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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지 H.W. 부시, 1944년 태평양
작성일 : 2020-12-23 16:45조회 : 111


조지 H.W. 부시, 1944년 태평양

2018년 11월, 94세로 세상을 뜬 조지 H. W. 부시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었다. 2차 대전 당시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에서 겪은 경험은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교를 졸업한 부시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해서 조종사 훈련을 받고 1943년 6월에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미 해군 최연소 조종사였던 부시는 3인승 어뢰폭격기 어벤저(Avenger) 훈련을 마치고 제51 편대(VT-51)로 편입됐다.

경(輕)항모 산 재신토(USS San Jasinto)함에 승선한 부시의 편대는 1944년 5월 태평양 마셜 군도 해역에 도착해서 웨이크 섬을 탈환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샌 자신토 함은 미군이 일본 항모 3척을 격침하는 혁혁한 승리를 거둔 필리핀 해 전투에도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룸메이트와 또 다른 친구가 출격 후 돌아오지 못하는 슬픔을 겪었다. 부시는 8월 1일자로 중위로 진급했다.

1944년 9월 1일, 부시가 속한 51편대는 치치지마(父島)에 있는 일본군 통신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출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귀환했다. 다음날인 9월 2일 아침, 51편대는 치치지마를 파괴하기 위해 다시 출격을 했다. 부시가 조종하는 어벤저의 사수(gunner)는 레오 내도라는 사병이었는데, 그 날은 샌 재신토 함의 함상(艦上) 장교이던 테드 화이트 중위가 어벤저를 타 보고 싶다고 해서 레오 내도 대신 사수 석에 탑승했다. 부시보다 여섯 살 많은 화이트 중위는 예일 대학을 나왔고, 그의 부친과 부시의 부친이 예일대 동문으로 친구였다. 부시는 만일의 경우를 걱정했으나 함장은 화이트 중위의 탑승을 허락했다.

부시가 속한 편대가 치치지마에 도달하자 일본군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부시는 타깃인 통신시설을 향해 급강하했는데, 이때 대공포에 맞아서 엔진에 불이 붙었다. 그럼에도 부시는 폭탄을 정확히 투하하고 급상승해서 치치지마를 벗어났다. 어벤저가 출력을 상실하자 부시는 뒷좌석에 탄 화이트 중위와 델라니 대원에게 탈출하라고 지시하고 자신도 뛰어 내렸다. 2000피트 상공에서 낙하산이 펴진 부시는 어벤저가 바다에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부시는 바다에 깊이 빠졌다가 떠올라서 구명대를 잡아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부시는 뒷 좌석에 탔던 두 사람을 찾았으나 바다에는 자기 혼자뿐이었다. 부시가 추락한 모습을 본 편대장은 추락지점을 항모에 알렸고, 그러자 10마일 밖에 있던 잠수함 핀백(USS Finback)함이 부시를 구조하러 다가왔다. 3시간을 바다에 떠 있던 부시는 이렇게 해서 조종사 구출 업무를 수행하던 잠수함에 의해 구조됐다. 부시가 구조되는 장면은 잠수함 사진사가 촬영해서 공개되어 있다.(사진)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 동안 이렇게 잠수함을 동원해서 바다로 낙하한 미군 조종사 500여명을 구조했다. 바다에 떠있던 이들의 눈앞에 미군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불쑥 올라올 때 느낀 기분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할 수 있다.

부시를 구조한 잠수함은 한 달 동안 부시처럼 바다에 추락한 조종사를 추가로 구조한 후 미드웨이에 입항했다. 부시는 좁은 잠수함 속이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으며 음식은 좋았으나 샤워를 1주일에 한번 밖에 못했고 운동이 부족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낸 부시는 다시 샌 자신토 함에 복귀해서 1944년 11월 13일 마닐라 만 전투에 참가해서 일본 경순양함에 폭탄을 명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부시의 원래 사수였던 레오 내도가 동승을 했다. 그 후 부시는 새로운 편대에 편입되어 일본 본토 공격을 준비했으나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전쟁은 끝났고, 부시는 전역을 했다. 부시는 총 58회 출격을 했고 항모에 126회 착륙을 했으며, 전쟁기간 중 1,228 시간을 비행했다. 부시는 매우 탁월한 조종사였고 훈장을 여러 개 받았다.

부시의 어벤저에 탑승했다가 실종된 2명은 사망으로 처리됐다. 한 명은 탈출했으나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서 그대로 추락했고 다른 한명은 어벤저와 함께 추락했다고 확인됐다. 부시는 자신만이 살아 돌아온 데 대해 책임감을 평생토록 느끼고 살았다. 부시는 왜 자기만 살아 돌아와야 했던가를 늘 생각했다고 한다. 2002년 여름, 부시는 치치지마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부시는 바닷가에서 어벤저가 추락한 바다를 향해 화환을 두 개 던졌다. 그 아래 잠들어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제 그 참혹한 과거를 잊을 것이라고 했다. 부시를 만난 사람 중에는 나이 많은 현지 일본계 주민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 바닷가에서 잠수함이 물위로 불쑥 올라오더니 구명정에 타고 있던 조종사를 구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부시에게 이야기했다.

치치지마는 일본 본토와 이오지마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일본군 25,000명이 주둔하는 통신중계시설과 레이다 기지, 그리고 삼엄한 대공(對空)포대 시설이 있었다. 미군은 해군기를 보내서 부시가 격추된 1944년 9월 2일에 비로소 통신탑 시설을 파괴할 수 있었다. 치치지마 공격 중 격추된 해군 폭격기 조종사 등 승무원 중 오직 부시만 살아남았고, 나머지 8명은 포로로 잡혀서 고문당하고 참수당했다. 일본군은 이들의 인육을 먹는 의식도 했다. 미군은 치치지마에 상륙하지는 않았고, 섬에 있던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후 항복했다. 포로 학대와 살해가 밝혀져서 일본 주둔군 사령관 등 장교 4명은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졌고, 수십 명이 징역을 살았다. 부시는 바다로 낙하했기 때문에 포로로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치치지마를 파괴하기 위해 헌신한 젊은 미 해군 조종사들의 활약은 2003년에 제임스 브래들리가 펴낸 <Fly Boys>에 잘 나타나 있다. 태평양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미 해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부시처럼 20살 안팎의 보이(boys)들이었다. 부시는 2002년에 치치지마를 방문할 때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브래들리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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