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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법재판소는 누구 아이디어 ?
작성일 : 2021-05-16 20:02조회 : 1,561
헌법재판소는 누구 아이디어 ?
1987년 헌법에 의한 대통령제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끝냈어야 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한과 권력은 막강하지만 그것을 행사할만한 권위와 신뢰를 갖춘 사람은 더 이상 나오기 어려웠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한편, 1987년 헌법에 의해 도입된 헌법재판소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헌법재판소로 자리 잡았다. 정당을 해산하고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는 세계에서 우리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 미국식 사법심사가 아닌 독일식 헌법재판소가 도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5공 청와대의 뜻이다. 말하자면 전두환의 뜻이었다. 87년 개헌 당시 박윤흔 법제처 차장은 개헌 작업 실무를 총괄했다. 서울법대 13회 졸업생으로 행정법학자이기도 했던 박윤흔 차장은 공법학회 총무이사를 했고 굉장히 소탈한 분이라서 학회 간사를 하던 나는 자주 만나곤 했다. (박윤흔 차장은 노태우 정부 들어서는 정부를 나와서 경희대 교수를 지내다가 김영삼 정부 때 환경처 장관을 지냈다. 서울법대 28회인 나에겐 15년 선배가 된다.)
박윤흔 차장은 “그 사람이 헌재를 알 것 같지가 않은데, 좌우간 헌재를 두자고 한다”고 전했다. ‘그 사람’은 전두환을 지칭하는 것이다. 헌재를 두는 게 유력하다고 하자 중진 헌법 교수들은 너무 좋아 했다. 독일식 헌재를 두자는 주장은 독일에서 공부한 헌법 교수들의 오래된 지론이자 숙원이었다.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도 있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조인 외에도 법과대학에서 법률학을 일정 기간 이상 가르친 교수도 헌재 재판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두환의 고집과 중진 헌법교수들의 의견이 일치하니까 헌법재판소 설치가 개헌안으로 무난히 채택되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격은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법조인으로 한정되었다. 역시 헌법 교수들은 법조인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헌법 교수들은 헛물만 킨 셈이다. 그러면 도대체 전두환은 누구로부터 헌법재판소 이야기를 들었을까 ? 유력한 설(說)은 당시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이 가지면 사법부가 정치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 국회, 대통령이 지명하는 재판관으로 이루어지는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두자고 여러 채널로 건의를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지 않겠다고 나오니까 저절로 헌재를 두게 된 것이다. 다른 설명도 있다. 위헌법률 심사권을 법원에 주게 되면 젊은 판사들이 툭하면 위헌이라고 판결할 우려가 있으니까, 헌재를 만들어 놓으면 그런 위험이 적을 것이라는 고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1987년 개헌 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이 5공 말에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다시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소장 법관들이 들고 일어나서 결국에 김용철 대법원장은 물러나고 만다. 이것을 ‘2차 사법파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 주동을 한 소장 법관들이 우리법연구회를 만들게 된다. 김용철 대법원장이 ‘5공 인물’이라는 것이 반감을 일으킨 주된 원인이지만, 개헌 과정에서 위헌법률심사권을 사법부가 갖지 않겠다고 한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3공화국 헌법 제정 때에는 당시 조진만 대법원장이 미국식 사법심사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서 관철시켰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假定)은 부질없지만 만일에 헌법재판소가 없었다면 그 후 어떻게 됐을까 ? 1987년 개헌 당시는 물론이고 그 직후에도 헌재가 오늘처럼 막강한 기구가 될 것으로 본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헌법소원이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측했던 학자는 없었다. 여하튼 헌법재판소가 없었더라면 수도이전 위헌 판결과 통진당 해산 결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헌재가 없었더라면 탄핵 심판은 탄핵심판위원회 같은 비상설 기구가 다루었을 것인데, 그런 위원회가 대통령을 파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두환의 마지막 고집’이 우리 역사를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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