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랭크 게리, 로욜라 로스쿨

작성일 : 2021-04-20 22:00조회 : 1,760

프랭크 게리, 로욜라 로스쿨

나는 1996년 가을에 중앙대 안식학기를 맞아 LA에 있는 로욜라 로스쿨에서 교환교수로 한학기를 지냈다. 좋은 추억이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1929~ )가 설계한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생활했던 것이 그러하다. 로욜라 로스쿨은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본 캠퍼스가 아닌 LA 다운타운 부근에 있다. 1964년에 현 위치의 공장처럼 생긴 회색 건물에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1978년에 프랭크 게리에게 캠퍼스 설계를 맡겼다. 당시는 게리가 유명해 지기 시작할 때였다.

토론토 출신인 프랭크 게리는 남가주대학(USC)를 나오고 샌타모니카에 자택이 있어서 LA를 기반으로 활동을 했다. 로욜라 로스쿨이 있는 곳은 코리아타운과 다운타운 중간 쯤 되는 곳이다. 게리는 건물을 하나하나 들여 놓아서 1994년에 입구 주차건물을 완공함으로써 일단 마무리했고, 나중에 독립 강의실 건물을 하나 추가로 세워서 2002년에 끝났다. 그러니까 내가 그곳에 간 1996년 가을은 20년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게리는 중앙에 나무를 심어 놓고 모든 건물에서 나오면 중앙을 거쳐서 차고 문으로 나가게 해서 교수, 학생, 직원이 드나들 때 가운데서 만나도록 했다. 우중충하고 권위적이기 쉬운 로스쿨 건물에 노랑을 과감하게 쓰는 등 그의 디자인은 파격적이었다. 대형 강의실 두 개는 별개 건물로 중앙에 만들었는데, 주위에 원주(圓柱) 기둥을 세워놓았다. 게리는 로마 포룸 유적(遺蹟)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꼬마 같이 작은 글라스 채플은 로욜라가 제수이트 교단이 운영하는 대학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노랑 건물 4층에 연구실이 있었는데, 캠퍼스가 아름다워서 학교에 머무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당시 내가 듣기에 프랑크 게리는 LA에 대한 봉사,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어번 캠퍼스(urban campus)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에 그야말로 실비(實費)만 받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게리는 중앙에 자기가 심어 놓은 나무가 많이 자랐다면서, 그 나무를 ‘공부 나무’(tree of learning)라고 지칭했다. 로욜라 로스쿨은 게리가 설계한 캠퍼스 때문에 학교가 널리 알려졌고 평판도 좋아졌다. 게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구겐하임(빌바오) 뮤지엄으로, 1991년에 시작해서 1997년에 완공됐다.

내가 그곳에 있던 1996년 가을은 LA 서북쪽에 게티 뮤지엄(The Getty Museum)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될 때였고. 스페인 빌바오에선 구겐하임 뮤지엄이 역시 마무리되어 갈 때였다. LA 지역의 최대, 최신의 뮤지엄이 될 게티 뮤지엄을 설계한 리차드 메이어(Richard Meier : 1934~ ), 그리고 LA 출신으로 구겐하임 뮤지엄을 설계한 프랑크 게리라는 두 거장(巨匠)에 관한 기사가 LA 타임스에 크게 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두 뮤지엄은 20세기 말을 장식한 건축물이었다.

프랑크 게리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The Walt Disney Concert Hall) 설계도 맡아서 2003년에 완공했다. LA 도심 재개발의 일환으로 디즈니 재단이 기증한 자금을 기반으로 만든 디즈니 콘서트홀이 생기자 부근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LA 다운타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있었던 1996년만 해도 학교에서 전철역이 있는 도심까지는 셔틀을 타고 다녀야지 절대로 걸어서는 안 되었다. 저녁에 해가 떨어지면 도심은 위험한 지역으로 전락했던 시절이었다. 프랑크 게리는 이제 90세가 넘었다. 몇 년 전 TV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 데, 게리는 “나는 80살이 넘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I am over 80. Death is difficult for everyone.”)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게리 같이 성공한 삶에도 황혼은 어김없이 오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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