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이건, 김대중, 그리고 전두환

작성일 : 2021-05-19 22:09조회 : 1,627

레이건, 김대중, 그리고 전두환

카터 행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리차드 홀브루크(Richard Holbrook)였고 카터가 대선에 패배할 즈음의 부차관보는 마이클 아마코스트(Michael Armacost)였다. 당시 물러날 카터 진영과 들어올 레이건 진영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레이건에 의해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는 "인권은 더 이상 미국 외교정책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홀브루크와 아마코스트는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리차드 앨런(Richard Allen)을 만나서 한국의 신군부가 레이건 당선에 고무되어서 김대중을 죽일 것 같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사형집행 시기는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이 될 것 같다면서, 레이건 당선자가 조치를 취하도록 부탁했다. 당시 카터의 외교팀은 카터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이란 정부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전두환 군부에 대해선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리차드 앨런도 여러 창구를 통해서 상황의 긴급성을 알게 됐고 전두환 측과 연락을 했다. 전두환 측은 사형집행은 하지 않되 그대로 감옥에 가두겠다고 했으나 앨런이 그것을 거부해서 결국 신병 치료를 이유로 석방해서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비밀리에 합의를 보았다.

한국 사태에 좌절한 홀부르크와 아마코스트, 그리고 전두환을 직접 만난 도널드 그레그 등을 통해서 리차드 앨런은 문제의 긴급성을 알았고, 전두환의 미국 방문을 김대중 구명(救命)과 결부시키는 방안을 고안했던 것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1981년 2월 초, 전두환 부부는 미국을 방문했다. 전두환이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고 알려지자 미국 언론은 레이건이 독재자와 어울린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리차드 앨런은 전두환 방문을 단순한 공식 방문으로 격하하고, 레이건 대통령과 만찬 대신 오찬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오찬 모임에서 천성적으로 사람과 잘 어울리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과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해 버렸다. 레이건이 취임 한 후 처음 만나는 외국 지도자가 전두환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앨런은 전두환 방미 사흘 전에 자마이카 총리가 레이건을 만나도록 면담을 앞당겼지만 자마이카 총리가 다녀간 것은 뉴스 감이 되지도 못했다.

1982년 12월 16일, DJ는 석방되어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고, 12월 23일 신병 치료차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에모리, 버클리 등지에서 강연을 한 DJ는 레이건 대통령에 보낸 1983년 1월 3일자 서신에서 “취임 전에도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신속하게 노력한 데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썼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 방문은 이루어지 못했다.

하버드 대학의 스콧 캘브(Scott Kalb) 교수는 <SCOPE> 1983년 3월 특집호에서 김대중이 비싼 몸값(ransom)을 받기 위해 신군부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었던 형상이라고 지적했다. DJ가 석방되자 미 국무부는 조지 슐츠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할 게획이라고 발표했다. 1973년 도쿄 납치 사건으로 일본의 영토주권이 훼손당했다고 주장해 온 일본 정부도 그 문제가 해소되었다면서 한일 정상 회담 개최를 발표하고, 한국에 대한 40억 달러 차관 제공을 발표했다. 캘브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아주 많은 몸값을 챙겨갔다고 평가했다.

- 사진은 1981년 2월 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레이건을 만나고 있는 전두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 H.W. 부시 부통령과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의 모습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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