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플로리다 횡단 운하'를 아시나요 ?

작성일 : 2008-06-16 17:09조회 : 2,716

(첨단환경 2008년 7월호)

크로스 플로리다 그린웨이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1. 플로리다

미국 남동부 끝에 자리잡은 플로리다 주(州)에선 두 개의 운하 프로젝트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하나는 미 육군 공병단이 키씨미 강을 파서 운하를 만들어 직강화(直江化)하는 프로젝트인데, 1962년에 시작해서 1970년에 완공됐다. 하지만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공사를 했으나 정작 홍수 저감 효과는 별로 없었다. 반면 주변의 습지에서 물이 빠져 자연생태를 망쳤고, 강은 오염정화 기능을 상실해서 오키초피 호(湖)의 수질을 악화시켰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1992년 의회는 강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사업을 승인했고, 1997년에 드디어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키씨미 강 운하는 돈 들여 공사하고 돈 들여 복원하는, 전형적인 세금 낭비 사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다른 하나는 '크로스 플로리다 바지 운하(Cross Florida Barge Canal)'이다. 플로리다 중부를 횡단하는 바지 운하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키씨미 운하 보다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150년 만에 이 운하 구상은 완전히 포기하고 됐고, 운하 예정지에는 자연생태 낙원이 들어서게 됐다. 150년에 걸친 운하 건설 논쟁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려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허구성을 잘 보여 주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2. 플로리다 횡단 뱃길

1803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였고, 1819년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미국에 할양(割讓)했다. 1821년 플로리다는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고 미국령(美國領) 정부가 구성됐다.

미시시피 강을 타고 내려온 선박이 뉴올린스를 거쳐 대서양으로 가기 위해선 플로리다 반도를 돌아가야만 했다. 플로리다 남단을 돌아가는 뱃길은 멀기도 하거니와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했고 카리브 해적이 자주 출몰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플로리다 반도의 상부에 해당하는 멕시코 만 쪽의 시더 키로 흘러가는 위슬라쿠치 강의 상류와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세인트 존스 강을 운하로 이을 수 있으면 뱃길을 단축할 수 있고, 해적과 만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20년대에 오대호와 대서양을 잇는 에리 운하가 건설 중에 있던 것도 이들의 운하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 1824년 플로리다 정부는 연방정부에 대해 플로리다 횡단 운하 건설을 위한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플로리다 정부는 운하가 건설되면 미국의 안보도 강화될 것이며, 중부 지역의 늪지가 개발돼서 백인에 적대적인 세미놀 인디언 부족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826년 의회가 플로리다 횡단 운하를 조사하기 위한 예산을 배정함에 따라 현지 조사가 이루어 졌다. 그러나 그 지역에 살던 세미뇰 부족이 전쟁을 일으켜서 미군이 이들을 평정해야 하는 등 운하 건설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세미뇰 부족과의 전쟁은 1842년까지 계속됐고, 이 전쟁이 마무리 된 후 1845년에 플로리다는 비로소 주(州)로 승격됐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발발해서 운하 건설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남북전쟁은 플로리다를 북부 기업인에게 알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목재회사들이 중부 플로리다 늪지대에 와서 울창한 사이프러스 나무를 대규모로 벌목했다. 부근에선 인(燐) 광산이 발견돼서 광업이 별안간 번창하게 됐다. 개발이 성행함에 따라 운하 건설이 다시 논의됐다. 그러나 1913년 미 육군 공병단은 플로리다 횡단 운하가 큰 가치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플로리다 출신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운하를 건설하기 위한 전방위 로비가 시작됐다. 선박회사들은 중앙의 정치인들을 움직여서 운하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했고, 이에 고무된 플로리다 주 정부는 1931년에 운하 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3. 운하 건설 착공과 반대 여론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해서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자 연방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플로리다 횡단 운하 건설을 추진하던 위원회는 연방정부에 대해 운하 건설을 위한 자금을 요청했다. 하지만 후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193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플로리다 주정부는 실업 해소를 위해서도 운하 건설이 필요하다고 로비를 했다. 1935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드디어 운하 건설예산 500만 달러를 승인했다. 그 해 9월 6일 운하 공사는 시작됐고, 공사 지역은 붐 타운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동시에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여론이 나타났다. 운하와 경쟁하던 철도업계, 운하 건설로 타격을 입게 될 남부 플로리다 출신 의원들, 운하 건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오렌지 농장주들이 각각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반대하고 나섰다. 의회 내에선 아서 반덴버그 공화당 상원의원이 운하 건설은 경제성이 없으며, 의회의 동의 없이 예산을 지원한 것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반덴버그 의원은 운하 건설 예산이 원래 규모인 1억 4천 6백만 달러를 훨씬 초과해서 2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덴버그 의원은 운하는 '돈을 갖다 버리는 구덩이'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반덴버그 의원의 노력에 힘입어 1936년 봄 의회는 운하 건설에 대한 예산을 부결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운하론자들은 플로리다 횡단 운하 건설이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운하론자들의 로비 덕분에 1942년 의회는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던 해군과 육군이 전비(戰費) 조달을 이유로 운하 건설에 반대해서 공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차 대전 후에도 이 운하 건설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때 남부 민주당 표가 필요했던 케네디는 자기가 당선되면 플로리다 횡단 운하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1962년 육군 공병단은 운하의 비용/효과 비율이 1.2 대 1이라는 연구결과를 새로 발표했고, 의회는 예산지원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라이프지(誌)는 이 운하가 "미국인의 세금을 가장 낭비하는 12개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지적하는 특집기사를 내 보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후 취임한 존슨 대통령은 운하공사 재개를 위한 예산안에 서명했고, 이에 30년 만에 공사가 다시 시작됐다.

