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서울법대 1970학번 동기생
2020-06-11 22:53 24 이상돈

4월 5일 ·

다시 시계바늘을 1970년대 초로 되돌려보고자 한다. 그 시대를 겪어 보지 않은 세대에겐 신기하게 들릴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대권후보 1위인 이낙연과 큰 집에 들어가 있는 원세훈이 나와 대학 동기라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대학입학을 위해선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예비고사를 합격하고 그 다음 대학별로 치르는 입시경쟁을 뚤어야만 했다. 각 학과별로 경쟁율과 커트라인은 공개되었기 때문에 학과순위가 공공연하게 매겨지곤 했다. 서울대 입시는 서울대 교수들이 출제하고 채점했는데,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 공부로는 법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정치외교과, 그리고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의예과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입학한 1970년에는 550점 만점에 커트라인이 250점을 넘는 학과는 앞서든 7~8개과 정도였다. 그 만큼 시험문제가 어려워서 당일 실수로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변별력이 확실한 입시이었다.

1970년 서울법대 입학생 160명 중 경기고 출신이 48명, 서울고가 10명, 경복고가 5명이었다. 그 외 용산 중앙 등 서울지역 고교는 대략 한두명 정도가 들어왔다. 반면에 경북고, 광주일고, 전주고, 부산고, 경남고 등 지방명문고 졸업생이 많았으니 그 때만해도 수도권 집중이 심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여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서울법대에 여학생이 입학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보다 4~5년 후부터다.

경기고 출신 동기생 중에선 이주영과 신기남이 국회에 진출했고, 서울고 출신으로는 모교 민법교수를 하다가 대법관을 지낸 양창수, 그리고 지금 큰 집에 가있는 원세훈이 있다. 경복고 출신으로는 검찰에 몸답고 있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곽상도 후임으로 잠시 민정수석을 지낸 홍경식과 풀무원 식품을 굴지의 식품회사로 키우고 한국의 식품산업을 업그레이드한 남승우가 있다. 나는 남승우야말로 우리 동기는 물론이고 서울법대를 빛낸 매우 자랑스러운 동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풀무원식품은 원혜영 의원의 부친인 고 원경선 선생께서 세우신 생명농업운동이 그 뿌리다. 원 의원은 남 사장과 경복고교 동기인데, 유신반대운동을 하느냐고 학교도 제대로 못다녔다. 풀무원을 어렵게 유지하던 원 의원은 집이 부유한 친구 남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러자 대학 졸업 후 현대건설에 다니던 남 사장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그 요청을 받아드렸던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사정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알게됐다. "남승우가 두부 콩나물 장사를 한다"고 해서,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던 것이다. 원 의원이 정치를 시작하자 회사는 남 사장이 이끌어 갔고, 세월이 흘러 풀무원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식품회사로 성장했다.얼마전 남승우는 풀무원 사장직을 물러났고, 원혜영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물러나는 모습도 아름답지 않은가.

정당에 지급되는 선거보조금 
낙관론자들은 무어라 말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