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본능에 따른다는 것 (재미교포 님의 글, 게시판에서)

작성일 : 2008-07-16 20:58조회 : 1,861

(* 미국에 사시는 해외교포 여성이신 Pulsar 님이 게시판에 올려 주신 글입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앞으로 옮겼습니다. 문단 구성 등 약간의 편집을 하였아오니, 그 점에 대해 필자 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상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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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따른다는 것

Pulsar (2008-07-16)

지난 번에 조갑제 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글을 올렸던 해외 교포입니다. 교수님을 비롯하여 몇 몇 분들께서 올리신 답변, 잘 읽었습니다.
답변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체념이 되었습니다. 조갑제 씨 개인이 아니라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체념이겠지요.
이렇게 체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제되지 않은 언어에 대한 거부감이 조갑제 사이트에 대한 일차적인 느낌이었기에
그곳의 본질이나 왜 그런 담론이 구성되는 지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아졌었지요. 물론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아고라, 노노데모, 또는 PD수첩 게시판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만, 성질이 달랐습니다.("바른 말 고운 말 쓰라"는 식의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

아마 촛불 시위에 참석하는 주부들도 그런 "본능"을 따랐을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고 정부는 말하나, 결코 자의적인 선택으로 가려 먹을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 아이들의 건강....이러한 것들은 주부들에게는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몇 달러를 더 주고서도 "유기농 쇠고기"라고 쓰여져 있는 것만 사려고 노력합니다. 저로서는 나름대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입니다. (기껏해야 몇 달러이지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처럼 가격 차이가 큰 것도 아닙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주부들은 시스템자체를 개선시키고 바꿔보겠다고 거리로 나왔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만약, 저도 한국에 살았더라면 저 역시 제 본능에 따라 촛불 들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쇠고기 원산지 표기를 한다고 해도 여러 정황들을 볼 때, 결코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촛불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생존권,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는 거 자체가 사실 마음 아프고, 후진국스러운 일입니다.

검역은 국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쇠고기 문제는 검역 문제에 있어서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할 지언정 미국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관심 사안입니다. 신경쓰면 가려먹으면 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검역 시스템의 문제 등 원론적인 문제로 가면, 시스템 개선 현안은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시민들을 대신하여 정부에게 요구하고 투쟁합니다. 그들을 위해 시민들은 도네이션도 하고, 격려도 합니다. 생활화가 되어 있지요.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해 미국인들은 생업을 둘째로 하고 거리로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만큼 시민단체, 비영리 단체들이 각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정치, 정권에 눈치보지 않고, 나중에 정치권에 들어가서 자리 꿸 생각하지 말고, 또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들의 소리를 제대로 전해주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었다면, - - -, 그리고 정부도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협의하려는 자세가 있었다면,
세계가 놀랄 정도로 보통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지식인 범주의 조갑제 씨나 아고라나 노노데모같은 사이트에서도 원색적인 발언으로 선동의 쑥대밭이 되고 그토록 분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이 시민들의 분노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시민들에게 사죄해야 할 때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역할을 못했노라고.
잘 된 풀뿌리 시민 단체들이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들 의식있는 단체라고들 자부합니다만, 시민들을 대표하여 원래의 설립 취지를 관철시킬만큼의 능력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고라인도 안됐고, 노노데모도 안됐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활용하는 언론들도 안됐습니다.
서로 악에 부쳐서 있는 모습으로는 개선이 안됩니다.

뜨거운 심장들만 있는 한국입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피가 흐를 수 있는 핏줄들이 약합니다.
뜨거운 열기가 해외까지 전달되어 오지 못하는 것은 그 핏줄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 참고로, 미국은 쇠고기 등급이 잘 되어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한국의 최상급 불고기 감이 미국에 수입된다고 해도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스테이크를 주로 먹는 미국인들은 마블링의 상태에 따라서 좋은 급을 가립니다. 지방질이 별로 없는 한국 불고기 감은 이곳에서는 인기가 없는 탓입니다.
기름이 없는 부분을 잘 요리할 수 있도록 한국은 찜이나, 불고기 요리들이 발달하였습니다. 마블링이 잘 되어 있는 미국의 최상급 쇠고기도 한국에 가서는 인기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등급의 문제도 문화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가끔 미국산 쇠고기 등급 문제를 거론하는데, 저는 이것의 품질 문제를 좀 문화적인 차이에서 봤으면 합니다.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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