 전성기는 장면 정권의 2인자로 활약할 때였다. 3·15 부정선거가 발단이 되어 1960년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들어선 민주당 정권에서 그는 무임소 장관으로 당과 정부를 드나들면서 조각(組閣)에 직접 참여하는 등 민주당의 실세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짧았다. 그는 군 인사에서 장도영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천거했는데 장 총장이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박정희 소장이 일으켰던 5·16 혁명을 막지 못해 민주당 정권이 10개월여 만에 붕괴되는 요인이 되었다. 이후 정계를 떠났던 그는 1978년 76세로 영면했다.

울산 삼동면 출신으로 오 의원의 비서였던 신병렬(80) 전 국회의원은 “민주당 시절 2인자로 활약했던 오 의원이 언양을 위해 등억리에 일급수 저수지 설치와 간월산 아래 신병훈련소 건립을 구상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사업을 구상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 시절을 풍미했던 오 의원의 집을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지금은 오 의원 자체를 아는 사람도 언양에 드물다. 언양 도심에서 임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임재곤 약사에게 혹 오 의원이 살았던 옛집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면사무소까지 찾아가 옛 주소로 오 의원의 집을 찾아 주었다. 오 의원 집은 세월이 60여 년이 넘어서인지 선거 당시 선거운동원들이 시끌벅적했을 옛 한옥은 사라지고 지금은 슬라브 집으로 변해 있었다.

- 사진 : 오위영(왼쪽)과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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