운하 공사는 예상과 달리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훼손하게 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제 운하는 경제성 불투명과 예산낭비 외에도 환경파괴라는 눈총을 받게 됐다. 운하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은 마조리 해리스 카(Marjorie Harris Carr)라는 여성 생물학자가 이끌었다.

4. 마조리 해리스 카

1915년에 보스턴에서 태어난 마조리 해리스는 부모를 따라 어릴 때 플로리다 중부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매료되었고, 지금은 플로리다 주립대학(FSU)이 된 플로리다 여자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플로리다 주의 연방정부 공무원이 됐는데, 여성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1937년에 그녀는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아치 카(Archie Carr)와 결혼했다. 아치 카는 모교의 교수가 되어 열대 우림의 자연과 바다 거북이의 생태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었다. 마조리는 1942년에 플로리다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다섯 아이를 기르기 위해 직장생활은 포기했다. 아이들이 자란 후 마조리는 자연보호운동을 시작했다.

1962년에 플로리다 횡단 운하 공사가 다시 시작되자 마조리는 이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해 나갔다. 남편과 남편의 동료 교수들이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65년 뉴욕타임스는 "플로리다 운하 공사를 중단하고 운하 공사가 이루어지는 오클라와나 수계(水系)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공익에 보다 이바지하는가를 검토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1966년에는 플로리다 주정부 각료와 마조리 등 운하반대운동가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1969년에 접어들자 여론은 마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그 해 7월 마조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플로리다 환경의 보호자(The Florida Defenders of Environment : FDE)'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1969년 9월 이 단체는 운하 공사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해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1969년 말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NEPA)를 통과시켰고, 닉슨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1970년 3월, FDE는 운하에 대한 자체적인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FDE는 운하가 비용/효과적이지 못하고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결론내렸다. 이 평가서는 비록 민간단체가 자체 작성한 것이지만 환경영향평가서의 효시로서 인정받고 있다.

5. 닉슨 대통령의 결단

1970년 말, 환경정책법에 의해 설치된 환경평의회(CEQ)는 이 운하 공사를 중단할 것을 권고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1971년 1월 15일 연방지방법원의 바링턴 파커 판사는 공사 중단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파커 판사는 FDE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에 근거해서 공사를 중단하고 보다 상세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흘 후 닉슨 대통령은 "심각한 환경훼손을 막기 위해 본인은 오늘 플로리다 횡단 운하 건설 공사를 중단하도록 명령한다"고 선언했다.

플로리다 주정부는 이에 소송으로 맞섰다. 1974년 1월 다른 연방지방법원의 하비 존슨 판사는 의회가 예산을 배정한 운하 공사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존슨 판사는 공사를 계속하기 위해선 연방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1976년 8월 육군 공병단은 오클라와나 유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발표했다. 공병단은 또한 운하 완공에는 3억 7천만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공병단은 이미 공사 재개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편 플로리다 주의회를 차지한 새로운 정치인들은 운하를 환경적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또한 플로리다 전역을 거미줄 같이 잇는 고속도로가 완공돼서 운송수단으로 운하는 도무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한 류빈 애스큐 플로리다 주지사는 1976년에 특별 각료회의를 열어 운하 공사를 중단할뿐더러 이미 공사를 한 부분도 원상회복하기로 결정했다. 마조리 해리스 카가 승리한 것이다.

6. '마조리 해리스 카 크로스 플로리다 그린웨이'

1990년대 들어서 중단된 이 운하를 되돌리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운하 공사 과정에서 건설된 로드만 댐, 그리고 운하 부지 주변의 지방정부가 지출한 비용 등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1997년 10월 마조리 해리스 카는 82세로 사망했다. 그녀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던 남편 아치 카 교수는 1987년에 78세로 이미 사망했다. 플로리다, 중남미 등 열대지역의 생태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아치 카 교수는 플로리다 대학의 모든 학생이 그의 명강의를 듣고 난 다음에 비로소 졸업했다는 전설을 남겼다.

1998년 플로리다 주정부는 운하 건설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토지를 자연생태계 그대로 보전해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운하 경로를 따라 보전되는 통로를 '마조리 해리스 카 크로스 플로리다 그린웨이(Majorie Harris Cross Florida Greenway)'로 명명했다. 운하를 건설하려던 황당한 꿈이 녹색 낙원 건설로 귀결된 것이다. 황당한 '정치 사기극'인 한반도 대운하에 집착하는 멍청한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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