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조선일보의 처방

작성일 : 2008-06-21 00:47조회 : 2,031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조선일보의 처방

(2008년 6월 21일)

이번 주 조선일보엔 이명박 대통령의 진로에 대한 두 편의 흥미있는 칼럼이 실렸다.

하나는 내가 오랫동안 모셨던 김대중 논설고문(전 주필)이 쓴 16일자 칼럼(‘MB 일생일대의 결단’)이고, 또 하나는 2003년 한 해 동안 모시고 일했던 강천석 주필의 20일자 칼럼(‘국민의 바다에 뜬 대통령의 선택’)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김대중 고문의 주문(注文)은 단호하다. 칼럼의 마지막 부분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남은 것은 이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정치적 도박이라고 해도 좋다. 그에게는 신뢰와 권위를 회복할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최선을 다해, 사력을 다해 자신이 선택됐던 '의미와 가치'에 충실하게 임한 뒤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는 각오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촛불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5년을 지리멸렬하게 가는 것은 대통령의 길이 아니다. 하는 일마다 시청 광장에 모인 반대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하지 마라하며 '명령'하는 수모를 당하며 사는 것은 대통령의 삶이 아니다. 오늘의 사태도 그 때문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최대 취약점은 항상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김 고문은 이 대통령에 대해, 소신있게 일한 후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도박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아예 그만 두라고 요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강천석 주필의 주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강 주필은 현재 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두개의 상반된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국민에게 무조건 전면 항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법과 질서의 명분 아래 성난 국민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에 투항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으로 들리더라도 결국 정권은 종말을 맞는 것이라 선택하기에는 무모한 것이라 했다. 두 번째 방안은 또한 선택하기가 불가능하다고 강 주필은 보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권위가 바닥난 상황에서 국민과 정면대결한다면 시위는 상시화(常時化)할 것이고, 정권은 청와대 담장 안에서 전경의 보호하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어느 것도 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강천석 주필은 권고한다. “대통령은 오늘부터 정직과 포용과 겸손과 인내의 세월을 살아야 한다. 허영과 오만과 독선은 전부 강물에 내던지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원칙 몇 개만을 껴안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야 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원리는 나와 남, 동지와 경쟁자 모두를 차별 없이 비추는 평등한 진리라는 믿음을 가슴에 지니고서 말이다.” 즉, 거의 식물상태 대통령으로 임기나 채우라는 말이다.

김대중 고문과 강천석 주필의 처방은 다르지만 처방의 기초가 되는 현실 판단은 같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식물’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이 사태를 1년 전에 왜 미리 보지 못했나 하는 것이다.

작년 바로 이맘때 한나라당 경선이 막바지에 접어 들 무렵 이명박 당시 경선 후보는 건강보험료 월 2만원 납부, 위장이전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이명박 씨를 구하고자 뛰어든 백기사(白騎士)가 김진홍 목사와 조갑제씨였다. 작년 7월 6일 김진홍 목사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친인척이 다 깨끗한 사람이 공자님이나 있지 어디 있냐?”면서, “이 시대에 허물없이 조용한 사람은 그동안 일을 안했거나 본래 쪼다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면서 이명박 씨를 적극 옹호했다.

같은 날 조갑제 씨는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윤리 선생 뽑는 것이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은 일반국민들의 도덕성 보다 평균적으로 낮다고 보아야 하며, - - 정치인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위선적 검증이 된다”고 말했다. 조갑제씨는 또한 도덕성은 “좌파가 파놓은 함정”이며, “부자가 더 도덕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났다. 이명박씨는 대통령이 됐으니 그만 '식물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법과 질서는 국민을 강제하는 물리력만으론 유지될 수 없다. 적정한 도덕적 권위가 권력을 받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2008년 6월 20일자 강천석 칼럼의 구절을 읽으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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