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인근로계층과 대중문화

작성일 : 2020-10-30 09:39조회 : 1,789

백인근로계층과 대중문화

트럼프가 연설할 때 주변에 서 있는 지지자들을 보면 미국 공화당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한다. 공화당은 남북전쟁 직전에 민주당에 반대하는 북부 정치세력들이 만든 정당으로, 북동부 기업가/엘리트 중심의 정당이었다. 루스벨트/트루먼의 민주당 집권이 20년이나 계속된 데다가, 케네디/존슨 민주당 정권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The Civil Rights Act을 제정하자 공화당은 흑인과 소수인종의 지지를 상실했다. 공화당은 남부 전략을 강화해서 레이건/부시 시절 들어서 남부를 장악했으나 그 대신 동북부를 상실했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매케인/페일린 후보가 실패하자 평범한 백인들 중심으로 티파티 The Tea Party 운동이 일어났다. 새러 페일린은 그들의 우상이었다. 2012년 대선에선 이들이 지지하는 폴 라이언이 공화당 부통령후보로 나섰지만 오바마를 꺾지는 못했다.

그 즈음 히스토리 채널은 백인 블루칼라 계층을 다룬 리얼리티 쇼를 시작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프로의 원조는 디스커버리 채널이 2005년에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죽음의 어획> Deadliest Catch이라고 해야 겠다. 알래스카 근처 베링해에서 조업하는 킹 크랩 어선의 위험한 현장을 다룬 프로인데, 등장하는 인물과 어선은 다르지만 스토리는 똑같은 쇼를 16년째 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방송한 <얼음 도로 트럭운전사> Ice Road Trucker는 알래스카 북단의 석유 생산기지까지 위험한 운행을 하는 대형 트럭 운전사들의 애환을 그린 리얼리티 쇼인데, 매회 시청자가 300만 명이나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히스토리 채널은 2010년에 루이지애나 늪지대에서 악어 사냥으로 생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늪지대 사람들> Swamp People을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대성공이었다. 2012년에는 <산 남자들> Mountain Men을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산간에서 일하는 벌목공과 오지에서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수백만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역시 히스토리 채널 등이 상영한 <오리 왕조> Duck Dynasty는 서부 루이지애나에 살면서 오리 사냥 관련 사업을 하는 일가족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2012년에 시작한 이 프로는 시청자 1,000만 명을 돌파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 2017년에 종영했다. 열렬한 기독교신자이고 대가족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덕분에 큰 부자가 됐다. 이들의 생활방식과 의복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이 프로들은 출연자가 한결같이 백인 블루칼라 계층이다. 흑인을 차별해서 배제한 것이 아니다. 흑인들은 이런 지역에 살지도 않고 이런 일을 하지도 않는다. 포드 F 시리즈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는 백인 근로계층은 이런 쇼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환경운동가, 동물보호운동가, 또는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이런 프로를 보면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 고층빌딩에서 깨끗한 양복을 입고 일하며 벤츠와 렉서스를 타고 다니는 엘리트 계층이 이런 프로를 본다면 딴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들이 다룬 사람들도 미국인이다. 대서양을 건너와서 미 대륙에 정착한 그 시절 미국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미국인이다. 이들은 트럼프를 자신들의 존재와 가치를 대표해 줄 대통령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포용할지는 트럼프 이후의 공화당이 안고 있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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