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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력의 부재와 전략적 실수(게시판에서)

작성일 : 2008-07-03 08:16조회 : 1,997

(인문학도 님께서 현 정부의 상황인식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려 주셨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앞으로 옮겼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상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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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력의 부재와 전략적 실수

인문학도 2008-07-02

태평양 전쟁 당시 미해병대와 일본 육군은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이라는 작은 섬을 놓고 사투를 벌였습니다. 미국 측으로서는 이 지역을 사수해야만 호주와 미국을 이어주는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일본 측으로서는 반대로 이 지역을 탈환해서 호주로 진출하는 발판을 삼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차대전 최고의 혈전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과달카날 전투는 그러한 이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해병대가 과달카날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 육군은 이미 인근 라바울 섬에 대규모의 기지를 건설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과달카날의 미해병대를 압도할 수 있을만한 전력을 투입할 여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과달카날 전투 기간동안 일본 육군은 단 한번도 그러한 대규모 병력 투입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과달카날에 전개한 미 해병대의 병력 규모를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2만명 가량의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었지만, 일본 육군은 3천~5천명 정도만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양인은 야간 전투에 약하다'는 식의 허황된 정보에 기대어 전략을 구성함으로써 결국 소규모의 증원대를 축차적으로 투입했다가 전멸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결국 이 전투의 승리는 미해병대에게 돌아가고, 이것은 곧 태평양 전투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죠.

오늘 신문 기사를 보니 역시나 정부와 여당, 청와대는 이번주에 집중되는 종교인들의 집회 참여에 꽤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상황이 이만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엄정대처' 운운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불법가두집회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하여 사실상 사제단의 가두 행진을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고, 당내 여론 역시 엄정대처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 현재 흘러나오는 기사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정부 여당은 어째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요? 기사 중에 한 청와대 관계자라며 익명으로 언급된 이의 발언 속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촛불집회가 종교인들의 참여로 또다시 번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종교인들이 참여한 것일 뿐'이라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더군요. 청와대는 시위의 대응에 대해서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여당이 나선 것을 봐서는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입을 맞춘 듯합니다. 즉, 정부와 여당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일부 진보계열 종교인들이 나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한승수 총리가 조계사를 방문하려다가 취소한 것도 이런 정도의 상황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겁니다. 만일 정부 여당이 불교계의 전면적인 반발을 예상한 것이라면 총리의 방문 정도로는 해결될 리 없음을 깨달았을 테니까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인식'의 출처가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그 책임을 소위 '조중동'이라고 불리우는 보수 언론에게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부 여당 인사들이 현 상황에 대해 보여주는 시각이라는 것이 최근 며칠동안 보수 언론의 사설이 보여준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시국미사에 대해 일부 정치적 성향을 지닌 종교인들이 참여한 것이라고 애써 축소하여 판단하려 한 것은 미사 첫날 중앙일보의 사설이나 그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사설 및 기사 등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은 시국미사를 둘러싼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시국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천주교의 한국 교구 전체가 들고 일어났음을 시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애써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군대로 치자면 가장 냉정해야 할 정보 계통이 아군의 열세를 드러내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적군의 규모를 축소해서 보고하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군'과 '적군'이라는 비유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주시길...)

지금 보수 언론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논조가 바뀌었다거나 정부 시책에 찬성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문제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주어진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1차적인 '공정'에서 실패를 겪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는 고스란히 현 정부 여당의 전략적 실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현 정권이 지금의 사태를 '일부 진보 성향 종교인들의 참여'로 믿고 이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한다면 파국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적어도 현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 언론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판단 미스를 지적하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정권의 판단 착오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니 참으로 암담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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