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지 H.W. 부시와 도널드 럼스펠드

작성일 : 2021-07-06 10:29조회 : 1,735

조지 H.W. 부시와 도널드 럼스펠드

1960년대 말, 미국 하원에 향후 미국 정치를 크게 흔들게 되는 공화당 의원 3명이 있었다, 닉슨이 사임한 후에 대통령이 되는 제럴드 포드(Gerald Ford 1913~2006), 조지 H. W. 부시 (George H. W. Bush 1924~2018), 그리고 최근에 타계한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2021)이다. 미시건 출신으로 예일 로스쿨을 나오고 해군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포드는 1948년 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계속 연임을 했다. 1965년 1월, 포드는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되는데, 도널드 럼스펠드 등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뒤집어 버린 하극상 사건 덕분이었다. 소박한 성격인 포드는 하원의장이 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였다.

시카고 출신인 럼스펠드는 1962년에 30세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서 주목을 샀다. 프린스턴 대학을 해군 장학금으로 다닌 그는 해군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전역 후에 정계 진출에 성공했다. 닉슨 대통령은 그의 잠재 능력을 알아보고 억지로 하원의원을 그만두게 하고 경제기회국(OEO) 국장을 맡기고 백악관 자문관 등을 역임하게 하고 1973년 2월에는 NATO 대사로 임명했다. 하원의원을 오래 해 봐야 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한 닉슨은 럼스펠드에게 다양한 행정 정치 외교직책을 경험하도록 했다. 젊고 야심에 찬 럼스펠드는 자신이 닉슨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질 만도 했다.

그런 럼스펠드에게 강력한 라이발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조지 H. W. 부시였다. 부시는 마흔 살이 넘어서 하원의원이 됐지만 2차 대전 전쟁 영웅인데다가 부친 프레스콧이 코네티컷 출신 상원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당선 직후부터 언론의 주목을 샀다. 부시가 상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지자 닉슨은 그를 유엔주재 대사로 임명해서 더 유명해 졌다. 1973년 1월, 닉슨은 부시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부시로 하여금 197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 상황을 보던 럼스펠드는 속이 쓰렸을 것이다. 자신이 부시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고 생각한 럼스펠드는 닉슨이 상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부시를 너무 대우한다고 생각했음직하다.

부시에 대한 닉슨의 호의는 얼마 후 부시에게 악몽이 되고 말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확대되면서 공화당 대표격인 부시를 매우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1973년 10월,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 부통령이 부정자금 수수혐의로 기소되자 사임했고, 닉슨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후임 부통령을 지명하게 됐다. 이 때 언론에 거론된 사람이 포드, 부시, 그리고 럼스펠드였다. 닉슨 대통령은 연장자이며 하원 원내대표인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한편 백악관 녹음 테이프가 공개 되는 등 닉슨이 탄핵을 피해나갈 수 없게 되자 부시도 결국 닉슨이 사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1974년 8월 9일, 닉슨은 사임했고, 부통령인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해서 당일에 취임했다. 포드는 부통령을 지명해야 했다. 불과 1년 동안 대통령이 부통령을 지명하는 상황이 두 번이나 생긴 것이다. 그 때 거론된 인물이 조지 H. W. 부시,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뉴욕 주지사를 지낸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였다. 그 때 뉴스위크지에 1970년 선거 당시 닉슨 백악관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관을 통해서 상원의원에 출마한 부시에게 10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 보도는 부시가 부통령으로 지명될 가능성을 막아 버리고 말았다.

포드 대통령은 넬슨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고 의회는 이를 인준했다. 록펠러는 뉴욕시장 존 린지와 더불어 공화당 내의 진보파였다. 록펠러를 부통령에 지명하자 배리 골드워터, 로널드 레이건 등 공화당내 보수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공화당은 골드워터, 로널드 레이건이 대표하는 보수파, 록펠러가 대표하는 진보파, 그리고 포드와 부시가 대표하는 중도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골드워터와 레이건은 포드가 최소한 부시를 부통령으로 임명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포드 대통령은 부시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부시는 상무장관이나 백악관 비서실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포드는 상무장관은 불가능하고 자기는 백악관 비서실에 큰 역할을 주지 않을 것이라서 그 보다는 대사가 어떠냐면서 주영 대사와 주중 대사를 권했다. 부시는 영국이나 프랑스 주재 대사는 의례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베이징에 가서 새롭게 개방을 시작한 나라의 모습을 보기로 했다. 부시가 주중 대사직을 받아드리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전화를 걸었는데, 거기서는 별로 할 일이 없을 테니 잘 지내라고 했다.

부시가 하고 싶어 했던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는 도널드 럼스펠드에게 돌아갔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느낀 부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발목을 잡은 신문기사도 럼스펠드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부시와 럼스펠드는 원수가 되어 이후 공화당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워싱턴을 뒤로 하고 베이징에 도착한 부시는 중국 문화와 사회 정치체제를 공부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부통령이 된 록펠러는 포드 행정부에 별다른 도움도 주지 못하고 1977년 임기 종료와 함께 은퇴했다. 1979년 1월 26일, 당시 70세이던 록펠러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부통령 시절의 비서였던 25세 여인과 함께 있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흔히 말하는 복상사(腹上死)였다.)

- 사진은 부시와 럼스펠드, 록펠러와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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