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겐하임 미술관

작성일 : 2021-04-20 21:36조회 : 1,725

구겐하임 미술관

4월 15일자 중앙일보에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났다. (지면 18면 우단 아래)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기초로 만든 기사인데.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부분이 있다. “게리의 실험정신 덕에 쇠락해가던 빌바오는 관광객이 가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났고, 뉴욕시 구겐하임 미술관은 전세계인이 찾는 장소가 됐다.” 맨해튼을 가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이런 기사를 썼으니 도무지 그 신문이 어떻게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솔로먼 구겐하임 뮤지엄(The Solomon Guggenheim Museum)은 1939년에 문을 열었는데, 프랭크 라이트(Frank Lloyd Wright : 1867~1959)가 설계했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나선형 건물로 초현대 건축 시대를 알린 미술관이었다. 내부도 나선형으로 되어 있고 칸딘스키 등 초현대 작가의 작품을 소장 · 전시하고 있어 뉴욕에 가면 줄서서 들어가 보는 명소가 됐다. 솔로먼 구겐하임(Solomon Guggenheim : 1861~1949)은 거대한 부(富)를 축적한 구겐하임 가문을 세운 마이어 구겐하임의 아들로, 미술품을 많이 수집했으며 구겐하임 재단을 만들었고 재단은 뉴욕 맨해튼에 이 뮤지엄을 열었다.

1997년, 구겐하임 재단은 스페인 바스크 지역인 빌바오 시 강변에 또 다른 구겐하임 뮤지엄을 열었다. 티타늄으로 건설된 이 초현대식 건물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 1929~ )가 설계한 것이다. 구겐하임 뮤지엄 덕분에 빌바오가 유명해 져서 관광객이 몰려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20세기 후반기의 주목할 만한 건축물임이 틀림없다. LA에 기반을 둔 프랭크 게리가 주목을 받는 건축가로 각광을 받을 때 언론은 그를 ‘또 다른 프랭크’(Another Frank)라고 지칭했다. 20세기 전반기에 프랭크 라이트가 있었다면 후반기에는 프랭크 게리가 있다고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인이니까 미국 언론이 자부심을 가질 만도했다.

구겐하임 가문이 남긴 미술관은 하나가 더 있다. 솔로몬 구겐하임의 동생인 벤자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 : 1865~1912)의 딸인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 1898~1979)이 남긴 이태리 베니스에 있는 미술관이다. 공식명칭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The 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다. 페기는 자신이 살던 베니스의 저택에 자기가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했는데, 그녀가 사망한 후 구겐하임 재단이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장품은 그녀의 취향인 모더니즘 추상이다. 페기의 아버지 벤자민 구겐하임은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사망했다. 벤자민은 여자와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는 것을 도운 후에 정장 차림으로 추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벤자민 구겐하임과 같이 타이타닉을 탄 그의 젊은 정부(情婦)는 구조되어서 무사하게 뉴욕에 도착했다.

나는 베니스의 페기 뮤지엄은 2004년에, 그리고 구겐하임 빌바오는 2010년에 가 보았다. 건물이야 구겐하임 빌바오가 웅장하고 대단하지만 당시 전시 내용은 별로였다. 뉴욕 구겐하임과 베니스 구겐하임의 소장품 전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은 돈으로 짓지만 내용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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