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도널드 그레그
작성일 : 2021-05-17 07:00조회 : 1,651
도널드 그레그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 1927~ )는 1973~75년간 CIA 한국지부장을 지냈고, 1989년~1993년간 주한 미 대사를 지냈다. CIA 지부장으로 있었을 때 바다에 버려질 뻔한 김대중 대통령을 구했다. 주한 미 대사로 있을 때는 한밤중에 반미(反美) 시위대가 대사관저를 쳐들어가서 불을 지르려고 한 일도 있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공직에서 은퇴했고, 그 후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공화당 정권 사람이었지만 북한과의 협상을 강조한 탓에 우리나라 극우 세력들에 의해 ‘종북’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나는 미국 외교관 구술 역사 사이트에서 그레그가 2004년에 남긴 제법 긴 기록을 보았는데, 대부분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매우 솔직한 서술이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 졸업 후 CIA에 들어간 그레그는 1963년~73년간 일본 지부에서 일했고, 한국 근무를 지망해서 1973년~75년 동안 CIA 한국지부장을 지냈다. 한국에 부임하고 두 달이 지나서 DJ가 도쿄에서 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필립 하비브 대사가 급하게 불러서 DJ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해서, 항해 중인 한국 정보부 선박 위에 미국 정찰기를 출동시켜서 DJ 수장(水葬)을 막았다. 그레그는 이 사건이 이후락 정보부장이 꾸민 일이라고 보았다. 1972년에 평양에 다녀온 이후락은 그레그한테 "김일성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워서 그레그는 이후락을 좋지 않게 보았다.
1973년 10월,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拷問)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레그는 CIA 본부에 자신이 이 문제를 한국정부에 항의하겠다고 보고했더니, 본부에서는 주재국 국내정치에 간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레그는 이를 무시하고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최 교수 건에 대해 항의를 했다. 얼마 후 이후락은 경질되고 신직수 법무장관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됐다. 신직수는 그레그한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레그는 한국 중앙정보부와 협력해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에 왔는데, 한국 정보부는 국내 반대세력 탄압에 몰두하고 있어서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레그는 이후락 경질을 요구한 일이 자기가 CIA에 있으면서 했던 가장 의미있는 행동이었다고 되돌아보았다. 그레그는 박종규 경호실장을 ‘친구’라고 지칭했는데,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대통령 술 시중 드는 사람(차지철)이 후임 경호실장이 됐다고 회고했다.
서울을 떠난 그레그는 CIA 본부로 발령이 났다. 카터 행정부 들어서 CIA는 상원 청문회의 조사를 받느냐고 혼란스러웠다. 카터는 해군 제독인 스탠필드 터너를 CIA 국장으로 임명했고, 그레그 같은 전통적인 정보 요원들은 한직(閑職)으로 내몰렸다. 다행히 그레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자리가 나서 버틸 수 있었다. 1981년 1월, 새로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그레그를 NSC 정보국장으로 임명했다. 그레그는 1982년 8월에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부통령실에서 근무했고,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한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어 부시 대통령 임기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그레그는 부시가 재선을 하면 주일 대사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시가 낙선해서 공직생활을 끝내야 했다.
DJ가 사형선고를 받은 시점은 카터 행정부 마지막 기간인 1980년 가을이었다. 당시 백악관 NSC 스태프였던 그레그는 서울에 가서 전두환을 만나서 DJ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때 전두환은 “나는 김대중과 문제가 많다. 우리 군의 모든 장성이 그가 죽기를 원하고, 우리 국민 대다수도 그렇다.”(“I have a hell of a problem with Kim Dae Jung," "Every single general in my army wants him dead. Most of the Korean people want him dead.") 그러면서 전두환은 "미국은 그를 살리기 원하지만 우리는 그가 죽기를 원해서 문제"라고 했다. 그레그는 카터 행정부 국방장관이던 해럴드 브라운과 이 문제를 이야기 했다. 브라운 장관은 ”전두환이 김대중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자, 그레그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레이건 행정부로 바뀌자 NSC 멤버는 모두 교체 되었고 CIA 출신인 그레그만 자리를 지켰다. 따라서 그레그는 카터 행정부가 남긴 ‘김대중 문제’를 새로 들어선 레이건 안보 팀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리차드 앨런은 김대중을 살리는 조건으로 전두환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레이건과 만나게 했다. 전두환은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만난 외국 지도자였고, 한국의 관제 언론은 전두환 방미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1989년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그레그는 주한 미 대사로 임명됐다. 주한 대사 재임 기간 중 그레그는 쌀 쇠고기 등 통상문제와 반미 감정 등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대사로 있으면서 김대중 김영삼 두 야당 지도자와 여러 번 만났다. 자신의 생명을 두 번 구하는데 그레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잘 알고 있는 DJ는 그레그와 매우 가까웠다. 반면에 그레그는 YS를 “아둔하다”(“Not very intelligent”)고 평했다. YS와 여러 번 식사를 같이 했으나 대화는 지루했다(dull)고 평가했다. YS가 대통령이 될 시점에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그레그는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그레그는 한국 정부에 의해 환영받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다시 환영 받는 인사가 됐다.
- 사진은 왼쪽부터, 현홍주 주미 대사, 그레그 주한 미 대사,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사진 출처는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