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이건을 생각하면서

작성일 : 2024-04-23 19:26조회 : 965

레이건을 생각하면서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영수(領袖)회담’을 한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용어에는 황당한 것들이 많은데, ‘영수회담’도 그 중의 하나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인재영입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인재(人才)’라는 용어는 일반 사회에서도 더 이상 쓰지 않는데, 기껏해야 재앙(災殃)적 인물을 공천하면서 인재를 영입했다고 한다. 정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를 ‘최고회의’라고 부르는데, 공산 소비에트 최고회의가 없어진지도 오래 됐고 5.16 후 있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도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는데, 우리 정당에는 아직도 ‘최고회의’가 있고 그 알량한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사람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한다. ‘영수’와 ‘인재’, 그리고 ‘최고위원’들이 이끄는 정치가 이토록 저질이 됐지만 이들이 토해내는 언어를 그대로 베껴서 기사라고 내어 놓는 언론도 한심하다.

총선 후 보수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어떤 잡지는 난데없이 레이건을 배워야 한다는 특집기사를 실었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레이건을 따라서 파업하는 의사들을 전원 해고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더니 이제는 레이건의 무엇을 배우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얼마 전까지 여당 대표를 지낸 사람을 오찬에 초대했는데, 칭병(稱病)을 하고 고사(固辭)한 모양이다. 원래 한 솥밥을 먹던 사람들인데도 무언가 다른 면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은 레이건 대통령과 부시 부통령이 목요일에 백악관에서 오찬을 하는 모습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임기 초에 철없는 젊은이의 총에 맞아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레이건을 부시 부통령이 방문했더니 부시를 보고 반가워한 나머지 레이건은 들고 있던 물 컵에서 물을 바닥으로 흘렸다. 당황한 레이건은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닦아내기 전에 옆에 있던 수건을 집어서 얼른 바닥의 물을 닦았다. 레이건이 사망한 후 부시는 레이건이 물을 직접 닦을 때 왜 자기가 먼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회고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백악관으로 복귀한 레이건은 매주 목요일 오찬은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는 한 부시 부통령과 단 둘이서 하도록 지시했다. 총상을 입고 큰 일이 날 뻔했음을 느낀 레이건은 유사시에 대비해서 부통령이 국정상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목요일 오찬을 같이 하면서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목요일 오찬은 레이건 임기 8년 동안 계속됐다. 레이건이 백악관을 부시에게 넘겨주는 부시의 취임식 날 레이건이 대통령 집무실 데스크에 남긴 짧은 메모는 ‘목요일 오찬이 즐거웠다’는 말로 끝났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레이건과 8년 동안 함께한 목요일 오찬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되돌아보았다.

나는 지미 카터가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약을 한 해에 군에 입대했고 전역 후 미국 유학 중인 1980년 11월 대선에서 카터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30대는 레이건과 부시의 시대였고,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었다. 레이건과 부시가 미국이 이끌었던 시대에 소련 공산권이 무너졌으니 정말 기적 같았다. 부시가 퇴임하는 날 나는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고,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긴 나는 정교수가 됐다.

- 사진 : 레이건과 부시 목요일 오찬. 2기 임기 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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